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스펙보단 삶의 내용이 중요하다
오래전, 회사에서 그룹 공채가 아닌 수시 선발로 결원이 생긴 소수의 인원을 채용하던 일이 있었다. 기억하기로는 각 대학 관련학과에서 소정의 인원을 추천받아서 서류전형 후 면접을 보고 결원이 된 소수의 인원을 선발하는 채용과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류전형을 통과하여 면접에 올라온 삼배수의 입사 후보들 중에서 최종 면접을 진행할 때의 일이다. 그중 학점이 만점이었던 학생과 학교 다닐 때 반장을 놓치지 않았다고 자기소개를 했던 두 가지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 학교 다닐 동안 한눈팔지 않고 공부 열심히 해서 평점 4.5 만점에 4.5 만점을 받았습니다.”
“네, 정말 놀랄 만한 학점이네요. 그럼, 공부 말고 대학교에 다니면서 특별히 했던 봉사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은 어떤 게 있어요?”
입사 면접에서 특별히 당황해할 질문도 아니었지만 그 취업준비생은 조금 당황한 모습으로 그 질문에 특별한 것이 없이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또 한 친구는 자기소개할 때 중, 고교에서 줄곧 반장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리더십이 있었으며, 대학교에서도 동아리 회장을 했다고 자신 있게 자기소개를 했다.
“ 그러면, 고등학교에서 반장을 하면서 급우들을 위해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거나 또는 학우들을 위해 했던 자랑할 만한 특별한 활동이 있으면 소개해 주실 수 있어요?”
이 질문에 그 취업준비생은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내용이 아니었고 두루뭉술하게 대답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조금 첨언하자면 이 두 가지 에피소드는 특별한 창의성이나 끼가 중요한 덕목을 차지하는 회사에 입사하려는 준비나 자세와 조금 어긋나지 않았나 생각했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하고 만점을 받았다는 것에 우리가 존중해야 할 부분은 분명히 있다. 공부를 잘하려면 자고 싶고, 놀고 싶은 것을 참고 견딜 수 있는 끈기가 있어야 한다. 공부는 머리보다는 엉덩이로 한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만큼 우리는 그들의 지구력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미 서류전형을 통과해서 최종면접에 들어왔다고 한다면 입사하고자 하는 회사에서 일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의 기본은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가장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이 학점은 분명하지만 창의적이고 끼가 있는 인재를 채용하려는 회사라고 생각했으면 공부 외에는 내세울 것이 무엇인지, 또는 그 외에 자신의 취미활동이나 특별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면접 준비를 했으면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답변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한 친구는 반장을 하고 회장을 했던 것도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사례로 강점이 있었지만 그런 특별한 스펙을 자랑하기보단 반장이나 회장을 할 때 자신이 새롭게 시도했던 활동이나 학우들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 그 내용을 스토리텔링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언젠가 ‘열정은 혈기가 아니라 꼭 스펙으로만 증명할 수 있는 것일까’란 글을 브런치에 발행한 적이 있다. 아마도 앞에 소개한 두 가지 에피소드 역시 너무 스펙에 충실한 자기소개의 과정이라 아쉬움을 남겼다. 지금 같지 않게, 오래전에는 그 훌륭한 스펙만으로도 사회에서 존경받던 후진국스러운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그 스펙을 쌓기 위해 오늘의 모든 부모님들이 자식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집중한 결과, 지금의 선진 대한민국을 만들었던 일부 순기능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이제 시대는 달라졌고 세상은 많이 변했다. 어떤 사람이 유명 대학을 나왔고, 소위 요즘 잘 나가는 어떤 직업을 가졌든 그 사람의 삶의 내용과 업적이 중요하지 그들의 스펙엔 특별한 관심이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을 나왔건, 어떤 선망하는 직업이든, 어떤 사회적 타이틀을 가졌던 중요한 것은 그가 그 자리에 있을 때 기업, 사회, 국가를 위해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업적을 이루어냈는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할지라도 결국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일 뿐,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화무 십일홍일 뿐이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유익한(fruitful) 꽃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 기준에 따라 우리가, 사회가 그를 존중하고 또한 사람에 따라서는 마음에서 우러러 나서 그를 존경하기도 하는 시대와 세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좋은 스펙, 좋은 직업, 훌륭한 타이틀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면, 그를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그는 세상에 잘한 일보다는 잘못한 일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끔은 누군가가 이루어낸 빛나는 성공 때문에 그의 학력, 경력 즉 그의 훌륭한 스펙이 언론에 소개될 때가 있다. 그런 기사에서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그의 성공 이후의 삶이 그의 빛나는 스펙만큼이나 우리 사회에 얼마나 유익했는지 알고 싶다. 그래서 나는 치열했던 그의 삶은 존중하지만, 그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와 판단은 잠시 미루어 두는 버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