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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사탕 Jun 12. 2021

너 왜 내 카톡 왜 안 읽어?

2G 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변화과정에서 생긴 편리한 기능을 말해보라고 하면 나는 주저앉고 '카카오톡'을 말할 것이다. 2G 폰 시대에는 일정한 금액 당 보낼 수 있는 문자 메시지 수가 정해져 있었으며, 쓸 수 있는 문자 메시지를 다 사용하게 되면 돈을 더 지불하거나 문자가 남는 사람에게서 명 '알'을 받아서 쓰기도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료로 문자 수 제한 없이 상대방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카카오톡은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내가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던 시기는 2G 폰의 몰락이 오고 스마트폰이 떠오르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스마트폰 어플인 '카카오톡'이란, 이전의 2G 폰에서 문자메시지를 사용하던 사람들에게는 대화 기능의 확장이자 편리함을 증대시켜주었던 아주 유용한 도구였다. 그래서 였을까. 2G 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꾸던 사람들에게 '카카오톡' 어플은 거의 필수 어플이었다.


그런 카카오톡에는 다양한 기능이 있는데 그중에 메시지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바로 메시지 풍선 옆에 쓰여있는 숫자 '1'이다. 이 숫자가 그대로 있다면 상대방이 내 메시지를 읽지 않은 것이고, 이 숫자가 사라진다면 상대방이 내 메시지를 읽은 것을 의미하게 된다. 또한, 반대로 상대방의 메시지 풍선의 숫자 1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내가 상대방의 메시지를 읽지 않은 것이 되고, 이 숫자가 사라지게 된다면 내가 상대방의 메시지를 읽게 된 것이다.


https://unsplash.com/photos/Cs3y8Mn6-Gk

그러나 상대방의 피드백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던 나에게는 카톡에 숫자 '1' 예민한 문제 그 자체였다. 상대방의 메시지 풍선의 숫자 1 뿐만 아니라 내가 보낸 메시지 풍선의 숫자 1까지 중요한 문젯거리였다. 즉, 숫자 1이 사라져도 문제였고 사라지지 않아도 문제였던 것이다. 


상대방 카톡 메시지 풍선의 1이 사라지면 나의 마음은 바빠졌다. 상대방의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가능하면 빠르게' 나의 답장을 보내려고 했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나쁜 피드백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상대방의 카톡을 여러 사정에 의해서 오랜 시간 동안 확인하지 못하고 답장을 늦게 하게 되면 나는 항상 '아, 미안 카톡 지금 봤어'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이고는 했다. 사실 상대방은 별로 신경 쓰고 있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반대로 내가 보낸 카톡에 숫자 1이 사라지지 않으면, 그때는 마음이 심란해진다. 혼자 속으로 '왜 내 카톡을 읽지 않는 거지?', '내가 뭐 실수한 게 있나?', '혹시 나 싫어하는 거 아니야?'라는 비약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상대방이 카톡을 언제 읽나 수시로 카톡방을 들낙날락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상대방이 카톡을 읽고 답장을 주면 어김없이 '칼답'을 하고는 했었다.


https://unsplash.com/photos/mw6Onwg4frY

시간이 흘러 스마트폰의 사용과 카카오톡의 사용이 디폴트가 된 시대가 되었다. 그럴수록 타인의 피드백에 민감한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은 역시 카톡의 숫자 '1'이었다. 이제는 상대방의 카톡 메시지의 숫자 1이 사라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 카톡의 숫자 1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그 문제는 바로 상대방이 내 카톡을 몇 시간째 확인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는 '요즘 사람들은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고 살면서 어떻게 내 카톡의 답은 몇 시간이 지나도록 하지 않는 것인가'였다.


타인의 반응에 민감한 나로서는 이렇게 내 카톡을 오랜 시간 읽지 않은 상대방을 만나게 되었을 때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물론 당연히 다양한 사정이 있는 경우는 제외다). 이런 생각에 대해서 오랜 고민이 있던 나는 한 번은 이 문제에 대해서 친구들과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들은 대답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카톡에 오랜 시간 대답하지 않는 이유는 카톡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데에 피곤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런 게 싫어서 심하면 몇 달 후에 카톡에 답장을 한다는 친구도 있었다. 


그때 들었던 내 생각은 '나는 상대방의 반응에 예민하게 생각해서 바로바로 답을 주고 바로바로 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었구나'였다. 나의 예민한 성격으로 인해서 상대방의 행동까지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고 정답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답에 만족하지 않은, 즉 나의 카톡에 오랜 시간 답을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많은 실망을 혼자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지금의 나는 상대방이 내 카톡을 빨리 읽던 말던 내 할 말만 하고 더 이상의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게다가 이제는 나의 카톡에 답을 늦게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도 '또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 유연함을 갖게 되었다. 카톡에 집중하면 할수록 나는 나에게 집중할 시간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 시간에 나에게 좀 더 집중하려고 노력 중이다. 


누군가는 나처럼 무슨 그렇게 까지 상대방의 반응에 예민하게 굴어서 카톡 하나 가지고 난리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 대해서 스스로 잘 알지 못했던 나에게는 이는 생각보다 큰 문제였기에 지금의 나로 성장한 내가 다시 한번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또는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 같은 사람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나를 돌아보고 좀 더 성장하는 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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