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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y 24. 2020

고깃집에서 한우 소고기를 마음 편하게 살 때

사람 사는 세상 이야기


 뉴스를 보니 재난지원금 받은 걸 가지고 대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장소가 정육점에서 소고기를 넉넉하게 많이들 사면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공짜 돈이 생기면서 일반 사람들은 평소에 아끼고 절약하느라 자주 사 먹지 못했던 소고기를 사 먹으면서 나름 코로나 사태로 겪은 피로감을 달래고 있나 보다. 민간 소비도 늘리면서 정부의 의도대로 경제도 살리고 예기치 못한 재난에 생업이 어려워진 자영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흐뭇한 소식이다.


 어제는 기분전환도 할 겸 오랜만에 가까운 하남시 경계의 화훼 농원에 가서 아내가 갖고 싶어 하던 무늬버들(삼색 버들, 삼색 버드나무), 배롱나무(나무 백일홍) 묘목과 화분을 사 와 분갈이를 했다. 화훼 농원에도 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어 그런지 많은 분들이 나오셔서 장미꽃, 수국, 블루베리 묘목을 사시고 또한 고추, 상추와 같은 야채류도 길러서 먹을 요량으로 많이들 사고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여러 농원들이 모두 많은 손님들로 활기차 보였다.


무늬버들

 뉴스를 보면서 재난지원금으로 정육점에서 소고기를 넉넉히 사시는 분과 가게 주인분의 인터뷰를 보면서 꽤 오래전에 처음 임원이 되었을 때, 몇 달 후 아내가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 여보, 난 당신이 임원이 되었다는 게 실감 날 때가 언젠지 알아요?”


“글쎄, 월급이 좀 넉넉해 진거 아닌가. 아니면 소나타에서 그랜져로 차 바뀐 거?”


“아니, 고깃집에서 한우 소고기 살 때에요.”


“왜?”


“ 예전엔 소고기만 살려고 하면 마음이 불편했거든. 아무튼 돼지고기 살 때랑 달리 소고기 살 때는 가격도 부담스럽고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런데 이젠 내가 원하는 만큼 소고기를 사도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 얘기를 듣고 그동안 몰라주었던 아내의 마음을 알고 난 후 꽤 오랫동안 마음이 짠했다. 대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샐러리맨 아내로 살면서 몸에 체화된 근검절약 때문에 지금까지도 가끔은 아내와 다툴 때가 많다. 이제 아파트 평수도 나이만큼 함께 넓어지고 거실과 각 방마다 천정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만 여름철 초복이나 말복에 한두 번 밖에 못 튼다. 가끔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서 에어컨을 틀고 있다가 현관문 여는 소리가 나면 에어컨을 꺼도 아내는 귀신같이 알고선 잔소리를 한다. 하지만 애들은 각방에서 여름 내내 에어컨을 자유자재로 틀고 지낸다. 자식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대신 우리 집에는 선풍기가 자그마치 다섯 개나 된다. ‘소리 없이 조용한 명품’이라는데  천정 에어컨과는 비교가 안된다. 소리만 음소거일 뿐이다.


삼색 버들

 이제 다음 달이면 초여름이 시작된다는 유월이다. 뉴스의 삼 개월 기상예보를 보니 올 해는 작년보다 더운 여름이 온다고 한다. 벌써 걱정이 앞선다. 내 이름을 풀이하면 ‘빛나는 여름’인데 매해 선풍기와 함께 빛나기보단 그냥 무더운 여름이었던 적이 더 많다. 올 해라고 예외는 아닐 듯싶다. 벌써 일주일 전에 그 소리 없이 조용한 명품 선풍기 다섯 대는 간단한 조립과 청소를 끝내고 거실과 안방등 각자의 위치에서 리모컨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은 지 오래다.


 아내는 손이 큰 편인데 유독 전기만큼은  엄청 아껴 쓴다. 처음엔 산업용과 달리 가정용 전기료의 누진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검소한 생활이 체화된 습관인듯하다. 아내 말로는 일상 소비 생활에서도 작은 실천과 함께 환경을 먼저 생각해야 한단다. 지금도 화장실을 사용하고 난 후 전등을 안 끄고 나와서 있다가 아내가 알게 되면 금방 큰소리와 함께 집안 분위기는 냉랭해진다. 그러면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나도 기분이 상하고 만다. 절약하자는 게 나쁘거나 잘못된 일은 아니니까 내가 명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삼색버드나무(네덜란드 원산)

 아무튼 나는 가끔 아내의 그 말이 생각날 때면 아파트 상가에 있는 고깃집에서 한우 소고기를 여러 부위별로 사서 아내에게 갖다 주곤 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가게 주인아저씨와는 이제 단골이 되어서 소분되어 냉장 진열대에 포장된 것 말고 가게 냉장고에서 특별히 좋은 소고기를 끊어준다. 하지만 나는 사실 소고기보단 입맛이 저렴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돼지고기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게 제일 맛있고 좋다. 그러나 아내는 삼겹살 구이는 준비물도 많고 구울 때 사방에 기름이 튀고, 또 냄새는 어쩔 거냐며 캠핑용이지 가정에서 구워 먹는 것은 정말 아니란다. 차라리 심플하게 지하 식당가 삼겹살 구이집에 내려가서 사 먹는 게 경제적이고 제일 효율적이라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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