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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Jul 29. 2023

대한민국의 흔한 중2와 선생님.

조금 덜 투덜거릴 걸 그랬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받은 가정통신문을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캠핑’이 어쩌고 쓰여 있는 종이를 흘긋 보고서는 옆으로 치워두었다. 난 정말 내가 이 캠핑에 가게 되리라고는 1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집 놔두고 밖에서 자는 캠핑을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불편한 야외에서 장비를 펼쳤다가 챙겨서 차곡차곡 정리까지 하는 부지런한 이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캠핑용품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이가 "캠핑 가고 싶은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까비는 간대?" 나는 아이의 친한 친구 이름을 대며 물었다.

"물어본대. 근데 나는 가고 싶어."

"누구 가는데?"

"남자애들은 13명쯤 간대."

나는 아이를 타박하며 말했다.

"거길 네가 왜 가? 남자애들 부모님들이 캠핑하고 싶어서 하는 건가 보네. 원래 캠핑하던 분들이 모여서 하는 건데 우린 캠핑장비도 없는데 어떻게 가?"

아이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제방으로 퇴장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자 아이는 다시 "캠핑 가면 안 돼?"라고 물었다.

"아니, 왜 하필 지금이야? 더워 죽겠는데 캠핑을 한대? 가을이면 몰라도 지금 엘니뇨로 우리나라 이상기온이라는데 더워서 못해 못해."

"난 별로 안 덥던데? 엄마 나 보기보다 더위 많이 안 타."

"난 타!"


다음 날, 학원을 마치고 들어오며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정이랑 라비 간대! 나도 가면 안 돼?"

"너 걔네랑 친해?"

"어, 나 학원에서 같은 반 돼서 많이 친해졌어!"

"엄마는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가서 친해지면 되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남편에게 바통을 넘겼다.

“아빠한테 가자고 해.”

아이의 고개가 남편에게 채 돌아가기도 전에 남편이 외쳤다.

“나 안돼, 나 더워 죽어.”

남들보다 땀을 배배는 많이 흘리는 사람이다. 여름에 추운 에어컨 아래에서 찌개를 먹어도 땀을 비 오듯이 흘려서 무려 머리 감았냐는 말을 드는 남편이다. 아이는 시무룩한 얼굴로 퇴장했지만 난 이 정도면 아이가 날 제 손바닥 위에서 굴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내가 부러 굴러주고 있다고 믿지만 나만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학교 가는 아이가 현관에서 선크림을 바른다. 나는 슬며시 다가가 물었다.

“진짜 가고 싶어?”

아이의 까무잡잡한 얼굴이 하얘지며 말한다.

“응! 엄마 가 줄 거야?”

“아휴. 거길 왜 가고 싶다는 건지.. 알았어.”

”와, 엄마 고마워! 내가 신청서 써서 낼게! 고마워 “

아이의 밝은 외침은 아침 녘에 사라졌다. 오후께 에는 나의 비명소리로 채워졌다.


나는 몰랐다. 내가 이렇게 극내향성, 극 I 성향을 가지고 있는 줄은. 가슴 두근거려도 싫은 소리도 할 줄 알고, 몸을 배배 꼬아도 원하는 걸 말할 줄 아는 나는 외향성 E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향성과 내향성은 평온할 때만 공생이 가능했는지 ‘낯선 이들 사이에서의 캠핑’이라는 난제가 주어지자 내향은 외향을 말끔히 치우고 완벽하게 자신의 영역으로만 나를 채웠다. 나는 캠핑이 시작되기 전 일주일 내내 끙끙거리며 불안과 걱정에 시달렸고 아이에게 떨어지는 짜증은 너의 몫이라고 못 박았다.

“가서는 열심히 할 테지만 그전까지 너에게 짜증 낼 거야! 네가 감당해!”


막상 캠핑날이 되자 나는 ‘열심히’는 커녕 입고 간 후드 점퍼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앞만 주시했다. 캠핑에서 조를 4개로 나눠 조당 학생 4명을 배정했는데 다른 조는 대부분 부모님 중 한 분이 함께 왔다. 하지만 내가 속한 4조는 3명의 남학생들의 학부모님이 두 분 다 오셨고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게다가 그 세 학부모님들은 이미 안면이 있는 분들이라고 했다. 나는 어색함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돌아다니며 노는 아이를 하염없이 바라만 봤다.

이왕 간 거 ‘내가 있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라고 되뇌며 자리를 지켰다. 우천으로 장소가 강당으로 변경되어 폭염이 아니라  에어컨의 폭격 속에 동태가 되어가는 듯했지만 나는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몸이 움직일 때마다 어색함에 삐걱거려서 뼈에서 끼익 끼익 소리가 나는 듯했다.



강당에서의 체육대회가 끝나고 저녁시간이 되었다. 또한 우천으로 바비큐가 불가능해져 조별로 버너를 준비해서 고기를 구웠다. 식사 조는 다행히 캠핑에서 단 3명인 여학생 조였다. 나는 우리 조의 음식 조리를 도우며 가끔 두 어머님의 이야기에 호응만 했다. 두 어머니는 두 여학생이 작년부터 친해서 공통 대화주제가 많았다. 내 아이와는 겨우 한 달 전 학원에서 같은 반이 된 아이들이었다.


