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
올해 들어 750페이지에 달하는 빨간 벽돌 만한 두께의 책을 세 권째 구매해서 읽고 있다. ‘중국의 붉은 별’(에드가 스노우)이란 책으로, 지금의 중국 공산당의 모태인 모택동의 대장정에 관한 스토리를 에드가 스노우란 미국 기자가 취재하고 쓴 책이다. 모택동은 자신의 전기는 이 책으로 대신한다고 말했다 한다.
80년대에는 판매 금지당한 금서였지만, 최근 미국과 서방(EU), 중국과 러시아의 신냉전시대의 서막이 열리면서 우리나라와 더욱 밀접하게 운명을 함께 해온 중국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고 말았다.
문득, ‘중국의 붉은 별’을 읽다가 봄 날씨가 너무 좋은데 집에서 책만 읽고 있는 것은 왠지 삶에 대한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보고 기억해 두었던 서울 근교 산수유마을로 아내와 함께 봄나들이를 나서기로 했다. 미세먼지가 없는 봄 날씨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나들이를 나온 상춘객들이 많았다.
산수유꽃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여기저기서 노란 산수유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담소를 나누는 상춘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따뜻한 봄날이 산천초목에게 했던 일들, 꽃나무를 피워 올리고 개울가에 쑥과 버들강아지를 깨워 싹을 틔우고 텃밭에는 싱싱한 파들이 자라는 풍경을 마음껏 즐기면서 산책을 했다.
한 시간 정도 둘레길을 산책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 대여섯 명의 중년 아주머니들이 노란 산수유꽃 아래 마련된 나무 탁자에 둘러앉아 준비해온 음식을 펼쳐놓고 왁자지껄 떠들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간단한 김밥과 커피 정도가 아닌 불고기에 쌈까지 준비해왔다. 그냥 간단한 음식은 몰라도 남의 마을까지 와서 잔치하듯 음식을 챙겨 먹는 것은 아름다운 산수유마을을 가꾸고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마을분들께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내려오는 길에 있는 파전 같은 부침개를 파는 동네 식당 같은 곳에서 간단한 계절 음식이나 특산물이라도 조금 팔아주는 것이 상춘객으로서 산수유마을에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파전이라도 하나 사 먹자고 했지만 아내는 정해둔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자고 하면서, 길가에서 마을 할머니가 농사한 싱싱한 파를 사기로 했다. 파와 미나리를 파시는 할머니께 직접 농사하신 것이냐고 물었다.
그 할머니께서는 직접 재배하신 것이라고 강조하시면서, 이제 파는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하셨다. 미나리는 깨끗하게 씻겨져 비닐봉지에 포장되어 있었고, 파는 끝물이라 오늘 아니면 못 산다고 하셨다. 야트막한 언덕이라 주변에 미나리를 키울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아내는 미나리는 사지 않고 대신 싱싱한 파만 두 봉지를 샀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걸어 내려오면서 마을 주변에 여기저기 널려있는 파밭을 보면서 한참을 웃었다. 매번 당하는 일이었지만 크게 기분 나빠하지 않았고, 지역경제나 어르신들 용돈에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 주 전에도 강화도의 유서 깊은 역사의 현장인 광성보와 강화산성을 산책하고 강화 오일장에서 할머니가 매우 굵은 서리태 검은콩을 논두렁에서 직접 키우신 것이라며 태연하게 말씀하시길래 사 왔더니 눈에 보이는 위에 것만 크고 나머지는 매우 작은 콩이었다. 하지만 별로 불쾌하지 않았고, 매일 저녁마다 그 콩을 넣은 밥을 먹으면서 눈이 마주치면 아내와 나는 한바탕 웃곤 한다.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좋게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미리 검색해둔 근처 지역 맛집에 들러 순서를 기다린 후 테이블에 앉았다. 점심때가 지난 늦은 오후였지만 식당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내 뒷자리에는 중년의 부부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식당은 바빠서 그랬는지 기본 반찬은 추가 요청 대신에 뷔페식으로 마련해 놓고 셀프로 운영하고 있었다. 늦은 점심이라 맛있게 식사를 하던 중, 분주히 셀프 반찬을 가져오시던 중년 부인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들렸다. 멸치 꽈리고추 조림을 싸가지고 집에 가져가서 먹는다며 다른 일행분께 자랑을 했다.
점심을 먹은 후 아내와 다시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면서, 산수유마을에서 거하게 점심을 싸가지고 와서 먹던 중년 아주머니들, 길가에서 태연하게 싱싱한 파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호객하던 노점의 할머니, 점심 먹던 음식점에서 셀프 반찬을 몰래 싸가지고 집에 가서 먹겠다던 중년 부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는 조그만 이익을 좇기보단,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기꺼이 바보짓을 해도 괜찮다.
한국전쟁 후 베이비붐 세대들이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을 힘들게 살아내고 버텼던 삶의 방식들이 경제지표상 선진국이 된 지금까지도 패러다임 쉬프트를 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나이 들면서 점점 학력과 경력에 관계없는 ‘인간 평준화’를 회피하는 방법은 끊임없는 학습과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가끔은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