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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온도 Mar 05. 2020

누구나 가슴에 비명을 품고 산다

선을 넘는 사람들 (6)

선을 넘는 사람들

(6) 누구나 비명을 품고 산다        




           

소음에 있어서 나는 줄곧 운이 좋은 편이었다.      



주변 얘기를 듣다 보면 등골이 오싹해질 때가 많았다. 우연히 한 책상에 앉아 토론을 같이 했던 여자는 눈가가 새까맣게 죽어 있었다. 내 시선이 유난했는지 그녀가 눈가를 거칠게 문지르더니 먼저 입을 뗐다.     



“잠을 좀 못자서요.”

“아, 오늘 자료 분량이 살인적이긴 했죠.” 

“아뇨, 자료는 벌써 두 번이나 읽었어요. 볼링공 때문에 그래요.”

“볼링공? 볼링을 치세요?”     


“네. 윗집 미친놈이요.”      



나뿐 아니라 조원들 모두가(모두라고 해봤자 그녀를 포함해 4명뿐이었지만)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새까만 머리를 동그랗게 올려 묶고 색감이 좋은 스카프를 목에 둘러 단아한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조근조근한 말투로 돌연 미친놈이라니, 우리가 서로 욕을 나눌 만큼 친한 건 아니잖아요, 하는 마음에 나는 말을 아꼈다.     


 

“새벽까지 윗집에서 뭐가 쿵쿵 떨어지는 거예요. 쿵이 아니라 꾸웅, 꿍, 엄청난 소리로요. 처음 이틀간은 참았어요. 저도 물건을 자주 떨어뜨리고, 야간에는 소리가 크게 울릴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지난주에는 정말 폭격이 아닌가 싶을 만큼, 어마어마한 소리가 꿍 드드드드 꿍 드드득 그러는 거예요. 윗집에 올라갔더니 남자 혼자 말짱한 얼굴로, 아이고 제가 뭘 좀 떨어뜨렸어요, 하더라고요. 미친놈 진짜.”


“그게 볼링공이었어요?”     


“우리 집 맞은편에 상가가 있어요. 내가 오죽하면 그 밤에 상가 계단에 앉아서 그 놈 집을 들여다봤겠어요. 거실 복판에서 볼링공 던지는 포즈를, 진짜로 볼링공을 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꿍 떨어뜨리고 다시 들어서 오잇 오잇 포즈를 잡고 도로 꿍 떨어뜨리고. 아예 날아가서 유리창을 깼으면 좋았을 걸.”     



여자가 다시 생각해봐도 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장 그 집에 가서 따졌죠. 볼링공이 떨어지면 아랫집에서는 폭격당하는 수준의 소음이 난다고요.” 

“그랬더니 미안해하던가요?”          




“그날부터 집에서 스파이크화를 신고 다녀요.
개새끼 진짜.”  



          





평온하던 일상이 뒤틀린 건 옆집에 젊은 부부가 이사 오면서부터였다.      

     

이삿짐을 옮기느라 분주한 인부들 사이 앳된 얼굴을 보고 젊은 부부네, 했던 게 인상의 전부였다. 나는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에, 외출을 하더라도 평일 한낮처럼 한가한 시간대에 이동해 이웃과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들이 이사 온 뒤 한 달쯤 지났을까. 옆집에서 소란한 아이들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랬다. 아이들. 적어도 서너 명은 되지 않을까 싶은 어린 아이들 목소리가 규칙적으로, 그것도 아주 우렁찬 형태로 들려오기 시작한 거였다.           



내가 작업실로 쓰고 있는 방은 옆집과 딱 맞닿아 있었다. 구조상 그 집에도 같은 크기의 방이 위치할 테니 옆집과 나는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일을 하려고 책상에만 앉으면 옆집(옆방)에서 아이들의 합창 소리, 비명소리, 괴성에 가까운 웃음소리들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자아, 율동 시간이에요, 성준이 일어나야지? 선생님 보고, 옳지! 하나 둘 셋! 동글동글 멋진 몸매에! 빨간 옷을 입고! 새콤달콤 지나야, 이렇게 손을 쫙 펴고, 그렇지! 멋쟁이 토마토.”



“토마토!”



아이들이 괴물처럼 울부짖으며 후렴을 넣는 토마토 소리.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처음에 든 생각은 이 아파트가 이 정도로 방음이 형편없었나, 하는 부분이었고(옆집 여자 목소리가 무서울 만큼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 다음 생각은,     



“엄마, 우리 옆집 어린이집이야?”

“아니? 그냥 가정집이지. 젊은 부부 살잖아 둘이.”     

“들어봐, 저거. 저 여자 지금 수업하잖아, 애들 데리고.”           



엄마가 한참을 갸웃대더니 이상하네, 라고 말했다. 간판은커녕 붙어있는 현수막도 없는데. 일반 가정집에서 애들을 봐줘도 되나? 사촌애들이라든가 그런 거 아닐까?           



“선생님이랬어, 지금. 선생님 봐, 그랬어.”

“그럼 어린이집인가 보지. 너 원래 밤에 작업하잖아, 그냥 참아.”     


      

그래서 나는 참았다.           



한 달여를 참고 나자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이 점점 느는 건지 아니면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 경우가 점점 느는 건지 여자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음악 소리는 그야말로 웅장해지고, 아이들은 괴물이 되어갔다. 이어폰 볼륨을 높이는 데도 한계가 있었고, 미리 협의도 없이 대뜸 어린이집을 차린 데다 내가 한 달이나 참았는데 이러면 안 되지, 라는 마음에 내가 괴로워하자     



엄마가 옆집에 조용히 항의를 하러 갔다. 

