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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01. 2024

백수의 첫날 - 받아들이기

내 일이 되었다 - 정년퇴직 백서 17

오늘부터 완전한 백수다.

먹이를 찾아 광야를 어슬렁거리는 백수가 아니고 할 일 없어 빈둥거려야 하는 백수(白手)다.


참으로 그러하다. 어떤 백수가 되느냐는, 전적으로 내가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단어를 쓰며 이 언어와 단어로 어떤 생각을 떠올리느냐에 달렸다. 조금 유식한 말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한다. 마음먹기 달렸다는 거다. 그 마음과 생각의 시작이 언어이고 말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존재와 실존과 현상은 모두 언어에서 시작됐다. 말로 하지 못하는 것은 있어도 있는 게 아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없는 것과 진배없다.


백수 생활의 첫 아침을 맞으며 퍼뜩 드는 생각이 지난 한 달간 "정말 지지리 궁상스런 생각에 휩싸여 살았구나!"라는 자조 섞인 반성이었다. 정년퇴직 백서랍시고 16번씩이나 연재하듯 아침글에 심경을 담아왔다. 온갖 회한과 걱정과 심지어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까지 엮어가며 희망고문도 했다.


부질없는 짓이었음을 눈치챘다.


이렇게 백지의 시간에 서 있고 그 어떤 불안이나 그 어떤 환희도 존재하지 않는 현재라는 순간만 있을 뿐이다.


막연한 걱정은 말 그대로 막연할 뿐이다. "걱정해서 걱정이 사라진다면 걱정을 않겠네"라는 표현이 있듯이 전혀 필요 없는 상상으로 머릿속만 복잡하게 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준비되지 않은 자의 막연한 불안은 그래서 더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노는 것을 배우지 못했고 시간 쓰는 법을 알지 못했고 주어진 시간과 여유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효율성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기에 발생하는 홍역 같은 것이다.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찬찬히 기획하면 된다. 무엇을 하든 계획이 있어야 하고 목적이 있어야 하고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시간 쓰는 법을 익히는 것이 삶의 풍요를 결정짓는 명확한 잣대가 된다.


받아들이면 된다. 받아들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나에게는 지금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 무엇이나 할 수 있고 해 볼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다. 살면서 이런 선택의 자유는 흔치 않았음에 흠칫 놀라게 된다.


정년퇴직 전까지 가장 큰 장애물은 시간이었다. 그동안은 시간이 안 돼서, 내일 출근해야 해서라는 핑계로 자기의 시간을 못 만들어냈다. 유일한 구속의 시간으로부터의 자유가 휴가 며칠이었다. 지금은 온통 내 시간이다. 어떻게 쓸지를 고민만 하면 된다. 시간이 없어서 안된다는 고민의 자리를 어떻게 시간을 쓸 것인지의 고민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얼마나 흥미진진한 결정의 순간인가 말이다.


구질구질한 은퇴와 퇴직과 정년의 단어를 지워버리면 새로운 시간의 세상이 펼쳐진다.


참으로 편안한 백수의 첫날 아침이다. 초원을 뛰어다니는 임팔라도 보이고 얼룩말도 보인다. 습지 옆에 있는 물웅덩이에서 다리를 옆으로 길게 넓히고 목을 빼 물을 마시고 있는 기린도 보인다. 야생의 백수에게는 모든 것이 먹이요 쉼이요 여유로 보인다. 어떤 백수가 되느냐는 관점의 높이 차이에 있다.


휘파람 불며 차 한잔을 책상에 올려놓고 오늘 전개될 여러 일들의 순서를 정해 본다. 시간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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