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 좋아하시는 자장면이랑 탕수육이랑 사갈게요. 저녁 같이 먹어요!"
영상을 꺼달라는 내 애타는 울음을 깨끗이 무시한, 이제는 붉어진 솜뭉치가 아까 봤던 장례식 하루 전 날 영상을 재생시킨다.
"네 아버지. 이따 좋아하시는 자장면이랑 탕수육이랑 사갈게요. 저녁 같이 먹어요! 알았죠?"
아빠의 목소리다. 아빠 특유의 밝은 목소리지만 뭔가 탁한 밝음이 섞여있는 목소리다.
"오냐~ 이따 보자."
아빠의 아빠인 그 남자 목소리다.
생각보다 중후한 목소리. 얼굴을 처음 봤을 때도 그렇고 왠지 귀에 익은 목소리다.
"아버지 집에 계신 거죠? 밖에 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서."
"몸도 아픈데 내가 나가긴 어딜 나가니. 집이지. 이따 보자! 끊는다."
결국 그 남자는 병원에 돌아가지 않았나 보다.
나는 아까와 달리 정해져 있는 결말을 보는 게 힘들어짐을 느낀다.
음.. 이건 뻥이군.
그 남자는 지금 집이 아닌, 엄청 낡은 검은색 차 운전석에 앉아있다.
차는 주차장으로 보이는 텅 빈 공간 한켠에 고요히 멈춰있다.
차 앞으로는 더 고요한 호수가 펼쳐져있다.
바람이 불어도 작은 물결조차 일어나지 않는 차가운 호수가 보인다.
하늘은 쌔까매지기 직전의 흐림이고,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만 같다.
차 안엔 그 남자만 앉아있다. 그 남자가 갑자기 조수석에 있는 작은 가방에서 소주병을 하나 꺼낸다.
소주병 뚜껑을 연다. 그러곤 가방 안에서 소주병보다 작은 병을 하나 꺼내 뚜껑을 연다.
그리곤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소주병에 작은 병의 액체를 쏟아붓는다.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소주병을 타고 줄줄 샌 액체들이 조수석을 다 적신다.
떨리는 손으로 소주병을 부여잡은 그 남자는 호수를 보고 잠시 눈을 감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고요해진 적막을 깨며 그 남자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고집불통 아내, 천사 며느리, 사랑하는 아들..
휴대폰에 저장돼있는 연락처를 내려다본다.
아들의 통화버튼에서 손가락이 멈칫하지만, 이내 창을 닫는다.
그러곤 이번에는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연다.
6천 장이 넘는 사진들이 담겨있고, 대부분의 사진은 아내, 아들, 며느리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가득하다.
사진 속 사람들은 그 남자의 지금 얼굴과 달리 햇살만큼 밝은 웃음을 짓고 있다.
한 장 한 장 바라본다. 마치 눈동자에 그 사진들 하나하나 각인이라도 시키겠다는 듯이.
"윽"
그 남자는 갑자기 복부에 핏빛의 강렬한 통증을 느낀다.
아버지는 미처 보지 못한 사진들을 그대로 둔 채 서둘러 아까 챙겨둔 소주병을 그대로 입으로 들이킨다.
목을 타고 그대로 뱃속으로 흘러들어 가는 게 느껴진다.
복부 통증이 몸에서 퍼져 손가락 끝 발가락 끝까지 감전된 것처럼 뻗어나가는 게 느껴진다.
그래 순식간에 통증이 온몸으로 솟구쳐나간다.
몸속에 솟구치던 통증이 더 이상 뻗어나갈 곳이 없어지자 극도의 통증에 휩싸인 그 남자의 머리가 그대로 핸들 위로 떨어진다.
강한 충격으로 눌려진 자동차 클락션이 고요한 호수의 적막을 깨버렸다.
오직 차 안에 고통스러운 그 남자의 울부짖음이 그 고요한 적막을 깨는 불청객이었다.
그 고통의 비명도 얼마간 후 사라졌고, 다시 호수엔 아무일 없었다는 듯 특유의 스산한 고요함만 남았다.
적막.
그렇게 세상 전부가 고요해진 느낌.
지이이이이잉-
그리고 그 적막속 작은 몸짓으로 바들바들 떨며 울고있는 휴대폰 진동음.
<사랑하는 아들>
내 아빠의 전화다.
하지만 그 남자는 받을 수 없다. 그 남자는 이미 의식이 없다.
답할 수 없는 전화만이 계속 울었고,
호수 위 은빛의 하늘에선 그 소리마저 덮겠다는 듯 빗방울이 한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요해진 차 안과 물결 소리조차 없는 호수의 적막, 그리고 눈물 흘리는 하늘만이 남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