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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02. 2024

일상의 위대함

일상(日常 ; daily routine), 매일 반복되는 보통의 일을 말한다.


매일 반복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공기와 물처럼 늘 그 자리에 있고, 늘 하는 것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다 문득, 이른 아침 출근길에 마주하는 차가운 공기의 흐름을 느끼는 순간, 공기의 소중함을 화들짝 깨닫게 되고, 태양빛 뜨거운 여름날, 타는 목마름으로 갈구하던 시원한 물 한 모금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알게 된다. 고마움과 경이로움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코 밑에, 내 목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내가 느끼고 감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마치 미시세계인 양자의 공간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세상의 바탕은 양자 세계로 이루어진 것과 같다.


그렇게 무시하던 '일상'이라는 루틴도 마찬가지다. 휴대폰 모닝콜 소리에 눈을 뜨고 억지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양치를 하고 샤워를 하고 서랍을 열어 속옷과 스웨터를 고르고 냉장고를 열어 우유 한잔 마시는 것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는 '일상'이 매일 반복되는데 한 번도 뒤돌아 이 루틴의 소중함을 엿보려 하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했던 것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이런 '일상'이 정말 당연한 것일까? 


어제 세상과 이별한 존재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한 오늘이다. 누구에겐 당연하지만 또 다른 누구에게는 경험할 수 없는 오늘이자 시간이자 아침이다. 세상 사람 각자의 '일상'이 있고 그 일상은 각자의 의미로 각자의 소중함으로 살아있다. 이 '일상'의 살아있음을 아는 순간이 중요하다.


심지어 숨 쉬고 있음을, 눈뜨고 보고 있음을, 배고픔을, 걷고 있음을,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음을, 하품하고 변기에 앉아 용변을 보고 있음을, 손톱이 자라고 있음을, 흰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보이고 있음을, 그리고 출근할 곳이 있어 전철을 타고 이리저리 군중 속에 끼어가고 있음을 관조하게 되는 순간,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화들짝 놀라게 된다.

A4용지 끝에 베인 손가락에 밴디지를 붙여보면 알고, 계단 내려가다 삐끗해서 발목이 시큰거려 보면 알고, 봄이라고 갈아입은 가벼운 옷사이로 스며든 찬기운에 코가 막혀보면 알고, 지난밤 코 골며 설친 잠자리 때문에 눈뜬 아침이 멍해 보이면 알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상'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말이다.


특히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 일상적인 루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깊이 깨닫고 있을 것이다. 골프를 칠 때도 샷을 하기 전에 일명 가라 스윙이라고 하는 프리 스윙 횟수를 몇 번과 웨글의 루틴을 한다. 몸의 기억력과 정신적 안정감을 찾는 중요한 단서이기에 이 루틴 동작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기고 의도적으로 루틴을 만들기도 한다.


바로 '일상'은 반복이 주는 안정감이 핵심이다. 반복하여 몸에 익혀놓으면 추가적인 에너지가 들지 않게 된다. 무의식의 습관 동작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삶을 살고 살아가는 생존의 방법 중에 가장 효율적으로 개발된 도구다.


반복되는 일상이 누구에게는 무료하게 여겨지는 함정일 수 있지만 누구에게는 소중한 행운이 된다. 반복된 일상이 무기력에 빠지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삶을 유지하는 평상심이 되기도 한다.


일상의 조화와 균형, 경계를 넘나들고, 부족하면 채우고 넘치면 덜어내는 지혜가 그래서 필요하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여행의 여유가 중요하고 지금 이 순간의 몰입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일상 속에 담겨있는 웃음과 해학과 즐거움을 건저 내는 관점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지루할 것 같은 일상의 루틴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일상이 수렁이 아닌 꿀단지였음을 아는 순간, 출근하는 발걸음은 하늘을 나는 기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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