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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밈 Jun 22. 2020

어떤 말도 아무것도 그 누구도

한잔의 위로

"이 술은 민지 씨가 생각나는,
저한테는 민지 씨를 상징하는 그런 술이에요."

작업실이 있는 동네에는 오마카세도 훌륭한데 단품 구성도 너무 괜찮은 작은  단골 일식당이 있다. 오래간만에 서울 나들이 나오신 도예가님의 고민을 들어드리고 무엇을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단골 일식주인장과 도예가님이 서로 교류가 있으면 좋을 듯하여 저녁식사를 하러 집으로 출동한 며칠 전 밤이었다.

믿고 마실 수 있는 지자케 (지자케(地酒)란 일본 각 지역의 특색 있는 술을 뜻한다)를 추천하는 능력이 탁월하신 니혼슈 마니아 주인장께서 내어준 술이 바로 이 생주였다. (생주는 나마 겐슈라고 하는데 저온 살균 등의 가열처리가 없기 때문에 생 효모가 살아있어 탄산 감이 좋고 신주의 신선한 향기도 느낄 수 있어 무척 좋지만 변질되기 쉬워 유통이 어렵고 그래서 맛보기 힘들다. )


근데  이 술 왜 때문에 저 같아요?



이 술의 이름이 참 재미있는데

滋賀県(시가현)에 있는 호수 이름이 나와요.

비와코 호수. 일본에서 제일 큰 호수죠.

쿠지라는 고래라는 뜻이거든요.
琵琶湖のくじら (비와코노쿠지라 )
BIWOKO NO KUJIRA - 비와코의 고래
​즉, 비와코 호수의 고래라는 뜻인데
호수에서는 고래가 살 수 없잖아요.

그만큼 맛있다, 있을 수 없는 맛이다

뭐 그런 의미를 담은 거죠.

저 술고래라고 그러신 건 아니죠?

아, ㅋㅋ 물론 그런 의미도 있어요.

이 술 20도나 되거든요. 근데 아주 부드러워요.
뭐랄까 좀 그런 게 비슷해요.

민지 씨는 좀 말도 안 되는 캐릭터?
있을 수 없는 좀 그런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이 술에 대한 얘기를 듣고 딱 떠오르더라고요.


외롭다 같은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 그런 게 있다.

사람 사이의 문제보다 나와의 사이가 힘들 때도 있고

수많은 거절들에 치일 때도 있다.

프리랜서는 거절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지만,
익숙하다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낙담하지 않은 척하며 거절의 이유를 찾고

그 이유들을 내가 나에게 합리화하며 설명하고

머리로 이해될 때 참 이상하게도 더 슬프다.

이런 순간이 쌓인 어느 날이 되면
사실, 누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심지어 좋은 마음으로 건네는 말들도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삐죽 빼죽의 순간이 다.
아니 아니, 내가 모나지 않은 순간에도
어떤 것도, 아무것도, 그 누구도
내 마지막 1%를 빈틈없이 채워 줄 수는 없을 때

뜻밖에도 사장님이 건네주신 이 얘기에

순간 가슴이 찡 해졌다.

나조차도 나에게 확신이 없을 때

나를 있을 수 없이 멋진 사람으로 봐주셨다니

그 누구라도 그 마음이 고맙지 않을 수 있을까?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지 않아도
그저 맑고 차가운 술 한잔 부딪치며

상대와 또는 나와 눈을 맞추는 시간.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고
내가 누굴 위해 마시는지 알기 위해 마시는 .
내 몸속에 알뜰히 스며드는 한잔 술이 더라.



술 정보:  비와코노 쿠지라
北島酒造(키타지마주조)
용량 : 720ml
알코올 도수 : 20%
원료미 : 미요사카에 滋賀県産米
정미보합:65%
산도 : 1


맛이 깔끔하고 알코올과 곡물의 단맛이 잘 조화되어있다.

꽤 높은 도수지만, 개운하게 끊어지는 맛이라 니혼슈보다는

우리나라 소주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도 적당할 듯.

세계 3대 담수호인 비외코 호수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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