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청춘은 무엇인가에 사로잡히기 위해 존재하는 시간대다

성장의 그늘

by 봄날


영화 ‘화양연화’(2000년)의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 양조위(차우)가 서로 우연히 똑같은 처지에서 느꼈던 상실감과 연대감으로 시작된 사랑, 하지만 우유부단했던 자신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장만옥(수리첸)을 놓친다.


10년 후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벽에 난 구멍에 얼굴을 묻고 그 비밀을 털어놓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롱테이크로 잡은 화면에서는 양조위가 그 구멍을 진흙으로 막고 돌아서는 그 모습을 멀리서 한 스님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 영화를 보고 언젠가 캄보디아에 가면 그 장면을 기억하고 그 앙코르와트 사원에 가보고 싶은 꿈이 있었다. 물론 10년 전쯤 회사 일로 프놈펜을 다녀왔지만 그땐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그 앙코르와트 사원까지 달려갈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없었다.


훗날 반드시 다시 올 것을 기약했지만 이젠 꿈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최근 온 나라가 온통 그 캄보디아 범죄집단의 꼬임을 받고 그곳에 가서 아파트에 갇힌 채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젊은 청춘들의 뉴스로 시끄러울 뿐이니까.


백담사, 내설악


그 복잡다단한 범죄문제를 아무 생각 없이 단순하게 캄보디아만 비난하거나 우리 군대를 파견해 구출해야 한다는 헛소리를 하는 정치인들이 있었다. 언제나 인생을 살면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의 감정에 따라 성질대로 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다.


하지만 늘 그 후에는 감당하지 못할 후과와 후회만 따를 뿐이니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가. 그 이유야 어떻든 절박한 사정, 또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사로잡힌 젊은 청년들만 마냥 비난할 생각은 없다. 청춘은 무엇인가에 사로잡히기 위해 존재하는 시간대이니까.



오죽하면 그랬을까, 아니면 스스로 범죄조직에 가입했든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무시한 그들은 큰 죗값을 치러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하고 세계최고의 문화, 경제 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것처럼 우리 청춘들의 고민은 그만큼 더 깊을 뿐이다.


이번 캄보디아 사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청년들은 대부분 비수도권 지방중소도시 출신들이다. 비수도권의 쇠퇴로 일자리가 없고 가난해졌다는 뜻이다. 제대로 스펙을 쌓지 못해 취업도 불가능하고 살 집을 마련 못하니 결혼도 힘들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한 푼 두 푼 어렵게 모은 돈으로 작은 전셋집을 구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서 기를 요량이었지만, 그걸 또 나쁜 어른들이 전세사기를 쳤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도 5, 6세에 벌써 영어학원 레벨테스트를 한다는 소리에 기함을 하게 만든다.


애를 낳아 잘 기를 수 있는 의지마저 꺾이게 만들 뿐만 아니라, 경찰신고의 통계에 의하면 여자들은 매일 270명씩 데이트폭력을 당한다고 하니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조차 두려울 뿐이다. 거의 사회적 재난 수준이다.



서울, 경기 지역에만 모든 좋은 일자리가 몰려있으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십만 채씩 아파트를 짓고 신도시를 몇 개씩 만들어도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은 결국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부족이다. 갭투기도 문제지만, 점점 나이 들수록 집을 팔고 이사 가기가 더 힘들어진다.


또, 그동안 폭등한 집값 때문에 양도세 내고 새로 이사 갈 집의 취등록세와 리모델링 비용을 생각하면 쉽게 이사도 갈 수 없다. 결국 양도세를 낮추고 보유세를 올려야겠지만 1800조의 가계부채 폭탄과 선거철 표계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수도권의 중장년세대는 집값은 올랐지만 달랑 집 한 채에 유동성이 부족해 ‘아파트거지’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정기간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서 돈을 버는 것은 자신과 가족의 번영을 위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높은 증여세와 상속세가 무서워 아내와 자식들에게 온전히 물려줄 수도 없다. 부부 중 한 사람이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상속세를 내기 위해 이사를 가야 할 판국이 되었다. 자식들도 내 집마련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집값 폭등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또한, 슬픈 뉴스는 당대의 중심인 40대의 1위 사망원인은 암을 제치고 자살이 되었다고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유사 이래 최고인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일 뿐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그 이상의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굳이 암울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런 경제, 문화적 성취에 가려진 우리 아픈 청춘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당대인 20,30,40대의 청춘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 찬란한 성취가 무슨 소용인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