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젖꼭지가 왜 있는 거야?
오후 11시.
둘째 아이가 남편과 함께 잠들었다. 저녁을 먹은 식탁의 흔적과 여기저기 늘어져 있는 놀이감등을 시야에서 치워냈다. 지금부터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열한 시는 11자의 다이얼 손잡이가 된다. 탈각 소리를 내며 하루가 완전히 넘어가기 전 편안하고 조용한 활동을 하는, 이름하여 램활동시간*이 시작되었다.
커피 테이블에 과자 한 봉지를 까서 올려놓고 커피도 옆에 내려놓았다. 소파에 엎드려 커피 테이블을 손에 닿기 편한 위치로 끌어올린 후 엎드려 책을 펼쳤다. 두꺼운 책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끊어 읽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오늘은 이 책을 마저 다 읽고 잘 생각이었다.
10분쯤 지났을까. 딸아이가 문제집을 들고 나와 거실 바닥에 내려놓는가 싶더니 하기 싫다는 징징거림과 함께 드러누웠다. 문제집을 베개 삼고 핸드폰은 들어 올리더니 익숙한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면 학습효과가 올라간다며 음악을 튼다. 낯선 음악을 들으면 뇌가 그 음악을 분석하느라 학습에 집중이 안된다며 "엄마도 엑소 노래에 익숙해져야 해"라고 한다.
"엄마 이거 다 읽고 싶어. 너만 조용히 좀 해줄래?"
아이는 "그래"하고 대답하더니 문제집 쪽으로 엎드렸다. 내가 겨우 책장 한 장 넘겼을 때 아이가 말했다.
"아, 아파. 가슴 아파. 왜 아픈 거야 도대체!"
엎드려 있으니 딱딱한 거실 바닥에 눌려 가슴이 아팠나 보다. 별 일도 아닌데 난리가 나는 호들갑은 사춘기 아이들의 필수 장착 아이템인가 보다. 바닥에 던진 문제집을 보니 책상에 앉을 생각은 없어 보여 나는 무심하게 말을 던졌다.
"눌리니까 아프지. 침대 가서 해"
하지만 아이는 씩씩대며 말했다.
"가슴은 왜 있는 거야?"
반사적으로 대답이 나왔다.
"아기 키우려고"
"그럼 남자는 젖꼭지가 왜 있는 거야? 쓸모도 없는데. 쓸모없는 걸 왜 만드는 거야? 그것만 안 만들어도 엄마 뱃속에서 더 빨리 나올 수 있겠구먼"
아, 진짜.. 안 웃으려고 했는데 이건 정말..
“아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감탄도.
"히야~ 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적어놔. 나중에 써먹어."
아이는 도도하게 말했다.
"난 이런 건 안 써놔. 그냥 생각하고 마는 거지. 이게 그렇게 웃겨?"
한참을 웃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찍으며 내가 말했다.
"응, 완전 웃겨!"
얼마 전 브런치 북의 순위에 있는 작가님의 브런치 북을 완독 했다. 그리고 그 작가님이 쓴 글에서 3천 권이나 되는 책을 가지고 이사했다는 말에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짐이 늘면 가장 먼저 줄이게 되는 것이 어른들의 책이니까. 아이들이 읽을 전래동화, 만화책에 밀려서 어른들의 책은 노끈으로 묶여 잠시 펜트리에 머물렀다가 결국 밖으로 내보내 진다. 물론 내 이야기다. 하지만 아이가 책을 잘 읽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진 부모들의 대부분은 책 육아라는 간판 아래 책장의 대부분이 아이 책으로 채워질 것이 분명하다.
3천 권이나 되는 책을 작가님이 다 기억할까? 그럴 리가. 하지만 그 많은 책을 가지고 계신 이유는 책에 대한 애정인 것이 확실하다.
모든 책을 다 기억하진 못해도 책을 보면 감정이 살아나기도 하고 그때의 기억이 소환되기도 할테다. 꽂혀있는 수많은 책을 보면 괜스레 뿌듯하고 배부른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그래서 남자의 젖꼭지가 있는 것 아닐까? 아기들이 배가 많이 고프지 않다면 아빠의 젖꼭지만 봐도 배부름을 느끼게. 읽지 않아도 배부른 것처럼, 먹지 않아도 배부른 만족감을 위해서.
하하하하하,
갑자기 든 생각이었지만 나도 웃긴 사람이 되어 보고 싶어 웃긴 생각을 써본다.
*램활동시간 - 깨어있는 것에 가까운 얕은 잠을 자는 ‘램수면시간’에서 생각해 낸 말로, 거의 움직임이 없지만 활동하고 있는 심신 안정의 시간이라고 지어 봄.
Main Picture by Sandy Millar in Unsplas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