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30살이면 나보다 두 살 많네. 그럼 언니는 내가 전에 일했던 곳 선배라고 해요. 무슨 회사냐면, 웹디자인? 그래, 웹디자인 회사.”
“이쪽은 사진보다 많이 어려보이네. 동호회 친구로 하죠. 취미를 요리라고 했으니까 요리동호회 정도면 통할 것 같아.”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일을 손쉬운 역할극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불도, 노래도 꺼진 노래방 안이었다. 다섯 명의 여자가 무릎을 마주대고 앉아 역할을 나누는 것도 이상했지만 무엇보다 이상한 건 모두의 표정이 이상하리만치 태연하다는 점이었다. 중심에서 얘기하던 여자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쪽은 스물여덟? 그럼 나랑 동갑이니까 친구라고 해. 내가 서울 올라오자마자 친해진 원룸텔 이웃 정도면 되겠지. 자, 다들 잘 기억해요. 내 이름은 한도, 스물여덟살, 고향은 울산이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왔어요. 가족은 엄마 아빠 남동생 하나. 울산에선 할머니랑 같이 살았다는 정도만 외우고 있어요. 나머진 내가 대충 알아서 맞출 테니까.”
자신을 한도라고 밝힌 여자가 딸깍, 클러치를 열었다.
미리 준비해둔 듯 빳빳한 만 원짜리를 꺼내 우리에게 한 장씩 건네며 이름을 확인했다.
“일당은 업체에서 받을 테니까 이건 내 개인적인 팁. 진짜 잘해줘야 돼요.”
어둑한 실내에서 미러볼이 돌아가며 과도하게 화사한 빛이 쏟아졌다. 빛이 지나간 자리마다 이전보다 더 진한 그림자가 남았다. 번쩍거리는 동시에 새카만 얼굴을 한 한도를 바라보며, 나는 돈을 받아들었다. 나는 앞으로 꼭 두 시간 동안 한도의 절친이 될 예정이었다.
스무살 때나 스물여덟살 때나 내 경제사정은 변함없었다.
가까스로 매일을 이어갔고 적금이나 보험은 꿈도 못 꿨으며 일에 대한 애증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프리랜서가 된 뒤 나는 수많은 모욕의 현장에 내던져졌는데, 모욕이 돈이 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니 별 수 있나. 나는 여전히 알바하는 인생으로 살고 있었다.
당시 막 생겨난 하객도우미알바는 조직이 허술하고 알바비가 많았다. 기본금은 2만 5천원. 결혼식 참석 5회당 5천 원씩 금액이 올랐고, 부케를 받으면 1만원이 추가되었다. 15회 이상 결혼식에 동원된 알바생은 간이매니저가 될 수 있었다. 매니저는 너덧 명의 알바생을 통솔하는 역할로 회당 1만원씩을 더 받았다.
나는 그 알바가 썩 마음에 들었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신부대기실에서 십여분 쯤 수다 떨며 사진 찍고, 신부측 하객석에 앉아 예식을 본 후 신부친구사진 촬영을 하면 일과가 끝났다. 받은 식권으로 뷔페를 먹든 답례용화과자세트를 받든 그건 자유였다. 우리나라 특성상 예식은 삼십분 내로 끝이 나니, 사십분 노동에 식사 및 간식 제공이라는 그야말로 꿀 빠는 알바였던 것이다.
스물여덟 살인 나는 나름 결혼적령기였다.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중반까지의 신부들이 선택하기 딱 좋은 나잇대라 일이 몰렸다. 세상에 이렇게나 친구 없는 신부가 많은 걸까 싶을 정도였다. 당시 업체에서는 이런 식의 홍보를 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오래 생활하신 분,
사회생활을 길게 하지 않아 친구 및 동료가 적으신 분,
개인사정으로 인해 인맥이 넓지 않으신 분,
신랑 측 하객이 많아 균형을 맞추고 싶으신 분,
이런 분들께 진심을 다해 결혼을 축하해드릴
맞춤형 하객을 보내드립니다. (하객도우미 직접 선택 가능!)”
