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병동의 친구를 찾아가다
10월 말이면 정년퇴직이다. 10월 한 달은 연차휴가를 냈다. 누구에게나 올 시한부 직장생활이다. 나에겐 이제 왔을 뿐이다. 場은 옮겨가는 것이지만 한 場을 끝낸다는 것에는 어떤 매듭이 필요하다. 출근을 안 하는 시간까지의 심정 그리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들을 바라보는 심경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요즘 내가 그렇다. 그렇다고 시간을 촘촘히 쪼개 쓰는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저 시간을 잘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서두름일 뿐인듯하다. 일부러 점심 저녁식사 약속을 잡고 바쁜 것처럼 위장을 할 뿐이다. 아무리 바쁜척해봐야 회사에 출근해 쏟아지는 전화와 이메일을 체크하고 하루 십여 명씩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정도에 비하면 새발의 피 정도일 테니 말이다.
지금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시험을 하는 단계다. 하루 일과 중 정해진 것과 그때그때 발생하는 일, 그리고 2-3주 정도 뒤에 다가올 예정된 일들에 대한 시간 안배를 어떻게 해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일을 처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를 적용하고 시행해 보는 과정이다.
운동시간만 해도 그렇다. 지난달까지 출근을 해야 하는 때에는 운동시간이 퇴근 후로 정해질 수밖에 없다. 퇴근 후 골프연습장에서 1시간, 그리고 저녁식사 후 8시부터 피트니스센터에서 근력운동 40분, 트레드밀 40분 뛰는 패턴으로 운동을 하고 주말 골프약속이 없을 때라야 아침 일찍 조깅을 나가는 정도였다. 백수가 된 지금은 하루 24시간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고 쓸 수 있다. 운동시간을 어떻게 안배할 것인지는 하루 일과를 짜는데 가장 중요한 절대 항목이 되었다.
일단은 모든 운동의 포인트는 저녁 약속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시간 배정을 하기로 한다. 저녁식사 약속이 잡혀있는 날은 저녁운동을 못 갈 것이기에 오전에 피트니스센터를 가는 것으로 세팅을 한다. 어떻게든 하루시간에서 운동시간이 차지하는 배분을 할당해 놓기 위해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건강이 최고임은 자명하다. 특히 근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대적임을, 주변인들을 보면서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어제만 해도 그렇다. 점심식사 약속이 있어 광화문에 나갔다. 교보문고에 책 도 살 것이 있어서 겸사겸사 광화문에서 점심약속을 했다. 약속된 만남으로 식사를 하고 커피숍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정년퇴직에 대한 소회며 앞으로 벌어질 삶의 시간들에 대한 물음을 나눴다. 그리고 교보문고에 들러 이번주 목요일 온라인 줌 강의 때 강독될 책 '브레인 에너지'를 샀다. 나흘 만에 독파해야 할 책이다. 이렇게 매주 목요일 줌 강의로 이어지는 책 읽기가 벌써 174회째다.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의 정회원 멤버로 거의 빠짐없이 듣고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속될 나의 자연과학 공부방향이기도 하다. 아직은 그저 박문호 박사가 열변을 토해놓는 지식을 주워 먹는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이제 백수로 오로지 공부에 할당할 시간도 자유로워진 만큼 더 많은 시간을 배분할 절호의 기회가 되어 은근 부담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각설하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헤어져 광명행 전철에 올랐다. 병원에서 투병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다. 이 병원 방문기를 써야 하나 조심스럽다. 아픈 친구를 글의 소재로 끌고 와도 되는가에 대한 망설임이다. 다쳐서 깁스를 하고 있거나 하는 정도라면 우스개 소리로 농담도 하고 나이롱환자라고 놀리며 재미나게 글로 끌고 들어올 수 있지만 어제 병문안 가는 발걸음은 그 수준을 넘어서 있어서다. 그래서 글로 표현하기가 망설여지고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래도 환갑의 나이에 병마와 싸우고 있는 친구를 위로하고 건강에 대해 소홀히 하고 있는 많은 다른 친구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차원에서 어제의 심경을 끄집어내 보겠다.
어제 갑자기 친구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가게 된 것은 동창들이 모여있는 카톡방에 친구의 소식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지난 일요일 먼저 병문안을 왔던 다른 친구가 근황을 알려주며 쾌차를 응원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입원한 친구는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때 같은 반에서 반장을 했다. 공부를 잘하는 범생이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다녀와 대학 강의도 나가고 영어학원도 차려 나름 잘 나갔다. 고등학교 동창 모임의 회장도 맡았다. 그러던 친구가 코로나 팬데믹 전에 방광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항암치료를 하면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재활을 잘하고 있는 모습을 카톡방에 매일 같이 올렸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온 듯하더니 지난봄부터 카톡방에 올리던 운동 사진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그런가 보다 정도로 친구들이 다들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간혹 전화통화를 한 친구들이 알음알음 경과를 알려줬다. 그래도 여름까지는 건강상태가 심각하게 진행되는 걸 숨긴 모양이다. 암이 척수로 전이되어 걷지 못하는 상황까지 전개되었고 급기야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겨진 상태였다.
어제 혼자 병원을 찾아가면서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을 한다고 위안이 될는지, 그저 손잡아 주는 것만 할 수 있을 텐데 --- 내 손이 떨렸다.
그렇게 친구가 입원한 병원에 도착했다. 병실이 있는 층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호스피스병동이다. 상태가 안 좋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호스피스 병동의 알림판이 지금 상황의 모든 것을 말해줌을 직감한다. 간호사실에 방문객 인적사항을 적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병실문을 열었다. 3명의 환자가 있는 병실이다. 친구의 모습이 눈에 안 들어온다. 3명 모두 잠을 자고 있는데 내가 아는 친구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침대에 부착되어 있는 환자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야 지금 내 앞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 사람이 내 친구임을 알았다. 항앙치료하느라 머리카락도 많이 빠져있고 근육도 빠져있어 알아볼 수가 없었다. 가슴 한편이 무너져 내렸다. 잠을 깨울 수가 없었다. 1시간 반을 기다렸다. 이 시간 동안 고등학생 시절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건강에 대한 경각심이 무게추처럼 나의 어깨를 짓눌렀다. 나도 갑상선암으로 오른쪽 갑상샘을 적출한 지 3년째이기에 지금 누워있는 친구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일 수 도 있었음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2시간이 되어가는데도 약물에 잠식되어 있어서 그런지 잠을 깨질 않는다. 눈을 뜨고 마주할 수 있었으면, 그래도 친구가 소식 듣고 달려와줬음을 알아주었으면 좋을 텐데 깊은 잠에서 나오질 않는다. 다시 찾아오라는 친구의 소환인 듯하다. 간호사실에서 종이 한 장을 얻어 편지를 썼다. 무슨 말을 써도 위안과 위로가 되지 않음도 안다. 그저 내가 왔다 갔다는 흔적일 뿐이다. "다시 또 찾아올게 그때 얼굴 보자"라고 하고 편지를 머리맡에 놓고 병실을 나섰다. 눈물이 앞길을 흐릿하게 감추고 만다. 얼른 회복해야 할 텐데, 친구들 다시 모여 왁자지껄 웃으며 소주잔 기울여야 할 텐데, 꼭 이겨내고 바깥 산책을 다녀야 할 텐데 ---
친구가 누워있는 병원을 바라보는 심정은 참 많은 걸 깨닫게 해 준다. 지금 나에게 닥친 현실이다. 환갑의 나이가 한창이라고 하는데 누구에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나를 다시 보게 된다. 운동에 게을러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