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과의례
언젠가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로 모 경제단체에서 추천한 대학생이 미래 기업인 육성 프로그램의 멘토가 되어달라며 찾아온 적이 있었다. 십 년이 훨씬 넘은 일이라 그 프로그램의 정확한 이름이나 내용을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수십대 일의 경쟁을 통해 선발된 그 자신만만해 보였던 서울 명문 대학교 학생은 내 앞에 있었다. 아마도 내가 그 경제단체 산하 기관이 주관하는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던 인연으로 추천을 했던 것 같다. 그 대학생과 함께 간단한 소개와 차 한잔을 마치고 나는 말했다.
“반갑습니다. 앞으로 대학 졸업하면 꿈이 뭐예요?”
그 대학생은 머뭇거림 없이 자신 있게 말했다.
“ 고용이 보장되는 공기업에 취업해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서울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명문 대학에 다니고 모 경제단체에서 주관하는 미래 기업가 양성 프로그램에서 선발된 그 스펙 좋은 대학생의 말을 듣고 순간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공기업에서 안정되고 편안한 직장 생활을 하는 게 그의 꿈이라면 굳이 우리 같은 사기업에서 멘토링을 받을 이유가 없는 게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누구나 좋은 대학 나와서 편안하고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고 싶은 생각이 인지상정 아닌가 하는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 갔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그 대학생을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내 부족한 기억으로는 아마도 나는 그 대학생에게 그 경제단체 산하 기관에 다시 요청해서 일반 대기업이 아닌 본인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공기업의 멘토를 다시 추천해 달라고 요청해보라며 설득했던 것 같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나는 내가 한 행동에 대해 많이 반성하고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음은 물론이었다.
광릉 수목원에 가기가 매우 편리했던 뉴타운의 좁은 아파트에 살면서 열 단계가 넘는 회사 직급에서 만 4년이 지나고 평사원에서 첫 직급인 대리로 승진했다. 그전에는 친구들과 부부모임을 하면 내 친구들이 나를 놀린다고 내 이름과 함께 꼭 평사원이란 호칭을 붙여서 부르곤 했고, 훗날 아내는 그 평사원이라는 호칭이 회사 직급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 평사원과 대리 시절에 나는 본의 아니게 치열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고 회사 생활이 힘들고 지칠 때면 가끔 아내에게 동네 비디오 가게를 인수해서 하든지, 아니면 제주도에 가서 살면 어떻겠냐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한 번도 나를 설득하거나 불평 없이 한 번뿐인 인생, 내가 원하는 것을 하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아내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렇게 말하는 내 스스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믿음이 있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지금 나는 봄, 가을로 ‘제주도의 푸른 밤’(1988, 가수 최성원),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익숙한 그 평화로운 제주도를 다녀오곤 한다.
지금은 안 계시지만 어느 유명 기업인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그의 책에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조금만 힘들면 카페나 차리겠다고 한다며 도전 정신이나 꿈을 잃은 청년들을 걱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엔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이 가장 현실 도피하고 싶었던 트렌드가 카페를 차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지금처럼 코로나로 힘든 시절을 보내지 않았어도,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카페를 운영한다는 것이 대기업 회사원이나 요즘 뉴스의 메인을 장식하는 판, 검사 보다도 훨씬 더 보람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엔 세상을 더 오래 살아보아야 했거나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아야 했을 것이다.
지금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내가 주제넘게 공기업에 취업해서 안정적이고 편안한 직장생활을 하겠다는 그 대학생의 꿈을 평가하고 판단했는지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이후로 나는 매우 적극적으로 대학교 교수님들이나 지인들이 추천하는 인턴들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었고 배려했음은 물론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지 그 대학생은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했을 뿐이었다.
왜, 청년들은 반드시 도전정신이 있어야 하는가. 또 왜, 청년들은 꼭 무슨 거창한 꿈이 있어야 하는 것인가. 우리 모두가 그랬듯이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도전정신이 필요할 때가 생긴다. 또 언젠가는 누구나 이루고 싶은 꿈을 가지게 되어있다. 자신의 성공 경험을 결과적으로 잘 포장한 그런 생각들 마저도, 우리 기성세대가 안 그래도 요즘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년들, 그들의 삶 그 자체가 도전인 청년들을 너무 갈구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에 나는 치열한 직장생활에 지치고 힘들어서 반사적으로 편하고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겠다는 그의 말에 괜히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나 생각한다. 어쨌거나 우리는 성장 과정이든, 직장 생활이든, 일반의 삶이든 한 번은 사춘기와 같은 반항과 방황을 겪어내야만 제대로 된 자신의 삶에 대한 올바른 방향성과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 왜 직장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에 거친 삶의 과정을 통과하며 스스로 답을 얻든지, 아니면 누군가의 도움으로 답을 얻든지 해야만 꿈도 가질 수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거나 꿈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에서 거쳐야 할 통과의례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에게 묻는 그런 의문과 혼란, 방황 없이 그냥 무심히 지나쳐야 할 통과의례는 없다. 그냥 통과해서도 안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 우리가 방황하는 모든 것, 우리가 만든 시행착오의 모든 것이 곧 나 스스로이고, 나란 사람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면 우리의 인생을 통째로 걸만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만 헤맬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 너머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삶의 과정은 힘들고 지치기 마련이었다. 그런 치열한 삶의 과정 속에서도 우리를 끌고 가는 힘이 바로 우리들의 소중한 꿈인 것이다.
지금 그 대학생은 아마도 그의 소망이 이루어졌다면 우리나라의 무역을 진흥시키고 있는 공사에서, 또는 대한민국의 관광을 활성화시키는 공사에서 세계에 한류와 K-pop을 알리는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또한 그런 직장 생활의 과정 속에서 그는 도전하고 싶은 새로운 꿈과 희망을 찾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 현재 무엇이 되고 싶은 꿈이 없다고, 또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없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삶에서 조금이라도 일찍 이루고 싶은 꿈을 찾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누구나 처음부터 세계 위인전집에 수록된 분들처럼 기승전결이 잘 꿰맞추어진 과정의 대단한 꿈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시작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위인전을 위한 그 결과의 재구성일 뿐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귄위주의 제도권 교육에서 위인전 읽기를 통한 보편적 동기부여가 각기 다른 상황에서 그렇게 살아낼 수 없는 우리 자신을 좌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다만 스스로 존경하고 관심 있는 어떤 위인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욕심이라면 무방하지만, 시대와 백 한 가지 환경이 다른 것을 무시한 천편일률적인 독서의 강요와 권위가 아니었으면 한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부터 아이폰을 만들고 세계적인 기업 애플이라는 글로벌 기업을 세우는 꿈을 목표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감히 예를 들기도 송구한 이순신 장군께서 일본을 상대로 23전 23승을 거둔 세계 전쟁사에 유례없는 전쟁 영웅으로서, 처음부터 풍전등화에 놓인 나라를 구하려고 군인이 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은근과 끈기,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또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고 삶을 치열하게 살아낸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꿈과 도전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을 뒤늦게 운명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