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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배우나요.

<교육연극으로 길을 여는 미래교육>을 읽고_

by 사유무대

종종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중에 “동물들이 새끼를 훨씬 더 잘 기르더라.”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아마 ‘생존’ 일 것인데,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고 자부하던 인간들은 언제부터인지 후손을 지키는 온전한 목적을 잃어갔다. 길러내는 과정 중 고려사항도 많고, 이해관계도 많고, 기타 등등 부수적인 이유로..
아이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며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격한 말로 다시 써보자면 인간답게, 살아가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는 무서운 현실이다. 책에서 시종일관 ‘수업 안에서 아이들의 살아있음’을 강조하시는데, 수업 너머의 삶까지 보듬으며 살아있으라 처절하게 외치시는 것으로 느껴졌다. 결국 우리 아이들을 잘 길러내야 할 과제는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질 것이 아닌 사회적 책임으로 다가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중요한 것들에 내몰려 잘 생존하기를 적절한 때에 경험하지 못하면 미래 세대는 아마 메마른 사막과도 같을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사실 지금이 그렇지 않나.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정서의 나눔이 단절되고, 교류보다는 경쟁과 쟁취, 자본 논리, 약육강식, 도덕성 결여, 결과와 효율 등..
시간이 부족하다고 난리 난리다. 마주 볼 시간, 가만히 들여다볼 시간, 귀 기울여 들을 시간, 같이 호흡할 시간.. 바빠 죽겠는데 언제 그걸 하고 있냐고 난리 난리다.
이런 어른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숨 고를 틈 없이, 삶의 풍요로움을 맛볼 새도 없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목적 없이 그저 바쁘다. 지금의 교육 정책, 시스템, 부모들의 양육 태도, 종합적으로 그 중심에 아이들이 과연 존재하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보아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고려하지 않은 그릇된 목적으로 균형 잡힌 성장을 방해한 것, 부족한 것 없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오만 가지 결핍을 만들어 낸 것. 결국 어른들의 뼈저린 과오라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씩 천천히 되짚고 다잡아 가야 할 것이다.
주말에 겪은 일이다. 입학한 지 일주일 된 1학년 자녀가 학교생활이 재미있는지 인형부터 집안 쓰레기까지 깡그리 주워 모아 학교를 만든다. (거실을 온통 차지하니 제법 스케일이 있는 학교 놀이다.) 다양한 모습을 한 인형들이 옹기종이 일렬로 앉아 앞을 바라보는 구성부터, 교단에 선생님 역할이 서있는 구성까지 정겨운 학교의 모습이라 귀엽고 흥미로웠다. ‘녀석 너도 드디어 학생이구나.’ 생각하려던 찰나,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를 투명 아크릴 판으로 가로막는 것이 아니겠는가. (엄마 이건 스크린이고, 아이들이 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이야 라고 거창하게 설명을 한다.) 입학 일주일 아이에게 학교가 이런 이미지라니.. 적잖은 충격에 아직도 마음이 참 무겁다.
수업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한 사람으로서, 적어도 화면을 기억하게 하고 싶진 않다. 수업의 주인공은 오롯이 아이들이어야 하고, 의미 있는 성장을 몸소 배워가는 연습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연극 상황을 안전기지 삼아 이 생각 저 생각 지혜를 모아 내 목소리로 함께 살아갈 내일을 기약해 보는 경험! 그 잔잔한 기억으로 힘껏 살아가는 것이다. 귀한 온기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며 생존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 교육의 소명이 아닐까.

더불어,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 어떤 자세와 노력을 보탤 수 있을지도 큰 과제다.




_ 25년 3월 교육연극연구소 사유무대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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