그야말로 조용히. 엄마는 짧게 몇 마디를 나눈 뒤 돌아왔다.         


  

“낮에는 카페에 가서 일하고, 밤에 작업해.”

“왜? 조용히 못하겠대?”     

“자기네는 어린이집 하는 거 아니래. 아주 딱 잡아떼더라. 그런 거 아니라고.”      



그러나 엄마와 나는 오후 다섯 시가 되면 문 여닫는 소리가 수차례 들리며 “자, 선생님한테 인사해야지, 안녕히 계세요~” “그래, 성준이 잘 가고, 내일 보자. 어머니 조심해서 가세요!” 하는 대화를 몇 번이고 들어왔다.     


 

“그럼 불법이란 소리네? 관리실에 신고할까?”

“그러지 마.”     



엄마가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새댁이 만삭이더라. 잠깐 나랑 얘기하는데도 숨차하던데. 여자가 만삭까지 돈벌이를, 그것도 불법으로 할 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거야. 그냥 둬.”                    








옆집 덕분에 나의 생활은 밤샘 작업, 오전 취침, 한낮엔 카페, 라는 식으로 정렬되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지났을까 문득 옆집이 잠잠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싶어 한낮에 집에 있어보았는데, 그랬다. 옆집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애기 낳았대. 친정에 가 있는다더라.”          


 

엘리베이터에서 옆집 남자랑 만났다며 엄마가 소식을 전했다. 나는 신이 나 가방에 꽁꽁 꾸려놨던 짐들을 끄집어냈다. 이제 유목민처럼 카페를 떠돌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빈둥빈둥 책상에 앉아 이것저것을 뒤적였다. 작업실 책상을 다시 내 것으로 차지하고 나자 오히려 한낮의 작업이 시들해졌다. 역시 작업은 밤에 해야지. 그런 생각으로 두 주 가량이 흘렀다.           



옆집 여자가 돌아온 건 소리로 알 수 있었다.        


   

새벽이면 옆집 아기가, 저러다 배꼽이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될 만큼 자지러지게 울어댔기 때문이다. 아기방을 나와 맞닿아 있는 방에 꾸린 건지, 아기가 내 귀에 대고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생생한 소리였다. 아기가 우는 소리는 공포스러웠고, 유난했고, 끔찍하리만큼 길게 느껴졌다.      



실제로 시간을 재보면 십분에서 이십분 정도였는데,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온몸의 진이 다 빠졌다. 반대로 신경줄은 팽팽하게 곤두서서 지나치게 예민해진 나머지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아이는 한 시간 간격으로 오 분씩, 두 시간 간격으로 십여분씩 그야말로 쉼없이 울어댔다.      


     

“신생아들은 원래 그래. 배고파서 울고 오줌 싸서 울고 밤새 울어.”  

“내가 미쳐버리겠는데?”


“애 우는 걸 어떡해 그럼. 옆집 가서 애기 입을 틀어막아 달라 그럴래?”       


    

나는 점점 더 예민해졌다. 오래전 보았던 여자처럼 눈 밑이 새까맣게 그늘지고 작은 소리에도 과도하게 반응하게 됐다. 텔레비전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잠깐만 들려도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다. 이러다간 내가 미쳐버리겠어. 아니, 그것보다 저 여자는 왜 애를 안 달래지? 배고파서 울기 전에 분유를 먹이고, 오줌 싸기 전에 기저귀를 갈면 될 거 아냐, 대체 왜 이렇게 계속 울게 놔두는 거야!      



맞은편 상가 계단에 쪼그려 앉아 자신의 윗집 거실을 훔쳐봤다는 여자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나는 옆집 베란다 문을 열고 들어가 혼자 방에 남겨져 악을 쓰며 울어대는 아기를 들고 나오는 상상을 몇 번이고 했다. 아기를 들고 나와 무엇을 할지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저 방에서, 아기라는 존재만 들어낸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나는 여자가 무능하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진짜 이건 아니지.”      



그 밤 아기는 두 시간 내내 울었다. 정말 저게 아기 체력이 맞을까 싶을 만큼 질기고 질긴 울음이었다. 가끔은 숨넘어갈 듯한 기괴한 소리를 내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벌떡 일어서야 했다.      



최근 아기는 점점 더 길게, 오래 울어대고 있었다.           



“애 엄마가 집에 없는 게 틀림없어. 아니면 하마처럼 잠에 빠져서 애가 우는지조차 모르는 거야. 아동학대로 신고를 해버릴까 차라리?”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겉옷을 걸치고 모자를 눌러썼다. 옆집에 쳐들어가 부모가 나온다면 욕설을,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면 경찰에 신고를 할 셈이었다. 책상에 올려둔 핸드폰을 막 움켜쥔 찰나 옆집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제발, 제발 그만 울어! 대체 어떻게 해달라는 거야,
뭘 어떻게! 엄마가, 응?
엄마도 죽겠어, 죽어버리겠다고!”


그것은 비명이라기엔 너무 비통했고 괴성이라기엔 너무 처절했다. 여자는 절절하고 비통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울부짖었다. 뭐라고 하는 건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다만 그 감정만은 도망칠 수 없이 뚜렷이 전달되는 소리들이었다. 나는 겉옷과 모자를 도로 제자리에 놓고, 책상의자에 도로 앉았다.      



여자의 울음이 통곡으로 바뀌었고, 그에 지지 않겠다는 듯 더 집요해지는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저 가만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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