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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01. 2024

단어사전(單語辭典)이 뭔지 아니?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단어 선택에 엄중하게 됩니다. 정확한 의사 표현과 전달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같은 단어 같은 문장을 놓고도 해석이 달라집니다. 주석을 달아 '이건 이런 뜻입니다'라고 설명을 달기까지 합니다. 왜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걸까요?


사람마다 각자의 문장과 각자의 이해와 각자의 해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을 했고 공부를 했고 고민을 했는지가 말투에서, 문장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이를 각자의 칼러이고 각자의 개성이라고 합니다.


같은 자리에 앉아 대화를 하면서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를 간혹 보게 됩니다. 토론회나 공청회를 보게 되면 답답할 정도로 서로 다른 말들을 내뱉는 사례를 비일비재하게 경험합니다. 각자의 언어와 이해로 상대방을 보고 있기에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해의 방향이 다른 가장 원초적인 원인 중의 하나가 단어에 대한 정의에 대한 공부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인 듯합니다. 일상용어에서부터 전문 용어까지 단어들은 각각의 쓰임새에 맞게 개발된 것으로, 대중이 합일하여 이 경우, 이 상황, 이 사물은 이렇게 지칭하자고 이름을 붙여 놓은 것입니다.  이 단어 하나하나에는 단어가 만들어질 당시의 시대상과 배경, 감정, 분위기 등이 총합으로 연결되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단어 하나하나마다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사물을 다른 이름으로 명명하면 그 사물은 공동체에서 존재의미가 없어집니다. 사물은 존재하지만 인간존재내에서 사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단어 하나하나는 엄중한 의미를 담게 됩니다.

그런데 학교 교육 과정에서조차 단어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공부하는 시간이 거의 없는 듯합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제가 경험한 초중등대학 과정을 통해 단어의 뜻을 공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글자의 철자가 틀렸는지를 검사하는 '받아쓰기'를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해보고는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습니다. 영어 단어의 한국말 뜻을 몰라 사전을 찾는 행위는 같은 의미일 수 있으나 예외로 합니다.


결국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단어를 사용하고 문장을 써왔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식하게 삶을 살아왔구나 반성하게 됩니다.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경험적으로 들어왔고 그에 따라 통용되어 온 문장들을 나열하는 수준에서 살아왔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도 대충 살아지고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단어 공부의 수준이 결국 사람 간의 대화에 벽이 생기는 근원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같은 문장, 같은 대화를 하면서도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오늘도 '관점의 사각지대'라는 단어를 접하면서 단어에 대한 이해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각지대(死角地帶 ; blind spot)'는 "어느 위치에 서면 사물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각도"를 말하며 "관심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구역"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관점의 사각지대'는 "같은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거나 수렴되지 못하고 한 생각의 관점이 최선인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확증편향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각지대를, 사각형 할 때의 사각(四角)으로 받아들여,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해를 해버리면 대화의 그다음 단계는 어디로 갈지 뻔하게 됩니다. 말싸움이 될 뿐입니다.


단어 사용의 엄중함에 따라붙는 것은 단어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문해력의 기본입니다. 단어 사용의 정확도가 그 사람의 수준과 교양을 말해 줍니다. 몇 마디 대화를 해보면 바로 눈치챌 수 있습니다. 타인과 대화를 하거나 조직에서 가장 기분 나빠하는 때가 '자기보다 수준이 못 한 사람의 설명을 듣거나 지시를 받을 때'라고 합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이미 알고 있고 예측이 가능한데 그냥 듣고 있는 것을 참기 힘들어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알고 나열한다고 해서 존경받거나 하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적재적소에 적합한 단어를 구사하고 유머까지 섞어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해야 합니다. 달변의 연설가나 쾌도난마의 글쟁이는 타고나는 것보다는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정확히 짚어내는 족집게 능력을 기른 덕분일 겁니다. 우리 같은 범인들이야 그 정도까지는 아닐지라도 상대방이 말한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여 시선의 눈높이를 맞춰갈 수 있을 정도로라도 사전을 뒤적이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오해하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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