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캐니언에 울려 퍼지는 나의 비명소리

by 윤진진


Grand Canyon National Park


그랜드 캐니언을 가기 위해 캘리포니아 주에서 애리조나주까지 이동하는 길목마다 숙소를 잡았다.

오랜 이동시간에 행여 아이들의 컨디션이 나빠질까 봐 신경 쓴 배려였지만 오히려 휴식이 필요한 건 어른들이었다.

아이들은 차량 내에서도 뻥튀기 하나라도 한참을 놀았고 태블릿도 돌려가며 오래 가지고 놀았다.



그랜드 캐니언으로 올라가는 길부터 매표소에 닿기 전인데도 길 양옆으로 그랜드캐니언이 보였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감탄하며 우리는 길 중간에 Moran point 란 곳에 차를 대고 구경을 했다.

끝없는 갈색의 층층계단이 아래로, 위로, 사방으로 퍼져나가 하늘과 닿아 있는 듯했다.


그랜드캐년은 차량당 30불의 입장료를 받는데 결제를 하고 나자 한국어로 된 지도와 영어로 된 지도를 한 부씩 건네주었다. 미국에서는 어딜 가나 Korean이라고 하면 어김없이 안녕하세요. 란 인사가 돌아왔다. 한국에서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처럼 느껴져서 그들의 뜬금없는 인사에 흠칫 놀랐다가 이내 웃으며 같은 말로 인사를 돌려주는 것을 반복했다. 아마 우리가 가는 곳이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여서 그랬을 테다.


한참을 올라가 도착한 비지터센터에서 환영합니다.라는 한글을 보고 반가워 사진을 찍었다. 미국에서 한글을 볼 때마다 사진을 찍는 것이 아이들의 보물 찾기처럼 신나고 재밌는 일이 되어버렸다.

어느 로드샵에서 파는 슬라임 통에 붙어 있던 진주 수정 진흙 같은 이상한 문구까지도.


여러 군데의 뷰포인트 중 우리는 비지터센터에서 가장 가까운 Mother Point와 셔틀로 첫 정거장인 Yavapai Point 만 보았다.

어디에서 보든 그 거대한 협곡은 항상 같은 모습으로 거대해 보이기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오는 길에 차창으로 보았던 풍경이 도착해서도 이어지자 사진 요청에 몇 번 응했을 뿐 모래놀이나 다람쥐 물 주기에만 관심을 쏟았다.

한 외국인은 내게 아이들이 참 귀엽다며 그랜드캐년이건 어디건 모래놀이를 한다며 웃었다.



지금 아이들에게 우리 그랜드캐니언 간 거 기억나냐고

물으면 어김없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응! 다람쥐가 엄마 신발 먹은 데잖아.


그랜드 캐니언의 뷰포인트로 이동하기 전에 우리는 비지터센터 앞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나누어

먹었다. 미국에서도 관광지는 바가지를 씌운다며 아이스크림 가격이 너무 비싼데 대해 다들 어이없어하면서도 너무도 열심히 각자의 것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 평화로운 순간에, 하늘은 맑고 햇빛은 뜨겁지만 바람은 또 선선히 불어오던, 이걸 보려고 여기까지 달려온 우리 여정의 마지막 목표가 코앞에 있는 이 만족스러운 순간에,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툭. 하고 떨어뜨렸다.


아이스크림은 아이의 옆에 앉아 있던 내 옷과 신발에 그대로 낙하했고 아이의 눈에는 미안함과 당혹스러움과 곧 있으면 울음을 터뜨릴 거란 사인까지 미리 띄워 보내는 것 같았다. 순간 세명의 어른들이 괜찮아. 괜찮아. 를 연발하면서 나에게는 휴지 뭉텅이가 손에 쥐어졌고 나의 친오빠는 작은 편의점의 긴 줄 속으로 다시 뛰어들어갔다.


이 때문에 시간이 한참이나 지체되긴 했지만 사실 별 상관없었다.

셔틀에서 내려 Yavapai Point로 걸어가는 작은 길에서 그 비대한 녀석 중 한 마리가 나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랜드캐니언에서 도착하면서부터 쉽게 눈에 뜨이던,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먹이를 찾듯이 다가오는 그 녀석들.

다람쥐.


사실, 그 정도로 큰 다람쥐가 정말 다람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미국 다람쥐여서 그런지, 너무 많이 먹어서 뚱뚱해진 건지 , 그 동물은 내가 아는 한국의 그 작은 다람쥐와 같은 이름을 쓰기에는 너무 비대해 보였다. 미어캣과 비슷한 느낌?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달래서 오솔길처럼 좁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을 때 미어캣, 아니 다람쥐 한 마리가 길 가운데를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아이들은 물을 주고 싶다고 한 병씩 손에 쥐어준 물을 죄 쏟아붓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라 그만하라고 말하고 있는데 다람쥐가 내 신발로 달려와 할짝이기 시작했다!!!


선 채로 얼음이 된 나는 아악~ 하며 소리를 질러댔고 아이들은 신나게 웃었다.

좀 전에 아이가 떨어뜨린 아이스크림이 신발 앞쪽에 묻은 것을 마른 휴지로 다 닦기엔 역부족이라 두었더니 단 냄새를 맡고 다람쥐가 이리저리 찾아 헤매고 있었나 보다.

그 향긋한 향내의 근원지를.


잠깐 동안이었지만 나는 진심으로 무서워했고

아이들은 그랜드 캐니언은 다람쥐가 엄마 신발을 먹은 곳.이라는 공식을 완성한 순간이었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내가 Help me 라고 하던가 말던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까 봐 동영상을 올려봅니다.

하지만 저의 비명소리가 그리 듣기 좋진 않으실 겁니다.

음소거를 권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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