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 졸임

소박한 재료로 맛본 내 인생 최고의 생선요리

by 이레

다섯 살쯤이었을까.

네 살 터울 동생이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던 어느 여름, 삼촌 식구들과 함께 강원도의 작은 바닷가 마을로 휴가를 떠났다. 준비된 것도, 예약된 것도 없는 막판 여행이었기에 변변한 숙소를 구하지 못하고 결국 촌의 작은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아침마다 수돗가에는 세수를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엄마들은 샴푸와 비누를 들고 아이들을 씻기며 분주히 움직였고, 아이들은 차가운 물줄기에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맑은 시냇물 옆에 앉아 있던 나는 이름도 모르는 언니에게 머리를 감겨본 기억이 난다. 아무리 헹궈도 머리카락 사이에 작은 돌조각이 걸려 거슬렸지만, 그것조차도 그 시절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낮에는 해변에서 조개를 캐며 놀았다. 모래사장에서 조개를 손에 쥘 때의 감촉, 짭조름한 바닷내음, 그리고 저녁이면 삼촌들이 조개를 술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던 장면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술기운에 오르내리던 웃음소리와 파도소리가 뒤섞인 밤이었다.


그런 어느 새벽, 아직 졸음이 덜 깬 나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따라나섰다. 마을 어귀의 작은 포구에는 고깃배가 정박해 있었고, 어부들은 그물에 걸린 잡어들을 헐값에 내다 팔고 있었다. 수북이 쌓인 잡어들 사이에서 엄마가 건져낸 건 다름 아닌 ‘아지(전갱이)’ 한 마리였다.


그날의 아지는 유난히 통통하고 싱싱해 보였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 특별한 재료 하나 없이 아빠와 삼촌이 남긴 소주에 설탕과 간장만 넣어 조림을 만들었다. 파도, 마늘조차 없는 단출한 양념. 하지만 부엌 가득 퍼지던 그 향은 어린 나의 코끝을 찌르며 평생 잊히지 않을 기억을 남겼다.

그때 먹었던 아지 조림은 화려한 조리법도, 특별한 향신료도 없었다. 그저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싱싱한 생선, 소주와 설탕, 간장만으로 완성된 단순한 맛. 그러나 그 맛은 내 인생 최고의 생선요리로 남아 있다.


이후 수많은 생선 요리를 먹어보았지만, 지금까지도 그날의 아지 조림만큼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맛은 없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맛의 문제가 아니라, 어린 날의 풍경, 엄마의 손길, 그리고 그날의 공기까지 함께 담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요리는 언제나 그렇듯, 화려함이 아니라 소박함 속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그 소박함의 중심에는 늘 엄마가 있었다.


재료
아지(전갱이) 1마리
간장 1.5큰술
설탕 1큰술
소주 반 컵

물 약간

조리법
1. 아지를 깨끗하게 손질한다. (내장을 빼고 흐르는 물에 헹군다.)
2. 냄비에 아지를 담고 간장, 설탕, 소주, 물을 넣는다.
3. 센 불에서 한 번 끓인 뒤, 중약불로 줄여 국물이 자작하게 졸아들 때까지 끓인다.
4. 별다른 양념 없이도 신선한 아지 본연의 맛이 살아난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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