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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길을 제대로 알아야 가야 할 길을 안다

지록위마

by 봄날


휴일저녁 ‘바이든, 날리면’ 관련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저 사자성어로만 알았던 기원전 이야기가 실제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그 ’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는 기원전 중국 진나라의 조고가 자신의 권세를 시험하여 진시황제가 죽고 난 후 자신이 옹립한 황제 호해에게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진나라 시황제가 죽자 그의 측근인 환관 조고는 거짓 조서를 꾸며 태자 부소를 죽이고 어린 호해를 내세워 황제로 삼았다. 똑똑한 부소보다 모자란 호해가 다루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호해는 세상의 모든 쾌락이나 즐기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조고는 어리석은 호해를 조종하여 승상 이사를 비롯하여 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승상이 되어 실권을 장악했다. 조고는 중신들 중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폐하, 말을 바치오니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자 황제가 “승상은 농담도 잘하십니다. 어찌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십니까, 여러분들도 말로 보이십니까”하고 호해는 웃으며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아닙니다”라고 하는 사람들보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신하들이 더 많았다고 했다.


조고는 “아닙니다”라고 부정한 사람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모두 죽여 버렸다고 했다. 이 고사에서 보듯 진실을 말하는 것은 때론 자신의 목숨을 거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절도 아니니 어떻게 말할까 괴로울 땐 진실을 말하는 것이 좋다.


설해원, 강원도 양양


2천 년 전에 있었던 이 황당한 옛날이야기가 21세기의 우리나라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 그 ‘바이든, 날리면 ‘ 사건의 전말이었다. 그리고, 그와 관련한 최근의 그 TV프로그램은 그 사건의 전말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그 사건은 많은 매체가 동시에 보도했다.


하지만,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한 방송사만 콕 집어 전방위로 압박하고 소송을 진행했었다. 그리고, 1심 재판에서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방송사가 사과하라고 판결했다. 이게 우리 사법부의 현실이다.



그 말도 안 되는 사건의 전개과정을 지켜보면서 너무 참담했고, 심지어 그 당시 여권의 많은 국회의원들이 그 방송사에 피켓을 들고 몰려가 항의집회를 했다. 그 후 그 방송사만 대통령 해외순방 때 전용기 탑승을 거부당했으며 많은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느 언론사도 그 방송사를 도와주기는커녕 외면했으며, 오히려 그 비속어가 섞인 그 말을 했던 당사자의 초대를 받고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받아먹고 사랑의 하트와 함께 해맑게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게 우리 언론의 현실이다.



지금까지도 ‘바이든, 날리면’에 관련된 그 사람들은 반성이나 자숙은커녕, 이젠 12.3 불법비상계엄을 오히려 옹호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또한, 아직도 그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지나온 길을 제대로 알아야 가야 할 길을 안다는데, 정말 왜 그러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몇 년 전,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전쟁을 치렀던 영국의 생생한 기록인 ’ 폭격기의 달이 뜨면‘(생각의 힘)을 읽고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 하나 있었다.



독일의 히틀러는 1939년 9월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세계정복의 야욕을 드러냈다. 1940년 5월 처칠은 히틀러와의 거짓 평화조약을 주장한 네빌 체임벌린의 뒤를 이어 영국의 총리로 임명되었다. 처칠은 곧 국민정부를 구성했으며 연합국의 전쟁을 주도하고 최종적으로 1945년 승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해 1945년 총선에서 보수당은 패배했고 처칠은 제1야당 대표가 되었다. 물론, 그 후 1951년에 재집권했지만 건강이 악화되자 처칠은 1955년 총리에서 사임했다.



그런 천하의 영국 처칠도 독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영국 국민을 구했지만, 1945년 그해에 치러진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것이다. 새삼 그 잊힌 이야기를 소환했지만 그 당시의 처칠과 영국국민들의 이야기로부터 작은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나약한 존재이며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인간실격인 인간들에게 아부하고 아첨해서 출세하면 좋은가, 그러려고 열심히 공부했는가 묻고 싶다. 유명과 악명도 구별해야겠지만, 먼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는 거다.



‘바이든, 날리면’, 분명한 것은 진실과 거짓은 구분되어야 한다. 아무리 K-문화가 고양된다 할지라도 거짓이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어느 독일 매체가 주장한 것처럼 한국은 언론만 바로서면 지금의 한국이상으로 앞서나갈 수 있다는 말이 아쉬울 뿐이다.


한편,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압박이든, 오해든 간에 내정간섭이나 다름없는 상대국 원수의 무례한 개인 SNS 글을 보고 오히려 반색하며 바로 정쟁에 이용하는 일부 정치인을 바라보며 너무 참담했다. 아직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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