내 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아이들과 노느라 바빴다. 싱글벙글 웃으며 뛰어다니고, 여기저기 간식을 나르고, 물장난을 쳐서 머리카락에 물을 뚝뚝 흘리며 왔다. 아이 옷에 묻은 물을 고기 구울 때 쓰려고 가져간 주방티수로 닦아내며 물었다. 나올 답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한 번 물어보고 싶었다.

“재밌어?”

“엄마는 안 재밌어?”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 좀 그렇긴 한데 네가 재밌으면 됐어. 괜찮아”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는 엄마에게 내가 얼~마나 재밌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어. 빅발리볼이 뭔지 보여주고 싶었고 애들이랑 이렇게 재밌게 노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어. 그리고 우리 체육선생님도 엄마가 꼭 봤으면 했어. 우리 체육쌤 너무 좋아. 난 나중에 저런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어!”

마음이, 찌르, 쓰르르, 소리를 냈다. 아이가 보여주고 싶었던 학교생활.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학교, 선생님, 친구들. 아이가 언제까지 이런 걸 내게 보여주고 싶어 할까, 내가 언제 아이의 학교에 와서 강당이며 교실 복도를 걸어보고 이렇게 오랜 시간을 머물러 볼 수 있을까. 난 왜 이렇게 투덜거리고만 있었을까.

조금 덜 투덜거릴 걸 그랬다고, 나는 후회했다.


저녁시간이 끝나고 시청각실에서 아이들의 장기자랑이 있었다. 학부모님 중 한 분이 아들과 신나게 노라조의 슈퍼맨을 불렀고 아이가 좋아하는 체육 선생님은 듀스에 검은 고양이 춤을 완벽하게 재연하셨다. 남학생들은 이름 모를 힙합 노래를 떼창 랩으로 끝도 없이 소리소리를 질러댔다. 웃겼다. 이 상황이 퍽이나 재밌어서 웃음이 났다.


그때, 학부모님 중 한 어머님이 딸과 함께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를 부르셨다. 노래가 끝나자 자리로 돌아가는 딸 뒤로 어머님이 혼자 남아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편지 낭독.

아이 몰래 준비한 그 이벤트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늘 모든 것을 함께했던 ‘우리’였는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사이가 소원해진 걸 서운해하며 한편으로는 아이를 믿고 응원한다는 내용이었다. 한 순간 모든 사람의 머리 위에 감동과 얼음이 뒤섞인 아이스버킷이 쏟아진 것 같았다. 다들 할 말을 잃고 눈물을 훔쳤다. 나는 내 눈에 고이는 감동의 눈물보다 그분의 용기에 감명받은 내 심장이 더 크게 울리는 걸 느꼈다. 예상하지 못한 불꽃놀이처럼 마음 깊은 곳까지 환하게 빛이 들어차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내 아이가 노래를 불렀다.

 "오오오오오, Try Everything~"

아이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오오오오오, Try Everything~"

난 항상 친구들이 떠밀면 마지못해 나오는 것처럼 어기적 거리며 일어나 노래를 불렀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뭔가 스스로 하고 싶었다.

  "오오오오오, Try Everything~"

편지를 낭독한 어머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이가 내게 했던 감동적인 말을 모두에게 전하고 싶었다. 밝게 인사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도 보태서.  

 "오오오오오, Try Everything~"

손을 들고 할 말 있다고 말을 하고,

아이의 말을 전한 다음에,

그냥 들어가기는 뭐 하니 노래 하나 부르고 가겠다고 능청스럽게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가 노래를 하는 동안 머릿속으로 내가 할 행동을 몇 번이고 연습해 봤다.

손을 들고, 손을 들고, 손을 들고...


그렇게 캠핑은 끝이 났다.

나는 캠핑이 끝나고도 머릿속으로 그 상황을 상상하며 손을 들고 말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 상상의 잔상은 며칠이나 갔다. 나는 결국 내가 극 I, 극내향성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캠핑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이들과 축구를 하다가 아이들이 학교에서 캠핑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준비해 본 것이라고. 준비가 미흡했지만 앞으로 이 캠핑이 학교의 전통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길 바란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줄 선물도 사비로 준비하셨다고.


아이는 방학이 되기 전부터 방학이 싫다고 난리다. 한 달이나 친구들과 선생님을 못 본다며, 학교가 얼마나 재밌는데 방학을 만들어서 학교를 못 가게 하냐며 화를 낸다.


극 내향성인 나는 그 캠핑에서 마이크를 잡고 전해지 못했던 말을 이렇게 글로라도 남기고 싶다. 여기는 나의 장이니까. 누가 떠밀지 않아도 스스로 말하는 나의 무대.

 "선생님, 학교 가는 것이 너무 행복해서 영원히 중2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네요. 체육선생님이 중3에 담임이었으면 좋겠다고도 하고 동생도 체육선생님과 수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부모도 이끌기 힘든 중2의 아이들을 유머 섞인 말로 달래고, 등 두려주며 위로하고, 함께 웃고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하는 선생님의 진심을 누구보다 아이들이 잘 알고 따르는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선생님의 마음이 너무 빛나 눈이 부신 정도라 전 살짝 눈을 감고 훨씬 여유로운 마음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네요. 아이가 다른 곳이 아닌 학교에서 즐거움을 찾고 맘껏 기뻐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이렇게 든든하다는 걸 알게 되어 저 또한 너무 행복합니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선생님! “


나는 아이가 하는 행동과 말이 신기하고 기특하다. 아이는 친구와 선생님과 학교를 너무 사랑한다. 나는 아이가 사랑하는 모든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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