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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20. 2024

딸아이 청첩장을 받아 든 아빠의 심정

5월 19일(일)이니, 딱 두 달 남았다. 딸아이 결혼식까지 말이다.


어제, 딸아이가 결혼식을 앞두고 온라인 청첩장 문구와 사진 편집에 이상이 없는지 봐달라고 초안을 보내왔다. 내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청첩장을 여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심경은 뭐지? 딸을 아빠들의 심경은 만감이 교차하고 뒤숭숭하다는데 ㅠㅠ 나도 그런가?


이 묘한 감정의 발로는 뭘까? 서운함일까? 섭섭함일까? 아니면 시원섭섭함이 복합된 걸까?


이제야 딸아이를 시집보낸다는 현실이 확 와닿는 듯하다.


그동안 내 주변의 친구와 지인들의 자녀 결혼 소식이 들리면 무덤덤했다. 나에게 닥칠 사실임을 극구 부인했다. "아직 가타부타 아무 말도 없는데, 지들이 알아서 가겠지 뭐" "그게 부모가 하라고 되는 것도 아니야" 그러다 어느 순간, 가까운 친구 녀석들로부터 자녀 결혼 청첩장을 받게 되면서 곧 나에게 들이닥칠 현실임을 직감한다. 세대가 바뀌어 가는 자연 현상에서 한치도 거를 수 없는 숙명이 있음을 눈치챈다.


"그래 그렇게 세대교체를 하는 거야! 30년마다 말이야!"

딸아이가 94년생이라 올해 나이가 딱 서른이다. 30년 세월의 주마등이 무지개처럼 지나가지만 딸아이가 세상에 처음 등장하던 때의 모습이 제일 역력하다.


94년 여름의 더위에 대한 기록은 지구온난화 추세임에도 아직도 상위 3위안에 들만큼 무더웠다. 그 해 6월, 와이프가 임신 6개월을 조금 넘긴 시점이었는데 골반이 약해 아이가 세상밖으로 나올 조짐을 보였다. 어떻게든 아이를 뱃속에 가두어 놓아야 할 처지였다. 그날 밤새, 동네 산부인과 병원, 위생병원, 국립의료원, 아산병원 등등 병원 응급실 뺑뺑이를 5군데나 돌아 새벽녘이 되어서야 성남에 있던 인하병원에까지 가서 입원할 수 있었다. 응급실 뺑뺑이를 돌 때 산부인과 의사를 하는 친구 녀석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이를 포기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넌지시 한다. 임신 6개월 정도 되어 세상에 나오면 인큐베이터 생활을 2-3개월 정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합병증도 생겨서 어려울 수 있다는 겁박이었다.


다행히 인하병원에서 와이프를 두 달 반 감금시켜 못 움직이게 하고 버틴 결과, 그 더웠던 94년 여름의 뙤약볕을 뚫고 딸아이가 무사히 태어났다. 그렇게 귀하고 어렵게 세상에 나온 딸아이다.


그런데 벌써 30년이 훌쩍 지나버려 취업을 하고 반려자를 만나 독립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그 선언의 날짜를 통보한 것이다.


세상의 아빠치고 어찌 자녀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에 차이가 있을쏘냐만은, 자기가 아픈 치통과 두통과 손가락 베임이 세상에서 가장 아프듯이 각자의 애정과 사랑은 모두 자기 자식에게 쏠려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온라인 청첩장 속에 담긴 사진들을 한 장씩 넘겨본다.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그래 배우자를 잘 선택했구나. 대학시절 만나 10년 가까이 만났으니 파트너 바꿨을 만도 했을 텐데 지고지순하게 계속 만나 결국 결혼까지 하는 걸 보니 천상배필인가 보다.


결혼식날 양가 대표로 인사를 하고 덕담을 할 텐데 눈물이 날까? 즐겁고 기쁜 날인데 아빠가 축사를 하면서 울먹이는 모습은 아닌 듯하다. 아예 축사를 안 한다고 할까? 그래도 결혼식장을 찾아주신 하객들께 인사는 드려야 하는 게 예의인데, 어떻게든 단상에 나가야 할 텐데 벌써부터 떨린다. 남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게 평생 일 중의 하나였는데도 말이다. 청중으로 누굴 대상으로 하고 있느냐에 따라 이렇게 마음자세가 달라진다. 지금부터 마음을 담담하게 가져가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래서 웃는 얼굴로 축복의 그날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딸아이 시집보내서 좋은가 봐!"라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입을 찢어야겠다.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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