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를 갖춘다는 것
몇 년 전인가 어느 신문에 새해 달라진 시무식 풍경을 보도하는 기사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회사에서 새해 첫 시무식을 하면서 대표이사가 일장 연설을 끝내고 나서 갑자기 미혼인 직원들을 모두 앞으로 불러내서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임직원들에게 새해에는 반드시 결혼할 수 있도록 격려의 박수를 쳐달라고 했단다. 그 기사를 읽고 무척 황당해했던 생각이 난다.
페이스북에 그 얘기를 옮겨 적고 페친들에게 아마도 그 회사의 대표이사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선의로 한 행동이었겠지만, 그 앞에 본의 아니게 불려 나간 미혼의 직원들은 격려가 되기보단 오히려 기분이 씁쓸했다는 반응이 그 기사에 함께 소개되었다.
아파트에 오래 살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주상복합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고 며칠 후 아침에 출근하다가 앞집에 사시는 할머니와 함께 엘베를 타게 되었다. 고층 아파트라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동안 매우 불편한 시간을 보냈다. 그 이유는 할머니의 여러 가지 개인적인 질문 때문이었다.
“ 어디 살다 이사 왔어요?”
“네, 가까운 00 아파트에서 살다왔습니다.”
“그래요? 옛날엔 이 아파트 한채 가격이면 그 00 아파트 세 채를 샀는데, 지금은 그 아파트에서 이사도 오시네.”
“ 아, 네 “
“뭐하시는 분이에요?”
“네, 회사 다니고 있습니다.”
“ 회사 생활 많이 힘들죠? 남의 돈 벌기가 쉬운 게 아니지 “
“ 아 예, 그렇죠 뭐”
“애들은 몇 명이나 두었어요?”
“ 지하 1층인데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마침 엘리베이터가 할머니가 누른 지하 1층이라서 다행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출퇴근 때면 엘베가 어느 층에서 멈출라치면 먼저 핸드폰을 꺼내서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누군가 엘베를 탈 때면 눈인사만 하고 계속 핸드폰만 들여다보다가 내가 내릴 때나 그 누군가 내릴 때면 “ 안녕히 들어가세요” 또는 “다녀오세요”하고 기본적인 예의만 갖춘다.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지만, 눈을 맞추면 또 개인적인 질문이 훅 들어올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보면 예의가 없다고는 할 수 없고 참 밉상 같은 행동인 건 알지만 그래도 나는 이젠 어김없이 그렇게 한다. 몇 년 전에도 다른 층에 사는 어떤 분께서 아침에 출근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만난 내게 또 어김없이 이른 아침부터 불편한 질문을 했다.
“ 전에 살던 층이 아니고 더 위층으로 이사 가셨나 봐요”
“네, 집주인께서 집을 비워달라고 해서 몇 층 더 위로 이사를 했습니다.”
“ 그래요? 그럼 집을 사서 가셨어요? 아니면 같은 전세로 옮겼어요?”
“ 다행히 전세물건이 있어서 전세로 옮겼습니다.”
“요즘 이 아파트 전세가 얼마나 해요? 전세 얼마 주고 옮겼어요?.”
“네, 집이 더 넓어져서 조금 더 줬습니다.”
“ 그래서 전세가 얼마냐고요? “
“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리고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한 그분은 기분 나쁘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먼저 내렸다. 그날은 정말 엘베에서 내리고는 아침부터 어이가 없어서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타자마자 계속 씩씩거리며 회사를 갔고 그날 점심 때도 회사 후배들과 그 얘기를 나누면서 기분을 풀어야 했다. 그리고는 그날의 트라우마로 또다시 굳은 다짐을 했음은 물론이다.
또한, 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서 오랜만에 서로 안부를 묻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오래전부터 회사에 다니는 조카들은 명절 연휴를 맞아서 해외여행을 가서 못 올 때가 종종 있었다. 그 이유가 반드시 해외여행 때문인지 확인은 안 된다. 언젠가 부모님께 진지하게 한번 말씀드렸다. 명절에 손주들이 오면 절대로 “결혼 언제 할 거니?””남자 친구는 있니?” “회사는 월급 많이 주니?” 등등. 지극히 개인적인 안부나 걱정은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고 신신당부를 드렸다.
만약 그런 질문을 계속하신다면 앞으로 명절 때 보고 싶은 손주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없어질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부모님의 패러다임에서는 과년한 손주의 결혼이 늦어짐에 대한 당연한 걱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걱정을 한다고 해서 걱정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사실 나도 내 아이들에게 “언제 결혼할 거니?”와 같은 직설적인 질문을 해 본 적이 없다. 자연스러운 기회에 결혼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뿐이다.
결혼은 결혼을 해야 하는 당위성이나 회사에서 일처리 하듯 시간에 쫓겨 할 수도,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요즘 같은 한국의 현실에서는 특히 여자들은 결혼이 스스로의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매우 불리할 뿐만 아니라, 결혼을 꼭 해야 된다고 반드시 추천할 만한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해서 결혼을 위한 결혼은 하지 말고, 정말 함께 살아갈 이유가 있고,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언제든 결혼하면 된다. 결혼의 형식이나 조건이 완전히 갖추어졌다고 해서 그 결혼생활의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의 책임과 의무가 성실히 수행될 때 가능하다.
아무튼 이제 생활양식도 많이 변하고 삶의 형태도 매우 다양한 선진국에 진입했다. 오랫동안 해외 비즈니스를 했지만 그 수많은 비즈니스 파트너들로부터 그런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나 가족관계, 아파트, 수입 등 개인적인 질문을 하는 경우를 전혀 당해보지 않았고, 나 또한 그런 사적인 질문은 정말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의 경우 안부를 전할 때를 제외하고는 매우 불편하다.
가끔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시골에서도 살아보고 싶지만 서로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인지를 알고 지낼 수밖에 없는 마을 공동체의 삶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없다. 서울의 폐쇄된 공동체의 삶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아니면 가끔씩 훅 들어오는 무례를 견딜 수 없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와 닿는 생각은 서로 예의를 갖추고, 서로 존중하는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바람직한 관계인 것만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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