두 달여를 일했을 뿐인데 나는 건당 5만원을 받는 알바생이 되어 있었다. 토요일 12시 예식과 2시 예식을 동시에 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사는 지역이 같아 자주 한 팀으로 묶이는 알바생과 친분이 생겨 우리는 더 자연스럽게, 더 익숙하게 신부대기실로 스며들곤 했다.
신부대기실에서 하는 대사는 대부분 일정했다.
“잠은 좀 잤어? 새벽부터 메이크업하느라 정신없었지? 그래도 정말 예쁘게 됐다. 머리도 잘 어울려, 나도 나중에 결혼하면 이렇게 해달라고 할까봐.”
“어머, 드레스 진짜 예쁘다!”
“우리 사진 찍어야지, 사진. 기사님, 저희 예쁘게 찍어주세요.”
우리는 다정하게 신부를 둘러싼 채 사진을 찍었다. 매니저는 신부 사진을 여러 장 찍었고,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우리들을 찍어달라고 휴대폰을 내밀기도 했다. 사실 그건 업체에 제출하는 출석확인용 사진에 불과했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웃었다.
호들갑은 적당히, 세련된 형태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너무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신부대기실이 허전할 경우에는 좀 오래, 적당히 붐빌 경우 간단한 인사만으로 우리의 임무는 다했다. 하객사진을 찍을 때 셋째 줄 이후로 서는 게 정석이었으나 우리를 부르는 신부의 줄은 대개 2줄을 넘기지 못했다. 우리는 신부 등 뒤나 옆에 붙어 서서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하루는 소규모호텔에서 열린 결혼식이라 스테이크를 만족스럽게 먹고 나선 참이었다. 매니저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알바비는 늘 현장에서 현금으로 지급되었는데, 그 즈음 화장실에서 돈을 나눠주다 의심을 산 사례가 있었다. 매니저는 식이 진행될 때 슬그머니 주먹 쥔 손으로 돈을 건네주곤 했다.)
“온도씨, 예식 끝나면 저녁에는 뭘 해?”
“그냥 뭐, 이것저것요.”
“그럼 다음주 예식 끝나고 저녁 알바 하나 더 할래?”
매니저의 설명은 간단했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가 있는데, 신랑 될 사람이 자꾸 친구들을 보여달라고 조른다는 것이다.
“만나서 간단히 저녁만 먹으면 되는 일이야. 별 거 없이 그냥, 나 친구 있다, 이것만 확인시켜주면 돼. 하객이랑 별반 다를 거 없지.”
“친구 역할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요, 뭐.”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도는 우리를 식사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30분 일찍 불렀다. 건물 계단을 타고 올라가기에 2층 커피숍에 가는 줄 알았는데 한도는 꼬박꼬박 계단을 밟고 4층 노래방까지 올라갔다. 불 꺼진 방에 무릎을 맞대고 앉아 이름을 외우고, 식사 장소로 다시 옮겨가는 동안 긴장 때문에 뒷목이 뻣뻣해져왔다.
퓨전음식점 개별실에서 우리는 나란히 마주앉았다. 한도의 남자친구는 우리를 한 명 한 명 신중히 살폈다.
“나이가 다 다르시네요.”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나이 뿐 아니라 스타일과 키, 말버릇이 전부 다 달랐는데 인상만큼은 놀라울 만치 비슷했다. 그러니까 가장 평균의 얼굴,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누구나 쉽게 잊어버릴 만한 얼굴이었다.
“이쪽 친구들이라 그래요. 한도 울산 친구들이야 중 고교 동창이니 나이가 비슷하지만 사회 나와서 생긴 친구들이야 어디 그런가요. 참, 근데 무슨 일 하세요?”
“한도 울산 친구들을 보고 싶었는데.”
“다들 먹고 살기 바쁜데다 울산이 좀 멀어야죠. 저희끼리도 약속 맞추는데 한참 애먹었어요. 그치? 다들 휴일도 제각각이고 일정도 바빠서. 어떻게 오늘 약속 시간 괜찮으셨어요?”
“저는 자영업자라 시간 조정이 남들보다는 편합니다.”
“자영업? 어떤 일 하시는데요?”
