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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19. 2024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

일상을 살면서 무심코 지나치는 현상이나 사물, 사실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관찰해야 겨우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알고 나면 흠칫 놀란다. 중요함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있음에 고개 숙이게 된다. 


물과 공기만 해도 그렇다. 생명이 그 안에서 탄생되었고 그 안에서 생존하기에, 생명 존재 자체가 됨에도 평상시에는 한 번도 물과 공기에 대해 신경 쓰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간단히 입과 코를 1분만 손으로 막아봐도 금방 공기의 중요함을 알고 옹달샘 없는 산등성이를 반나절 낑낑거리며 걸어가 봐야 타는 목마름의 갈증을 체험하고 물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렇게 흐드러지게 피었던 봄꽃들이 피었던 자리에는 연초록의 잎들이 대신하고 있다. 그 흰색과 분홍색과 연붉은 색상을 눈에 담기도 전에 화무십일홍의 존재대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볼 수 있어야 보이고 들을 수 있어야 들린다. 아주 잠깐잠깐만 귀하고 중요하고 존재의 근원임을 깨닫게 되지만 그때뿐이다. 또다시 숨 쉬게 되고 갈증이 해소되고 꽃잎이 지고 난 이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리게 된다. 내가 보지 못하고 내가 듣지 못하면 그것은 있는 것이 아니다.


너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고 너무 안 보여서 그럴 수도 있다. 보고자 하고, 듣고자 해야 존재로써 다가온다. 산다고 하는 인생 역정도 똑같다. 참으로 그러하다. 버텨내고 살아내고 웃고 울고 비비고 아프고 다시 고개 한번 휘휘 저어보고 저벅저벅 걸어가는 일이다. 올바르게 사는 길, 인간답게 사는 길이라고, 하나의 길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각자의 길이 있다. "인생은 자기를 잦아가는 과정이 아니다. 자기를 창조하는 과정이다"라는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은 그래서 옳다.

살면서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 배우자가 되었든, 자식이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깊이 알고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 같이 한 집에서 살고 같은 침대에서 자고 같이 밥을 먹는다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가정 불화를 조장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다. 무슨 색깔의 속옷을 입었는지 안다고 상대를 모두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기본적으로 상대를 내가 잘 모른다는 전제를 까는 겸손이 필요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의 입장에서 경청하는 낮은 자세가 필요하다. 오래 같이 산 부부일수록 "그대의 말이 전적으로 옳습니다"라고 숙이고 따르는 것이 가정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남자들의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우스개가 우스개가 아니다. 정답이고 진리다.


'사람을 안다는 것'의 저자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사람은 강과 같다. 물은 늘 똑같다. 그러나 모든 강은 어떤 데서는 폭이 좁고 물살이 빠르다. 또 어떤 데서는 폭이 넓고 수면이 잔잔하다. 맑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고 진흙탕이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다. 사람도 똑같다. 모든 사람은 모든 성품으로 성장할 싹을 가지고 있다. 그런 싹을 언제는 하나만 드러내고 언제는 두 개 드러낸다. 어떤 사람이 어떤 때는 전혀 그 사람 같지 않을 때가 자주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동일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은 풀어야 하고 또 얼마든지 풀릴 수 있는 퍼즐이 아니라 결코 모든 것을 다 알아낼 수 없는 수수께끼임을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이다. 이때 눈빛으로 건네지는 선물은 바로 존중이다"라고 갈파한다. 사람에 대한 대단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내 주변에 있는 가까운 사람, 친구, 직장 동료, 업무상 만나는 여러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를 돌아보게 된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을까? 그들이 다가오는데 불편하도록 경계선을 높이 치고 있는 것은 아니었나? 일방적으로 말하기만 하고 들으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에 끝까지 귀 기울여 따뜻하고 존중하고 감탄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세로 바꿀 일이다.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lbert)는 "인간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작품인데, 정작 본인은 자기가 완성된 작품이라고 여긴다"라고 했다. '나'라는 작품을 만드는 일은 죽는 날 끝날 것이다. 그날까지 작품을 어떻게 조각하고 만져, 어떤 형상을 유지할 것인지는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적어도 마지막 작품으로 평가받는 날, 그래도 멋진 인생의 작품이었다고 칭찬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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