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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온도 Mar 01. 2020

너는 왜 하필 선생이 됐니?

선을 넘는 사람들 (5)

선을 넘는 사람들

(5) 너는 왜 하필 선생이 됐니?    




                

고도에 대해 떠올리면 한 가지 감정만이 남는다.

죄책감.

꼭 한 줌의, 그러나 더없이 선명하고 뚜렷한 색깔의 감정.       


    

지금 떠올려보면 고도는 지능이 약간 낮았던 게 아닐까 싶다. 두드러지게 지능이 떨어진다기보다 애매하게 경계에 걸쳐진 정도 말이다. 특수교육을 받기엔 지나치게’ 지능이 높고일반교육을 받기엔 아주 약간’ 모자란.           



고도는 체형도 생김새도 또래 아이들과 비슷했다. 결이 좋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고, 입고 있는 옷 색깔에 따라 주황이나 초록 핀으로 앞머리를 정수리에 고정시켰다. 뒤통수가 칼로 자른 지우개처럼 납작하고 치아가 유난히 못생긴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을까. 그러나 그 정도 특징을 가진 아이들은 주변에 잔뜩 있었다.           



눈에 띄는 건 고도가 말을 할 때였다.           



고도는 발음이 어눌했고 긴 문장을 잘 말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수업 특성상 발표 수업이 주를 이루는지라 고도는 수차례 자리에서 일어나 어눌한 목소리를 내야 했다. 아주 오래 기다리면 고도는 천천히,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걸 기다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담임은 고도를 눈에 띄게 성가셔했다. 고도가 어떤 행동을 하든 틀림없이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그 행동을 비난했다. 재채기를 하면 입을 못생기게 벌리고 앞사람 머리에 침이 다 튀게 재채기를 했다고, 머리를 긁적이면 비위생적이고 무례한 행동을 했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담임이 고도를 일으킨 뒤 하는 첫 대사는 이것이었다.        



   

“너 지금 뭐했어! 지금 한 거 똑같이 다시 해봐, 당장!”




히스테리에 가까운 담임의 고함소리에 반 아이들 시선이 일제히 고도를 향했다. 고도는 쭈뼛대다 자신의 행동―지우개를 감싸고 있던 비닐을 구겨 귀에 넣어봤다든가 책 모서리를 앞니로 갉작였다든가 하는 대개의 아이들이 할 법한 행동―을 반복했고, 담임은 과장되게 눈을 질끈 감으며 끔찍하다는 비명을 질렀다.         


       

담임은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이었으므로 조증에 걸린 환자처럼 깔깔댈 때도 있었다. 그럴 때의 담임은 고도를 자리에서 일으켜 조롱거리로 삼았다.           



“고여사(담임은 성씨가 고였던 고도에게 ‘고민되는 여사’라고 별명을 붙여 불렀다. 당연히 이 별명은 반 아이들 모두가 따라 불렀다)를 닮은 동물은 뭐가 있는 지 말해볼까?”     


“고릴라요!”

“고등어요!”

“고추요!”          



반 아이들이 아무 답이나 댈 때마다 담임은 소리 높여 웃었다. 우리는 담임을 더 웃게 하기 위해서, 그녀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 점점 더 유치하고 모욕적인 것들을 골라 소리쳤다.              


  

그 때 우리는 고작 열한 살이었다. 
일주일 내내(토요일에도 학교에 가던 시절이었으므로) 모든 과목을 오로지 담임에게서만 배우던, 담임을 부모보다 더 오래 마주하던 시기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이 변명이 될까.                     



우리는 습관처럼 고도를 놀렸다. 그러나 고도를 놀리는 일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 아니어서(고민되는 여사! 라고 냅다 소리친 뒤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몇 번 별명을 부르곤 끝이었다.      



고도는 수학 문제를 잘 풀지 못했고 말하기듣기 시간에 늘 지적을 받았지만 고무줄과 땅따먹기를 특히 잘했다. 공기나 실뜨기처럼 손가락을 움직여 하는 일은 굉장히 못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글씨를 쓰는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렸던 것 같다. 그럼 수학이나 국어를 못했던 게 아니라 문제를 풀고 글씨를 쓸 시간이 부족했던 것뿐인지도 모르겠다.           



