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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r 29. 2024

사우나 모임이 여자는 되는데 남자는 안 되는 이유

여자들의 사우나 모임은 가능한데 왜 남자들의 사우나 모임은 안될까?


어제 자연과학 공부를 하는 모임의 줌 강의 소재중 하나였다. 흥미진진한 관점이자 관찰이 아닐 수 없다. 여자들의 사우나 모임에 대한 이야기는 '길들이기'에 대한 주제로 이어지다 등장한, 일개 소재일 뿐이지만 사회화 과정의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취미를 기반으로 하는 동호회 모임이라던지, 학연과 지연을 바탕으로 한 동창회, 친목모임 등도 있지만 사우나 모임처럼 끈끈해지기가 쉽지 않단다. 왜 그럴까?


동네 찜질방, 사우나 모임은 일주일에 한두 번, 짧게는 거의 매일 사우나에서 만날 수밖에 없다. 그것도 홀딱 벗고 말이다. 홀딱 벗었다는데 방점이 있다. 오직 맨 몸으로 모든 걸 말한다. 맨 몸으로 40대인지 50대인지 60대인지 보여줄 뿐이다. 어떤 가림도 있을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수평적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주름이나 몸의 볼륨으로 인한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모두 홀딱 벗은 몸을 보여준 관계이기에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주름이 더 많으면 그냥 '언니'로 인정받고 인정할 뿐이다. 동등한 관계가 형성된다. 이 상황에서는 금방 통성명이 가능해지고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알게 되고 미주알고주알 수다의 장이 펼쳐진다. 몇 번 얼굴이 마주치고 서로의 몸매도 본 사이인지라 거리낄 것이 없이 가까워진다. 집에서 만든 온갖 먹거리와 심지어 생활용품까지도 가져와 서로 나눠 쓴다. 이렇게 서로 가깝고 평화로운 관계의 모임이 없단다.


사실은 홀딱 벗은 이면에 똑같은 찜질복을 입고 대면하고 있다는 동질성이 더 큰 이유로 보인다. 나이 불문, 직업 불문, 외모 불문이다. 똑같은 찜질복에 동급이다. 수건으로 양머리 틀어 맨 정도만 다를뿐. 여자들의 사우나 모임이 친해지고 끈끈해질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라스베가스 스피어 postcard from earth 영상 캡쳐

동창회나 동호회, 친목 모임에서는 이렇게 친해지기가 쉽지 않단다. 이런 모임에는 반드시 회원 간에 갈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단다. 자신을 가리고 드러낼 수 있는 각종 장비와 장신구가 갈등의 원인이다. 좀 더 비싼 자전거, 좀 더 최근에 나온 신상 골프채, 명품 가방의 화려함까지 평등한 관계가 아닌, 계층적 우열이 보이지 않게 작동한단다. 내 자전거가 상대보다 싼 것이라면 내 헬멧과 옷은 상대보다 비싸고 좋은 것이어야 직성이 풀린다. 나는 아니라고, 아닐 것이라고 하겠지만 인간 본연의 비교우위에서 앞서고자 하는 심리는 은연중에 등장하게 되어 있다. 동등한 평등관계가 아니라 차별 우위가 존재하는 것이다. 취미가 비슷해 한 공간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심리적 위축감과 우위감이 상존한다. 동호회에 오래 참석하지 못하고 나오게 되는 사례들이 대부분 그런 이유 때문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호회들이 번성하는 이유는 그나마 수평적 관계로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들여진 사회일수록 동호회가 많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자들이 사우나 모임을 통해 유대가 끈끈하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왜 그럴까? 목욕탕에서 홀딱 벗었다는 근본은 같지만 심리적 차원이 여자와는 전혀 달라서 그런 듯하다. 남자는 일단 홀딱 벗으면 딱 알아차린다. 굳이 글로 쓰지 않아도,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비교우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근육과 몸의 체형으로 보여준다. 어떤 놈이 센 놈인지 말이다. 그래서 남자들의 사우나 모임은 기본적으로 성립될 수 없게 된다. 평등한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속된 말로 물건 큰 놈은 사우나에서 옷 입을 때 빤스를 제일 늦게 입는다고 한다. 상스러운 표현 같지만 이 한 마디가 남자들의 사우나 모임이 안 되는 이유를 말해준다. 지기 싫고 굽히기 싫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자들의 사우나에서는 절대 대화가 없다. 사우나에서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말을 건다는 자체가 금기어다. 남자들은 오로지 씻는데 열중하고 땀 내고 피로를 푸는데만 집중할 뿐이다.


그러고 보면 상호 관계(interaction)를 통한 사회화에 있어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남자들의 마초적 수컷 본능이 각광받던 시대는 지난 듯하다. 남성들도 점점 중성화되고 온순화되는 듯하다. 진화의 시간은 참으로 오묘하다. 나이 들어 노년으로 갈수록 남자들은 초라해지는 반면, 여자들은 활기 있는 노년을 보내는 경우를 많이 본다. 나이 든 노년의 꼰대들은 점점 골방으로 들어가고 중년의 여성들은 활발히 모임을 하고 사회로 나와 돌아다닌다.


진화적 관점에서 남성들은 반성할 일이 많은 듯하다. 이러다 멸절하는 남성 종이 될 수 도 있겠다. 남자들도 여자들처럼 사회화에 관심을 갖고 끈끈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들여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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