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건 타고나야 하지만, 잘 사는 건 하기 나름이다

Miracle & Secret

by 봄날


지난해 8월, 탈레반에 위협받던 아프가니스탄인 391명이 한국에 들어왔다. 정부가 한국과 협력했던 현지인들을 '특별 기여자'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최근 뉴스에서 특별 기여자들의 약 40%가 모 지역에 정착을 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최근 이들 자녀들의 초등학교 입학을 두고 일부 학부모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해당 초등학교 앞에서 일부 학부모들의 피켓 시위가 열렸고, 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 자녀 28명이 이곳에 입학하게 되자, 반발하고 나선 것이었다고 했다.



그 초등학교의 일부 학부모들은 인터뷰에서 입학 반대 시위 이유가 아프간이라는 나라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아이들도 그렇고 주민도 그렇고 학부모도 그렇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낯선 아이들이 오는 것 자체가 불안한 데다, 교사들이 우리말이 서툰 아프간 아이들을 신경 쓰느라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일부 학부모들의 반발로 ‘특별 기여자’ 자녀들은 입학식 날 학교에 오지 못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도 2주 넘게 지나 등교는 시작한다지만, 최소 6개월 동안 아프간 아이 28명만 별도 교실에서 따로 수업을 받는 것으로 학교 측에서 배려한 모양이다. 우연히 그 뉴스를 보면서 선진국인 줄로만 알았던 우리나라가 최근 언젠가부터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후진국이 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파사성


지구 반대편에서는 침략자 러시아 푸틴이 벌이고 있는 반인류적인 전쟁범죄와 함께 연일 수백만명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이웃나라 폴란드로 피난하는 행열을 보게 된다. 무작정 삶의 터전을 버리고 참혹한 전쟁을 피해 넘어온 피난민들을 위로하는 것은 물론, 따뜻한 피난처를 제공하며 인류애를 펼치고 있는 폴란드 사람들과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많은 자원봉사자들을 볼 수 있다.


한 달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매일의 참혹한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면서, 그 초등학교 일부 학부모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폴란드에 아무런 기여도 없고, 아무런 생활 대책도 없는 수백만명의 난민들을 자발적으로 나서서 돕고 있는 폴란드 사람들을 보면서 깊은 존경심과 함께, 그들의 품격 있는 모습과 대비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초등학교 앞에서 당당하게 취재에 응하고,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를 거리낌 없이 말했던 그분들의 용감함에 적잖게 놀라기도 했지만, 평소 신뢰하지 않는 우리나라 언론의 뉴스만 보고 그분들을 무작정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행정 당국도 지역 주민 및 학부모들과 사전 설명회를 통해 그들이 우려하는 문제들에 대해 미리 충분히 소통하고 합리적인 대책을 제시했더라면 지역 학부모들이나 아프간 특별 기여자들이 상처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한편으로는 그 사실관계가 틀렸기를 바라면서도 왠지 너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최근의 여러 가지 정치, 사회적인 이슈들을 보면서 그동안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고, 곧 G7에 진입할 선진국이라고 굳게 믿었던 생각들은 착시현상이 있었고,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다행히 그 지역의 53개 시민사회단체는 ‘아프간 특별 기여자들’의 정착을 지지하고 있다니 조금 위안이 된다. 잘난 건 타고나야 하지만, 우리가 인간답게 잘 살아가는 것은 자기 하기 나름이다.



오히려 인터뷰에 응한 그 초등학교 아이들의 밝고 정직한 모습과 아프간 아이들에 대한 편견 없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보면서 그나마 큰 위로와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반인류적인 침략 전쟁에 맞서서 세계 각국 시민들의 전쟁반대 시위를 통한 연대와 지지, 그리고 불의에 맞서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직접 그들을 도우려고 참전한 많은 국제 시민군들을 보고 있다.


또한, 동시에 그와 비슷한 지정학적인 전쟁의 위험과 도전에 직면해 있는 우리나라의 한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해당 초등학교 일부 학부모들의 아프간 어린이들에 대한 입학 반대 피켓시위를 보면서, 성숙한 시민의식이 발휘되기를 기대함과 동시에 우리들의 삶이 참 애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의 치열한 삶 속에서도 우리가 천박하게 살지 않는 이유는 자기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