고도를 놀리다가도 우리는 고도와 펄쩍펄쩍 뛰면서 고무줄놀이를 했다. 담임이 교실을 비웠을 때만이었다. 고도와 노는 걸 담임에게 걸리면 담임은 눌 고도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여사 옮는다! 너 그렇게 붙어있으면 고여사한테서 바보가 옮는다!”



       

그 이상한 일은 일 년 내내 반복되었다. 우리는 담임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담임 눈치를 보며 고도를 놀리고 무시했다. 담임이 사라지면 뒤에서 고도와 말뚝박기와 개뼈다귀를 하면서 놀았다. 담임은 고도가 입을 크게 벌리고 웃을 때마다 팔팔 뛰며 고도의 치아가 ‘들개 이빨’이라고 비난했지만,        


  

모두 다 똑같이 입을 크게 벌리고 웃을 때에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고도와 내가 방과후 운동장 구석 벤치에 마주앉아 있게 된 건 리코더 때문이었다.          



나는 리코더를 썩 잘 부는 아이였다. 고향의 봄 리코더 합주 악보가 음악책에 나왔을 때 담임은 나와 다른 친구 하나를 불러 교단에 세웠다. 말하자면 우리는 ‘시범조’였던 셈이다.           



“자, 여기는 스타카토로 톡 톡 끊어서 불어야 하고.”     


라고 담임이 말하면 친구와 내가 리코더를 톡 톡 끊어서 불었고     


“여기서 반주리코더는 3박자로 길게 한 음을 불어야 돼.”     


라고 말한 뒤 눈짓을 하면 부우우우 하고 길게 불었다.           



“얘네는 시험을 볼 필요도 없어, 10점이야.”           



담임이 그렇게 말하며 실기평가지를 흔들어 보였다. 거기에는 우리 이름 옆 평가란에 빨간 볼펜으로 숫자 10이 쓰여 있었다. 실기평가는 일주일 뒤였고, 이미 평가가 끝난 우리는 잘 못 부는 아이들을 도와주라는 얘기를 들었다. 어깨가 으쓱으쓱해지는 순간이었다. 돌연 담임이 눈을 잔뜩 찌푸리며 고도를 가리켰다.        


   

“리코더를 그렇게 휘두르면 침이 다 튀어나오잖아! 고여사 도미솔은 불 줄 알아?”        


  

악착같이 고도를 교단으로 끌어낸 담임이 악보를 들이밀었다. 불어봐! 자리로 돌아갈 타이밍을 놓친 나와 친구는 그 옆에 어정쩡하게 서 있어야 했다. 손가락이 굼뜬 고도는 리코더를 불지 못했고, 한바탕 히스테리에 가까운 폭언이 쏟아졌다. 새된 소리를 내던 담임이 불쑥 내 팔을 움켜잡는 바람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온도, 너! 네가 고여사 리코더 가르쳐! 다음 주까지 고여사가 리코더 못 불면 다 온도 네 책임이야! 똑바로 가르쳐! 손바닥을 때려서 가르치라고!”           



수업이 끝난 뒤엔 교실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재빨리 하교했고, 할 수 없이 나는 고도와 운동장 구석 스탠드에 앉았다. 10월이었고 바람이 제법 쌀쌀해서 리코더를 불면 불수록 추위에 손이 곱았다. 아무리 가르쳐도 고도는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불지 못했다.           



교문 쪽에서 얼쩡거리며 나를 기다려주던 친구들을 벌써 다 돌아간 뒤였다. 운동장 끝에서부터 뉘엿뉘엿 해가 기울고 있었다. 고도가 아니었다면 나는 친구들과 문방구에서 부르스타에 철망을 얹어 구워주는 쥐포와 쫄쫄이를 먹고 있을 터였다. 뽑기를 한 다음 돔 형태의 플라스틱 껍데기를 신발 뒷축으로 힘껏 깨뜨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학교 앞 분식집은 떡볶이를 시키면 자두를 하나씩 서비스로 주었다. 그 모든 즐거움을 빼앗긴 채 나는 지금 왜?           



