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음력으로 챙기시는 분이 계실까요? 그렇다면 50대 이상 꼰대세대임이 분명합니다.
생일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태어남'이라는 현상을 직시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 자신의 의지로 오고 싶어 온 생명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한에 가까운 확률의 경쟁을 뚫고, 우연이라는 이름의 필연으로 이 세상에 던져졌습니다. 설령 부모가 철저한 계획 임신을 하고, 의학의 힘을 빌려 출산 예정일을 정교하게 맞추어 태어난 '맞춤 아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부모 유전자의 선택이자 의지일 뿐, 태어나는 생명 당사자의 의지는 결코 개입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생명은 고귀합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이 삶은, 우주적인 관점에서 볼 때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일회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생일은 바로 그 경이로운 확률이 실현된 시점입니다. 무의 상태에서 유의 상태로, 비존재에서 존재로 전환된 그 '시작점'을 기념하는 행위는 단순한 날짜 확인을 넘어 생명의 존엄함을 재확인하는 의식과도 같습니다. 인간의 시간 속으로 들어왔음을 선언하는 최초의 순간, 그 유일무이함을 우리는 매년 기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태어난 시각은 물리적으로 고정된 '점(Point)'입니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이 미세하고 연속적인 시간을 그대로 사용하기엔 너무 복잡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라는 단위를 사용하여 시간을 뭉뚱그립니다. 지구가 스스로 한 바퀴 도는 자전의 시간을 기준으로 삼아, 너와 내가 공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위를 만든 것입니다.
물론 이 '하루'라는 단위가 100% 완벽한 정의는 아닙니다. 법원의 어떤 놈은 구속 기간을 '일' 단위가 아닌 '시간' 단위로 쪼개 계산함으로써, 내란사범을 풀어주는 법리적 꼼수로 악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일상에서 '하루'는 시간의 범위를 세는 가장 편리하고 강력한 도구로 작동합니다. 이것은 전 인류적인 약속입니다. 약간의 오차나 하자가 있을지라도, 보편타당하게 합의된 기준을 따를 때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합의한 이 시간의 기준이 철저하게 태양을 중심으로 한 '양력' 시스템이라는 점입니다. 현대 사회는 태양의 주기를 따르는 그레고리력에 맞춰 모든 행정, 경제, 교육 시스템이 돌아갑니다. 이런 환경에서 달의 차오름을 기준으로 하는 '음력'을 고수하는 것은 마치 LTE나 5G 통신망이 깔린 세상에서 모스 부호를 타전하는 것과 같은 불편함을 초래합니다.
요즘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보더라도, 음력 날짜가 병기된 달력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스마트폰 일정표조차 음력에는 불친절합니다. 일요일 날짜 밑에 아주 작은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습니다. 특정한 음력 날짜를 찾으려면 기준점으로부터 손가락을 꼽아가며 숫자를 더하고 빼야 합니다.
오늘날 음력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은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 혹은 부처님 오신 날 같은 종교적 기념일 뿐입니다. 이는 사회적 관습과 전통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즉 문화적 유산으로서 유지되는 '예외적 허용'에 가깝습니다. 예전에는 양력 1월 1일을 신정, 음력 1월 1일을 구정이라 부르며 혼용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명확히 음력 설날이 명절 연휴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공동체가 함께 쉬는 '공휴일'로서의 기능이지, 개인이 일상적으로 음력 날짜를 인지하며 산다는 뜻은 아닙니다.
생일은 매년 돌아오지만, 음력 생일자의 '양력 날짜'는 매년 변화무쌍하게 바뀝니다. 본인의 생일을 챙기기 위해 매년 달력을 뒤적이거나 변환 앱을 켜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기술적으로는 태어난 해의 음력 날짜를 양력으로 고정하여 변환해 주는 계산기도 있고, 스마트폰 앱 설정으로 반복 알림을 맞출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잘 되지 않습니다. 입력하는 과정조차 귀찮고,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이 내 생일을 직관적으로 기억해 주기 어렵습니다.
이 지점에서 세대론이 등장합니다. 나이 지긋한 기성세대, 소위 '꼰대 세대'들은 음력 생일을 챙기는 문화 속에서 자랐기에 이 불편함이 익숙합니다. 불편함이 습관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50대 이하, 더 내려가 2030 세대에게 음력은 낯선 외국어와 같을 겁니다. 그들에게 음력은 부모님의 생신을 챙겨드리기 위해 억지로 신경 써야 하는, 일종의 '레거시(Legacy) 시스템'일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시스템은 효율성을 향해 흐릅니다. 에너지 소모가 적고, 더 빠르고, 더 정확한 방식이 살아남습니다. 사용하기 불편하고, 직관적이지 않으며, 사회적 표준(양력)과 끊임없이 충돌하는 음력 생일 챙기기는 실용주의 관점에서 볼 때 도태될 운명입니다. 아마 10년, 길어야 20년 안에는 개인의 음력 생일을 챙기는 문화가 거의 사라질 것입니다. "생일이 언제예요?"라고 물었을 때, "음력으로 며칠입니다"라고 대답하면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취급을 받는 시대가 올 겁니다. 불편하면 사용되지 않고, 사용되지 않으면 잊히며, 결국 사라집니다. 이것이 냉정한 자연의 이치이자 사회 진화의 흐름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 바로 저의 음력 생일입니다.
아마도 저는 그 '사라져 가는 세대'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습관과 관습을 바꾼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니까요. 머리로는 양력 변환의 효율성을 외치면서도, 몸은 여전히 부모님이 기억해 주던 그 달의 기울기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순 또한 제 삶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양력이든 음력이든,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의 잣대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생명의 본질일 테니까요. 비효율적인 음력 날짜를 찾아서라도 축하를 받고 싶은 마음, 그것은 어쩌면 우연히 주어진 이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싶은 본능적인 몸부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양력 생일날, 축하받고 했지만 다시 한번 챙겨 받고 싶은 사심 가득한 욕망이기도 하겠지요. 이렇게 또 한 살을 세월의 더깨에 올리게 됩니다. 숫자만 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