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Jun 05. 2021

불의에는 참고 불이익에만 분노하는 건 아니죠?

선택적 분노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유사 이래로 세상은 언제나 불공평하고 불공정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해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 전까지는 세상사에 분기탱천할 때가 많았고, 학교 때부터 믿었던 인간에 대한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이 세상을 이해하는데 더욱 편리하고 도움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야 세상의 불공정과 불의함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도시인으로 살아갈 수 없었고 아마도 산속에서 생활하는 자연인이 되었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회사에 다닐지라도 한두 번쯤은 인사제도나 평가를 위한 고과 제도가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인사나 평가에 의문을 갖거나 불공정하다고 생각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사와의 친밀한 관계 덕분에 능력보다 좋은 고과를 받거나 또는 성장하는 시장을 대응하는 부서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를 그렇지 못한 이웃 부서보다 더 많이 받아도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진도 운림산방


 오래전,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얘기가 기억난다. 부모의 교육관에 따라 초등학교에서 선행학습을 시키기보단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만한 예체능 학습에 더 투자를 한 결과, 중학교 측이 학기초에 일정기간 효율적인 영어 교육을 위해 레벨 테스트를 통한 우열반을 나눌 때 문제가 발생했다. 기쁜 마음으로 입학한 중학교에서 뜻하지 않게 좌절을 겪고는 속상해하는 아이의 얘기를 듣고 난 아내는 비교육적인 중학교의 처사에 매우 격분해 당장 학교를 찾아가 항의를 하고 투쟁을 할 태세였다. 그때 옆에서 조용히 얘기를 듣고 있던 큰아이가 말했다.



“엄마, 만약에 00이가 우반에 배치되었더라도 지금처럼 학교의 비교육적인 처사에 분노하고 차별을 없애달라고 항의하러 갈려고 했을까 생각해 보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게 어때요?”




 그때 큰 아이의 말이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공정과 불의에 더욱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또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큰 아이는 그 일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 사건은 우리 부부에게는 큰 깨달음을 주었고 아직도 가끔 어떤 행동의 준거기준이 될 때가 있다. 덕분에 둘째는 일찌감치 좌절을 겪고 노력한 결과 대학교에 들어갈 때는 영어과목의 도움이 컸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당대인 훌륭한 청년세대들은 시대정신인 공정과 정의에 반하는 사회적 현상에 대하여 분기탱천하고 집단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끔은 선택적 공정과 선택적 정의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사회의 불의에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의 불이익에 더 많이 분노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더욱 그렇다. 부동산 문제, 주식투자, 가상화폐 등등.



 경제적인 불평등과 차별에 관심을 갖기보단 자신이 불이익을 받는 것을  통해서 공정과 정의의 시대정신을 관통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생계를 걱정하던 후진국 시절의 시대정신은 근면과 성실일 때가 있었다. 개발독재 시절을 살아낼 때는 정치, 사회의 취약함에 따른 자유와 민주가 시대정신일 때도 있었다. 세계 10대 경제강국에 살고 있는 요즘 사람들은 어떤 정치, 사회적인 불의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방해하는 불이익에 더욱 분노를 표출하는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은 사실이 아닌 오롯이 나만의 생각이기를 바란다.



 세상은 원래가 불공평, 불공정한 곳이므로 언감생심, 우리 사회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기를 꿈꾸지는 않는다. 다만, 당대의 시대정신이 ‘공정과 정의’라고 하니 그 공정과 정의가 부디 나에게만, 우리에게 만을 위한 선택적 공정과 선택적 정의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사회의 불의에는 잘 참아내면서 자신의 불이익에만 분노가 표출되는 일이 없기를 소망한다.


 

이전 11화 하다 못해 담벼락이라도 쳐다보고 욕을 해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