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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남들처럼 사는 게 제일 어렵다.

by 봄날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2015, KBS2) 4년째 노량진 학원가 공시생인 한 남자와 죽음을 앞두고 있는 한 소녀와의 만남과 이별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스페셜의 제목이다. 몇 년 전 해외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던 드라마였다. 열두 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가는지라 해외 출장을 갈 때면 늘 미리 읽고 싶었던 책 두 권(한 권은 기내, 한 권은 호텔)을 사고 국적기의 기내 영화를 체크해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누구나 바쁘게 생활하는 직장 생활에서 책을 읽기란 쉽지 않다. 물론 출장 목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부담은 있지만 그래도 소소한 즐거움이라면 미국이나 유럽행 비행기는 장시간 타야 하기 때문에 갈 때는 컨디션도 좋아서 기내에서 책 한 권 읽고, 영화 한두 편은 꼭 볼 수 있는 작은 기쁨이 있다. 하지만 그날따라 기내 최신영화가 모두 챙겨본 것들이라서 드라마 스페셜을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Golden Gate Bridge, San Francisco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라는 도발적인 타이틀이 눈에 띄어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드라마의 줄거리를 얘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드라마에 나온 주인공이 천신만고 끝, 4년 만에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하고 금의환향해서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이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화기애애한 덕담이 이어지는 분위기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세상에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면서 주인공을 격려하는 장면이다.


매번 1,2점 차이로 불합격했지만, 이번엔 공무원 시험 합격 후 가족들의 축하를 받는 주인공, 합격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세상에 노력하면 안 되는 일’ 없다면서 또다시 치열한 삶의 현실로 등을 떠미는 아버지에게 욱해서 말한다.




"열심히 해도 안되면요? 열심히 해도 안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시는 게 전부라고 말하지 마세요!!!
젤로 중한 게 남들만큼 먹고사는 거라고도 하지 마세요!!!
젤로 중한 건요, 사람입니다."



그때의 상황이 힘들어서 더욱 공감이 되었는지, 또는 불 꺼진 비행기 기내에서 보는 드라마에 집중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말이 무척 와 닿았다. 우리는 생활하면서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으며 살아왔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왜 그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욱하게 되는 걸까. 최선을 다하면 안 되는 일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그 노력이 어느 정도를 해야 노력을 한 건지, 또한 그 최선은 어느 정도를 노력해야 제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건지를 계량적으로, 수치적으로 나타낼 수가 없기 때문에 만약 노력해도,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이 생기면 우리는 노력도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도 않은 사람이 될 때가 있다. 상처다.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주인공 말처럼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이 있다. 그럼 절대로 기죽지 말고 다시 시작 하면 된다. 아니면, 그 결과를 쿨하게 인정하면 된다. 세상 일, 죽고 사는 일만 아니면 된다. 어떤 일이 되는 이유는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지만, 안 되는 이유는 노력 말고도 백한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요즘은 남들처럼 사는 게 제일 어렵다. 어떻게 사는 게 남들처럼 사는 건지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처럼, 남들처럼 살라고 하는 말이 제일 어려운 이유이다. 내가 잘 나가고 행복할 때는 남들 사는 게 눈에 잘 안 들어온다. 하지만, 내가 힘들 때는 남들처럼 살아야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할까 하고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다.


절대로 자괴감에 빠질 이유가 없다. 그냥 남들처럼 산다는 것은 내가 힘들면 남들도 힘들고, 내가 행복하면 남들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힘들 때만, 불행할 때만 남들은 모두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틀렸다. 내가 힘든 건 남들도 모두 힘들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남들처럼 사는 게,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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