매니저가 대화의 대부분을 이끌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뭉뚱그려 대답한 뒤 남자에 대한 것들을 열심히 캐물었다. 그가 보기에 우리는 친구의 연인에게 궁금한 게 많은, 호기심 많고 발랄한 친구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나는 자꾸 체할 것 같은 마음에 거듭 물을 마셨다. 요리는 맛있었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한도는 자연스럽게 남자친구와 우리 모두의 음식을 챙기고 말을 걸고 모자란 음식을 추가 주문했다. 식사가 끝날 때쯤 남자가 말했다.
“다행입니다.”
“뭐가요?”
“한도는 울산 얘기나 친구들에 대해선 비밀이 많았거든요. 혹시 나한테 말 못할 게 있나 싶어 몇 번씩 재촉했습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들 하니까요. 그런데 오늘 보니.”
남자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쑥스럽게 웃었다.
“내가 왜 그런 의심을 했을까 싶어요. 친구분들이 이렇게 좋은 분들인데. 다들 결혼식에도 와 주실 거죠?”
그럼요, 당연하죠. 우리는 호들갑스럽게 대답하며 한도가 예약한 식장의 교통과 홀의 우아함과 음식 맛에 대해 떠들어댔다. 그렇게 유명한 곳인가요? 남자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그럼요, 예신들 워너비예요, 거기. 예약한 식장이 어디였든 똑같이 답했을 우리가 후식으로 나온 과일을 집어먹으며 답했다.
“술을 한 잔 더 대접해도 될까요?”
남자가 물었다. 우리는 정중히 거절했다. 내일 출근하는 애가 있어서요. 결혼식날 곧 볼 텐데요. 그렇게 답했지만 사실 예약 시간이 다 되었을 뿐이었다. 인사를 나눈 남자가 차를 가지러 간 사이 한도가 빠르게 말했다.
“결혼식은 딱 이 멤버 그대로 와주세요.
업체에도 그렇게 신청할게요.
오늘처럼만 해주시면 보너스도 따로 드릴 거예요.”
우리는 남자가 건네준 청첩장을 받아 각자의 가방에 넣어둔 상태였다. 남자의 차 조수석에 탄 한도는 마지막까지 상냥하고 애틋한 얼굴로 우리와 작별인사를 한 뒤 떠났다. 우리는 건물 입구로 도로 들어가 매니저에게서 일당을 현금으로 받았다.
“과거가 있는 거 같지?”
“울산에서 엄청 놀았다거나.”
나는 남자가 중간중간 했던 말들, 한도와 매니저가 재빨리 잘라버렸기에 더 이어지지 않았던 몇몇 대사들을 떠올렸다. 그럼 울산에 같이 가보신 적은 없나요? 한도가 울산에만 가면 며칠씩 연락이 안 돼서 걱정했거든요. 일찍 독립한 사람답지 않게 한도가 마음이 약해서 걱정입니다. 친구분들만큼만 야무지면 좋을 텐데. 세상 물정에도 어둡고 순진해서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에요. 빨리 결혼해서 제가 지켜주려고요.
이건 정말 거짓말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하객도우미 자체가 거짓으로 점철된 일이었는데 면대면으로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사기’라는 걸 인식한 셈이었다. 한도가 어떤 사람이든간에, 숨기고 싶은 것의 경중과 상관없이 단 하나의 사실만 남았다.
남자는 속았고, 명백한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
사기. 기만. 피해자. 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다녔다. 거리는 캄캄해져 있었고 여기저기 불을 켠 간판들만이 노래방에서 홀로 돌던 미러볼처럼 선명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자, 그럼 다음 결혼식장에서 보자고요. 이번엔 진짜 친구 결혼식 가는 기분이겠다, 신랑도 봤고 아는 게 너무 많아서. 그치?”
매니저가 웃으며 어깨를 툭 친 뒤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걸음을 눌러붙이듯 천천히 늘여 그들로부터 떨어졌다. 버스정류장에 있는 쓰레기통에 남자에게서 받은 청첩장을 반으로 접어 밀어 넣었다.
나는 업체에 등록한 프로필을 삭제했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업체와 매니저들의 전화번호도 전부 수신거부 처리했다. 되도록 많은 돈을, 가능한 편한 방식으로 벌고 싶었지만 이건 아니지, 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고.
나는 생각대로 행동했다.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것은 단 하나, 남자에게 사과하는 일 뿐이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