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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19. 2024

정년퇴직하면 이렇게 살아라

뭐 눈에는 뭐 만 보이고,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요즘 내 눈은 정년퇴직한 사람들의 뒷그림자를 쫒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나이 들었다는 소리다. 그게 사는 건가 보다. 아니 그렇게 사는 것이고 그렇게 버텨내는 것인가 보다.


지난 주말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사세보, 야나가와로 골프여행을 다녀왔다. 친한 친구들과 같이 갔던 것도 아니다. 업무상 만나야 하는 비즈니스 관계로 갔던 것도 아니다. 회사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시고 정년퇴직하신 선배님 두 분과 함께였다. 그것도 나이차이가 9살, 3살이나 나는 대선배님들 이시다. 같은 부서에서 길게는 10년 넘게 같이 근무를 했던 관계이긴 하다. 그렇지만 국내도 아니고 해외로 골프 치러 가는데 동행할 정도면 쉽지 않은 관계였을 거라는 눈치를 챘을 것이다.


나이 70세에 가까운 선배님들이시지만 골프 실력만큼은 싱글이시다. 티박스를 시니어 티에서 치시라고 염장질을 하고 나이차만큼 핸디를 잡아주겠다고 구찌를 넣어가며 정신을 산란하게 만들어도 끄떡없이 페어웨이로 공을 날리시는 분들이시다. 그러니 일본까지 골프를 치러 다니시는 것 같다.


내가 이런 대선배님들 틈에 끼어 골프여행을 함께 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정년퇴직하고 해외로 골프를 치러 다닐 정도면 아시겠지만 어느 정도 경제력을 탄탄히 확보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정년퇴직자들에게는 꿈의 생활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같이 골프여행을 갔던 선배님 두 분이 바로 그런 분들이시다. 한 분은 수원과 인천에 각각 5층짜리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1층에는 상가가 2개씩, 그리고 위층으로는 원룸을 20개씩 임대하는 사업을 하고 계신다. 조물주보다도 높다는 건물주시다. 그것도 5층짜리 2개 건물주시다.


또 한 분도 정년퇴직하시고 부동산중개사 자격을 따고 부동산 관련 책만 2권을 내시고 아파트에 투자하여 개포동과 목동에 아파트를 보유하시고 역시 월세를 놓아 현금유동성을 확보하고 계신다. 돈 버는 재산이 부동산임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들이시다.


나는 이런 선배님들처럼 부동산에 투자할만한 재력도 능력도 없어 감히 따라 할 수 조차 없다. 들어놓은 연금이 축날까 봐 노심초사하며 통장의 숫자를 헤아리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 다리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이번 골프여행에 따라나섰던 것은 그분들의 삶의 지혜가 궁금해서였다. 은퇴한 사람으로서 나름 성공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살아온 노하우가 궁금했고 버텨낸 시간들의 활용들이 궁금했다.


가끔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시간으로는 그들의 진솔한 방법론을 캐내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골프여행 제의가 왔을 때 넙쭉 받아들인 것이다.


건물 한 채를 소유하기까지 자금을 끌어들이는 과정, 그리고 한 채가 두 채가 되기까지의 노력까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셨다. 건물을 사기 위해 주말마다 수도권 일대 도시들을 답사 다니며 물 건들을 살펴보고 다녔던 스토리며 건물 관리며 원룸 입주자들과의 월세 문제 등 건물주의 고민들도 들었다. 건물주라고 뒷짐 지고 산책하는 게 아니고 배관, 목공, 전기까지 모두 해낼 수 있는 만능인이 건물주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건물에 하자가 발생하면 전문업체에 용역을 줄 수 있으나 그렇게 하다가는 남는 게 없더라는 탄식도 듣는다. 그래도 2개 건물에서 한 달에 2,000만 원 이상 임대료가 나오니 청소며 궂은일은 기꺼이 할 수 있겠다는 부러움의 눈길을 보낸다. 순이익이 이 정도라니 대기업 최고위 임원 수준에 버금가니 남부러울 것이 없겠다는 선망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자리 잡기까지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했던 애환과 비애, 각오도 함께 들으니 그럴만하다고 수긍이 간다.

또 다른 선배님께서 정년퇴직하면 3가지를 명심하라고 일러주신다. 첫째는 한 달에 400만 원 정도 가용할 수 있는 자금력을 확보하라는 거다. 이 액수야 어떻게 소일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두 번 골프라도 치고 누구를 만나면 식사비 한 번이라도 낼 수 있고 경조사에 찾아다닐 수 있으려면 그 정도는 필요하단다.


둘째는 배우자와의 관계가 중요하단다. 특히나 전업주부로 평생 집에서 내조를 했던 배우자라면 은퇴 후에 하루 종일 같이 붙어 있는 것에 대한 문제가 반드시 표면화된다고 한다. 배우자가 직장을 다니고 있어 아침에 집을 나가면 그나마 부딪칠 일이 적어 문제가 적으나 하루종일 같이 있으면 생활영역의 침범에 대한 갈등이 불거진단다. 은퇴 후 부부간의 관계가 원만한 커플은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니 어떻게든 부부간의 갈등이 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사전에 강구하라는 조언이다. 같이 할 수 있는 취미를 만들던, 아니면 아침이면 은퇴 전 출근할 때처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규칙적인 무언가를 찾으라는 권고다.


그리고 세 번째, 같이 놀 수 있는 친구와 지인들을 확보해놓아야 한단다. 정년퇴직하면 다들 시간도 많아 같이 잘 놀 것 같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단다. 은퇴하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각자의 경제력 문제이기에 같이 모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여행 가고 골프 가고 식사하는 비용을 누군가가 부담한다고 해도 한두 번이지 매번 신세를 질 수 도 없단다. 한두 번 그렇게 한다고 쳐도 세 번째는 슬슬 자리를 피하게 된단다. 그래서 만나면 철저히 1/n로 비용처리를 한단다. 그래야 서로에게 부담도 없고 뒤끝도 없단다. 이번 일본 골프여행에서도 회비를 65만원씩 냈는데 여행 후에 정산하고 11,000원씩 돌려받았을 정도다. 여행 중에 최고 선배님께서 2차 선술집 정도의 비용은 기꺼이 내시기는 했지만 말이다.


삶의 지혜를 들을 기회는 참 많지만 이렇게 여행에 동행하며 생맥주 한잔 앞에 놓고 밤늦도록 할 수 있는 시간들은 많지 않다.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듣는 순간이 말이다. 선배님들처럼 경제력을 확보하고 여유롭게 해외로 골프를 치러 자주 오지는 못하겠지만 어떻게 앞으로의 시간들이 전개될 것인지를 어림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여행이었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봐야 멀리 깊게 볼 수 있다. 세상의 진리는 항상 옆에 있다. 내가 못 보고 있을 뿐이다. 참 건강관리는 기본중에 기본이란다. 빼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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