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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일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영화, 인생)

by 봄날


무더운 여름날 오후, 카페에서 한동준의 FM 팝스(CBS)에서 흘러나오는 귀에 익은 팝송, Voulez-Vous(ABBA), Body Language(The Dooleys), Sorry, I'm a Lady(Baccara)를 무선이어폰을 끼고 세 곡을 연속해서 들었다. 그리고, 그 라디오음악과 함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카페의 소음을 차단한 채, 장예모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공리가 출연한 오래전 영화.‘인생’(1995)을 다시 본 감상에 빠져들었다.



1940년대부터 1960년대 중국의 대약진운동과 문화 대혁명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내는 주인공들의 삶을 차분하게 서술하듯이 연출했다. ‘살아간다는 것’(위화)이란 소설을 원작으로 장예모, 공리의 연애스토리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삶을 보여줬다.


하지만 장예모 감독은 한국의 그와 비슷한 연애스토리를 가진 어느 여배우와 감독의 연애와 달리 본처와 이혼은 했지만 끝내 공리와 결혼은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같은 스토리일지도 모르겠다.



중국이든 한국이든, 그들의 개인적 연애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내가 세세히 잘 알지도 못하는 그들의 연애이야기에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까. 단지, 이 영화를 보면서 축구계의 호날두와 메시처럼 장예모가 연출했던 두 영화, ’집으로 가는 길‘(2000)의 장쯔이와 ‘인생’의 공리 중 누가 더 매력적인가 생각해 보았지만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그리고 다시 또 공리가 주연했던 영화 ‘오월의 마중’(2014)을 다시 보았음은 물론이다.


석촌호수


물론 그 후, 우리의 약점은 늘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준 드라마 ‘은중과 상연’(넷플릭스)의 김고은 배우처럼 얼굴에 복잡한 감정을 그대로 잘 표현하는 공리 배우에게 그 균형의 추가 기울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 영화는 1994년 47회 칸느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하지만, 공리가 아닌 부귀역의 갈우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끌고 간 갈우가 남우 주연상을 받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 영화는 중국 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낸 소시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에게 인생이란 이렇게 다사다난, 희로애락의 삶, 즉 좋을 때도, 힘들 때도 있고, 기쁠 때, 슬플 때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불행의 반대는 행복이 아니라 일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누구의 인생이 더 특별하지도 않을뿐더러, 모두 다 비슷한 삶이라고 서술하듯 지난 인생을 담담하게 연출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에게 닥친 삶을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두 주인공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40년대 중국,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부귀는 경제적 풍요로움, 아름다운 아내 가진이 있는 부러울 것 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한순간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다. 도박에 빠져 살던 그는 결국 전 재산을 잃고, 아내는 노름에 빠진 그를 만류하다 못해 떠나버리며 아버지마저 충격으로 숨을 거두자, 삶의 의욕을 잃는다. 그러나 아내 가진이 두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자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중략, 네이버 영화소개)



누가 결혼할 상대에 대해 묻는다면 도박, 마약, 폭행, 이 세 가지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면 최악은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그 세 가지에 해당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여주인공 가진(공리)처럼 그저 담담히 그 운명에 순응할 자세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누군가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돌멩이와 같고,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돌멩이와 같다고 했거늘, 정신 똑바로 차리면 운명은 피해 갈 수도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인생’이란 영화는 ‘새옹지마’( 塞翁之馬), 즉 인간의 길흉화복은 돌고 돈다는 뜻으로, 우리 인생의 덧없음을 잘 보여주었다. 영화적 재미를 떠나 이 영화에서 삶의 교훈을 찾는다면 영화 초반에 도박에 빠져 살았던 주인공 부귀(갈우)처럼 남녀를 떠나 최소한 근본은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아무리 부귀영화를 다 준다 해도 인간이 못됐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절망 속에서 한줄기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이 영화는 우리에게 그에 맞설 수 있는 힘과 용기, 그리고 지혜를 줄 것이다. 누구 말처럼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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