억울한 마음에 화가 치솟았다. 고도는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했고 몇 번이나 시범을 보여줘도 멍한 눈으로 구경만 했으며 손가락은 꼼질거렸고 박자감각이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시멘트로 된 스탠드 때문에 엉덩이가 시렸다.           



나는 말했다.           



“너 진짜 이번에도 틀리면 손바닥 때린다!”          


 

그 때의 내 목소리는 담임의 것과 똑같았을 것이다.           



고도가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저었고, 이전보다 더 열심히 리코더를 불기 시작했다. 그래도 네 마디를 넘어가지 못했다. 나는 담임이 그랬던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이 바보 멍청이! 너한테 내가 몇 번을 설명해야 돼! 이 머저리야!) 고도의 손바닥을 잡아 폈다. 담임이 그랬던 것처럼 양 손바닥을 펼쳐 나란히 붙인 뒤 리코더를 힘껏 내리쳤다.           



철썩. 나는 그 상황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불가사리가 움츠러드는 것처럼 순식간에 고도의 손이 쪼그라들었고, 고도의 입이 크게 벌어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리코더를 깨뜨릴 것처럼 세게 움켜쥐고 있었는데, 내가 만들어낸 파열음에 심장이 멎을 만큼 놀란 상태였다. 리코더 끝에서 단단하게 부딪히던 손바닥 때문에 손목이 지잉 지잉 울렸다. 진공상태처럼 멈춰 있던 세계가 탁 트이며 고도의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리코더를 움켜쥔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굳어 있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건 그 다음이었다.       


    

나는 고도의 손바닥을 살핀다든가 콧물을 닦아준다든가 하는 일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고도 옆에 있는 게 극도로 두려워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리코더를 가방에 쑤셔 넣었다. ‘내일까지 연습해와, 점심시간에 가르쳐 줄 테니까’ 라고 웅얼웅얼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문을 향해 걷는 동안 지잉 지잉 계속해서 손목이 울렸다.                



           





다음 날 고도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내 앞에 앉았다. 집에서 연습했는지 일곱 마디쯤을 불었고, 리코더 끝으로 침이 뚝뚝 떨어졌다. 고여사, 침 흘려! 더러워! 주변이 호들갑을 떠는 동안 고도는 어쩔 줄 몰라하며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휴지를 뜯어와 책상에 떨어진 침방울을 닦았다. 고도가 나를 흘끔거리며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열의 없이, 내 안에 있는 모든 생기가 빠져나간 것처럼 기계적으로 고도에게 다시, 다시 설명하고 손가락 자리를 짚어주었다. 어떤 종류의 감정도 느끼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이제 리코더 가져오지 마.”           



점심시간 종료 종이 울리자마자 나는 고도에게 말했다. 고도가 특유의 느슨한 얼굴로, 그러나 여전히 겁먹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이제 안 할 거야.”


나는 이제 안 할 거야. 담임이 시킨 대로 고도에게 리코더를 가르치는 것도, 담임이 가르친 대로 고도를 놀리고 무시하는 것도, 고도의 손바닥을 때리는 것도 이제 안 할 거야. 나는 고도를 일으켜 내 자리에서 밀어냈다.           


리코더 실기평가 시간에 담임은 고도를 내게 떠넘겼던 걸 깨끗이 잊은 듯 했다. 고도가 틀릴 때마다 나는 움찔움찔 고개를 떨궜지만 담임은 오로지 고도에게만 비난을 쏟아냈다. 고도의 손가락과 부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흉내내며 조롱하는 담임에게 화답하듯 아이들이 과장된 목소리로 낄낄 웃었다. 나는 벌을 받듯 그 순간을 견뎌야 했다.          



나는 더 이상 고도를 놀리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고도와 고무줄놀이를 함께 하며 웃을 수도 없었다.           




고도에 대해 떠올리면 한 가지 감정만이 남는다. 죄책감. 그러나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 때의 담임을 내 앞에 앉혀 놓고 리코더를 붕붕 휘두르며 묻고 싶다는 생각. 너는 대체 왜 선생이 됐니? 붕붕, 리코더를 힘껏 휘두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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