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와 관계 다이어트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증)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새로운 NEW NORMAL로 사회적 관계 설정과 인간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관계 관리와 생활 습관이 나타나고, 이러한 뉴 노멀이 앞으로 우리의 삶에 새로운 일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일상에서 코로나 사태로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일상을 모두가 살아가고 있고, 또한 이런 새로운 일상이 언제 끝난다는 확신이 없어 모두가 코로나둥절(?)하고 있는 상태로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미래학자들이나 새로운 미래 트렌드를 예측할 때 주로 언급하던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과 이런 재택근무를 자동차 이부제처럼 시행하는 회사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약속했던 만남이나 모임은 1:1의 사적인 만남이 아니면 모두 취소하고 또 사회적 거리두기의 명분 아래 줄줄이 취소하며, 직장에서도 이른 귀가를 서둘러 그동안 일주일에 한 번쯤 특정 요일을 정해놓고 시행하던 ‘가정의 날’이 이제는 월화수목금 모든 요일이 가정의 날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재택근무와 이른 귀가로 대부분의 가정에서 구성원들이 모두 힘들어하고 있다. 게다가 초중고 학교들의 개학까지 4월 초로 연기되고 대학들은 인터넷 강의로 학교에 나갈 필요가 없어지다 보니 피난민처럼 온 가족이 한 집에서 지지고 볶고 생활하고 있다. 그런 중에 제일 힘들고 수고를 하는 사람들이 주부들일 거라는 사실은 묻지 않아도 알만하고 상상이 간다.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은 스스로가 집에 갇혀 지내는 답답함과 사회적 활동을 못하는 것만 짜증이 날 뿐이지만, 주부들은 회사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보내는 그 가족 구성원들을 위해 하루 ‘삼시 세 끼’는 물론 설거지, 빨래, 청소, 장보기의 노동과 수고가 평소 일상의 두세 배는 족히 움직여야만 하루 일과가 소화 될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한 집에서, 방학이나 휴가 때 전 가족 구성원이 길어야 일주일 정도만 24시간 함께 지낸 것 말고는 처음 겪어보는 생활이라 그녀들에게는 무척 어색하고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듯하다. 그러다 보니 몸도 쉬이 지치고 마음도 힘들고 짜증이 나며 우울해지기까지 한다는 신조어 코로나 블루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겪은 중국의 경우를 보면 우한에서는 자가격리로 인해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다 보니 가정불화로 인해 이혼이 급증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우리나라도 이제 본격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된 지 삼 개월이 되고 개학이 연기되다 보니 조금씩 피로가 누적되고 짜증이 나고 힘들어질 때가 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가정의 대통령인 주부들의 지침과 당부에 절대 협조하고 복종하면서 생활해야만 한다. 밖에서 그 어떠한 사회적이나 조직의 타이틀을 갖고 있을지라도 가정생활에서는 무조건 주부들이 대장이고 대통령이고 사장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가정생활의 내공이 웬만한 변두리 절간의 스님들보다도 세기 때문이다. 아마도 요즘 같은 코로나 사태에서는 잘못하면 사스, 메르스보다는 치사율이 비교적 낮은 편인 코로나로 죽을 확률보다는, 집안에서 사고 치고 썰렁한 집안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는 마음 편히 어디 나갈 데도 없고 숨 막혀 죽을 확률이 더 높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비상한 시국에서는 생각도 비상하게 해야만 한다. 현 상황은 일부 선진국에서는 비상사태를 선포할 만큼 비상한 시국인데도 불구하고, 돌봄 교실에서 평소와 다르게 상갓집처럼 일회용 종이 밥그릇에 밥을 주었다고 컴플레인을 하거나, 외국에 있는 자녀들한테 보낼 마스크를 사는데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며 성질을 낼 일이 아닐 만큼 상황이 중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일요일에 당분간만 모임을 자제해 달라는데도 입에 소금물을 뿌려가며 결국 모임을 갖고는 코로나를 확산시켜 그 책임자가 사과를 한다.
코로나 사태가 가장 심각한 이태리에서 EU에 의료지원을 요청했지만 한 나라도 손을 내밀지 않아 긴급히 의료지원을 나가 있는 중국 의료인들에 의하면 지금도 마스크를 하지 않거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이태리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 관계를 들어보면 모든 일에는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업무관계로 이태리 밀라노를 내 집 드나들듯 했던 나로서는 그들의 비상한 상황이 너무 마음 아프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낙천적 사고에서 비롯된 일이 아닐까 억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그들의 엉터리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너무 화가 난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단 소나기는 피해 가자는 시민의식 덕분에 평소에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던 대형병원조차도 썰렁하기 그지없을 정도다.
어떤 시인의 글처럼 나무도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한정된 영양분을 서로 나누어 튼실하게 자랄 수 있고, 고슴도치와 고슴도치 사이도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뾰족한 가시에 상처입지 않고 사랑할 수 있으며,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서로 그리워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서로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도 이번 기회에 모든 관계에서의 적당한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한 번쯤 가늠해 볼 기회로 삼아보면 어떨까 싶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특별히 시간을 한정해 이루어지는 비즈니스 관계적인 만남이나 모임이 아니라면, 서로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안부나 소식은 모바일 서비스나 SNS를 통해 관계 맺기를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설령 그렇지 않아 어긋날 관계 맺기라면 이번 기회에 관계 다이어트를 해서 쓸데없는 관계 맺기를 정리하고 소중한 관계 맺기에 더욱더 ‘선택과 집중’을 할 매우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나쁘거나, 반드시 좋은 일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