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마이 프렌즈
세 달 전 아이가 썩 내켜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가족 모두의 강력한 추천으로 유럽 여행 다니고 놀기에는 최적이라며 추천한 이탈리아 북동쪽 끝에 붙어 있는 슬로베니아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떠났다. 화양연화의 빛나는 청춘을 스펙 쌓기만 하다가 낭만 없이 대학 생활을 마칠까 하는 염려와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형편이 된다면 경험과 시야를 넓혀주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슬로베니아는 한때 유고 연방이었지만 지금은 인구 250만, GDP 25천 불의 평화롭고 친절한 유럽의 작은 나라다.
국민소득을 굳이 열거하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도 유신시대 제도권 교육의 피해자인 천민자본주의의 속성이 남아있나 보다. 슬로베니아와 슬로바키아를 혼동하면 안 된다. 지금은 동유럽여행 코스에 반드시 포함되는 수도 류블랴나(Ljubljana)와 호수 속의 동화와도 같은 블레드 성이 필수 관광코스가 되면서 제법 알려져 있다. 우리는 여러 정보검색을 통하여 안전하면서도 유럽을 놀러 다니기 좋은 슬로베니아를 추천했다. 이탈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교통비가 비싼 비행기 보다 가격이 저렴한 기차나 버스를 타고 유럽 전역을 여행할 수 있는 최적의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슬로베니아로 떠나기 일주일 전 2월 초부터 한국에도 코로나 환자가 한 둘씩 나타나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우리 아이는 프랑스 파리에서 인종차별이 일어났다는 외신을 접하고는 무척 불안해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슬로베니아는 코로나가 폭발 징후를 나타내던 이웃나라 이태리에 비해서는 환자 발생이 없었다.
결국 출발 날자가 도래해 아이는 약간의 걱정과 함께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로 출발했다. 조금은 걱정되는 마음과 함께 혼자 떠나보냈지만 도착 다음날부터 류블랴나에서 만난 룸메이트 소식과 유럽 여러 나라에서 온 낯선 친구들과 함께 밥 먹고 파티하고, 이웃나라 이태리 북동쪽의 아름다운 해안도시 트리에스테로 여행 다니는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오며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며 오기를 잘했다고 매우 좋아했다.
그렇게 한 달 반 가량을 우리 아이 인생 최고의 여유로움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3월 중순, 코로사 사태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공항이 화요일부터 셧다운 된다는 뉴스를 일요일 밤 9시에 듣고 긴급히 러시아 모스크바를 경유해 한국으로 출발하겠다며 서울시간 새벽 다섯 시에 통보를 해왔다. 그리고 월요일 새벽까지 짐을 싸고는 류블랴나를 떠나 모스크바를 경유해 겨우 겨우 화요일 오전에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경유지인 모스크바 공항에서 코로나 검사가 늦어져 비행기 문 닫기 전에야 겨우 탑승을 했다는 마지막 카톡을 새벽 세시 반에야 받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온 가족이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귀국 후 인천 공항에서 자가 격리 앱을 다운로드하고 와서는 이주일 동안 내내 자기 방에서 자가격리를 마치고 코로나 검사를 했다. 문자 메시지로 보내온 결과로 음성 판정을 받고, 지금은 다시 복학해서 여전히 자기 방에서 <강의 중> 스티커를 문 앞에 붙여 놓고는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
모바일 인터넷 페이지에서 나는 검색창을 통해 매일 보고 있던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날씨 정보를 지금도 가끔 업데이트해서 보곤 한다. 오늘은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 봄비가 내리고 있다. 그리고 2016년에 본방과 재방을 넘나 들며 보게 되었던 노희경 작가의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오월 황금연휴에 다시 보기로 했다. 오래전 보았을 때도 나의 인생 드라마 중 하나가 되었지만, 이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나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노인들에 대한 꼰대적인 시각과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드라마지만 그들의 삶에 대해 애정 어린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정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훌륭한 드라마였다.
오늘 우연히 그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연하(조인성)가 결혼을 약속한 완이(고현정)를 만나러 뛰어가다 교통사고가 나는 그 광장이 류블랴나 프레셰렌 광장(Preseren Square)이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슬로베니아어로 ‘사랑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진 류블랴나에서 멋지고 행복한 교환 학생 생활을 보내고 있어야 할 우리 아이가 코로나 사태로 집콕 생활을 하며 인터넷 강의를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이 전례 없는 국가 비상사태라는 것을 깜박 잊고서는 사치스러운 생각인지도 모르고 그저 마음이 짠하고 안 좋다.
계획대로 였으면 우리 아이의 말처럼 새롭게 알게 된 유럽 친구들과 포르투갈의 포르투, 스페인 바르셀로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와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태리,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등을 매주말 여행하며 친구들과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있었을 텐테..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어 류블랴나가 이 드라마에 나온다는 핑계로 가정의 달 연휴를 맞아 특별히 ‘다시 보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요즘 부쩍 더 깊어진 세대 간의 갈등에 대해 모두들 많이 걱정하고 있다. 아마도 백 마디 말보다는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함께 보면 어떨까 감히 추천해 보고 싶다. 우리나라 드라마의 살아 있는 역사와도 같은 남, 여배우들의 명품 연기를 통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혹시라도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노인들에 대한 잘못된 생각, 그들에 대한 선입견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또한 덤으로 남자가 봐도 쏘스윗한 다니엘 헤니를 오랜만에 다시 볼 수도 있고, 더불어 드라마의 재미와 감동은 보너스다.
가정의 달 오 월을 맞아서 조금이라도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의 삶에 대해서 때로는 존경과 감사를, 때로는 연민과 응원을 보내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꿈이 생겼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언젠가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한 달간 살아 보고 싶다. 나도 드라마에서 처럼 로맨틱한 피란 해안가에서 내가 좋아라 하는 이태리 와인 TIGNANELLO 한 병을 밤 새우며 마셔보고 싶다.
"서너 시간을 저기서 계속 저러고 있다가.. 이제 간다"
" 대단하다 저 몸으로 그 먼.. 거기가 어디라 했지?”
" 슬로베니아 “
" 멋지네.. 거기서 여기까지..”
" 이쁜 청춘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 대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