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구나 삶이 장마 같을 때가 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by 봄날


일찍이 자수성가해 건물주가 된 한 친구와 오래전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 친구가 말하기를 “ 난 요즘 드라이버가 잘 안 맞아서 고민이야”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죽 걱정할 일이 없으면 드라이버 안 맞는 게 그렇게 큰 걱정인가 싶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럽고 또 한편으로는 허탈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나름 치열하게 사십 대 초반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회사 생활도 팀장으로서 나름 열심히 했지만 현실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IMF 외환위기를 겪고 난 후 경제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지만 미래가 막막하고 불안하기만 한 시절이었다.


열심히 주어진 업무를 하고, 또한 새롭게 추진해야 할 프로젝트에 집중하면 미래에는 무언가 손에 잡힐듯한 확실한 그 무엇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막연한 불안이었다. 대개 직장 생활이 15년 전후가 될 때 불확실한 미래와 회사에서 가장 치열한 생활을 하는 현재와의 사이에서 막연한 고민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이미 오랜 직장 생활로 이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과거와 현실에서는 가소성이 굳어져 더 이상 새로운 일을 시작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북쪽에서 내려오는 한랭전선과 남쪽에서 올라오는 온난전선 사이에 갇혀 대책 없이 비를 흠뻑 맞게 되는 장마철 같은 그런 시기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이삼 년 전부터 나 또한 드라이버 입스(Yips)가 왔다.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 연습장에 자주 가질 못하면서 매주 계속해서 생계형 운동을 나가다 보니 무언가 기본에서 벗어난 잘못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고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요즘 코로나 사태에 따른 현장 브리핑에서 보면 정은경 본부장께서 흰머리가 점점 도드라져 보이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미용실에 가서 한두 시간 염색할 시간이 없어서 일부러 염색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국가가 코로나 재난 상태에 당하면서 그 주무부서장으로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골프란 운동을 해보신 분은 알겠지만 드라이버, 아이언, 퍼터에서 입스를 한 번씩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리적인 압박감과 트라우마 때문인데 내 주변에서도 일이 년씩 입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연습장에서는 문제없이 잘했는데 필드에 나가기만 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많은 연습과 자신감 그리고 멘털 훈련을 하면 벗어날 수 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니까 그 기간을 특정할 수는 없다. 나 또한 일 년 넘게 고생을 했다. 지금도 함께 운동을 하는 사람이 낯설면 가끔 고생을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드라이버가 안 맞는 게 유일한 걱정인 것처럼 말했던 그 친구를 생각하게 된다. 나의 걱정에 비해 그 친구의 걱정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교만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운동할 때마다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운동을 하는데 운동을 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더 쌓여만 갔다. 어릴 때 고민이 있으면 어른들께 투정을 부릴 때가 있었다. 어른들은 학생이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데 무슨 대단한 걱정거리가 있겠냐며 핀잔을 주던 생각이 났다. 그 시절에는 그랬다. 모두가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를 제외한 걱정거리는 걱정거리가 아니던 장마철 같은 눅눅하고 답답한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부와 권력, 명예는 골고루 나누어 주시지는 않은 것 같지만, 누구에게나 걱정거리와 삶의 무게는 똑같이 나누어 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우리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더욱 겸손하고 진정성을 갖도록 해주셨다고 믿는다. 지금 이 순간의 내 삶이 장마와 같다고 생각한다면 언젠가는 장마가 끝나듯, 이 대책 없어 보이고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어둡고 눅눅한 시기도 장마가 물러가듯 곧 끝나고 ‘쨍하고 해 뜰 날’이 돌아온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