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영상 꺼! 빨리!
'분명 지금 보는 영상은 과거일일텐데 어떻게 저 붉은 솜뭉치는 지금 나를 알아챈 거지?
내 하얀 솜뭉치 구해줘야 하는데 어떡해야 하지 응애!!!!!'
내 솜뭉치가 갑자기 사라져 당황한 나는 울먹거린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내 솜뭉치를 잡아먹은 영상 속 붉은 솜뭉치가 영상을 똑똑히 보라는 듯 가리키는 느낌이다.
영상은 아까 죽은 남자가 있던 때보다 조금 더 과거의 영상이다.
어둑어둑한 작은 지하 단칸방.
아까 그 남자가 누워있다.
'아직 얼굴에 혈색이 도는 걸 보니 죽기 전이군.'
물론 파란 몸뚱이였던 그때보다 더 과거이므로 지금 보는 영상 속 그 남자는 살아있다.
'흠. 지루하네 지루해! 저 사람 죽잖아? 뻔한 결말 왜 또 보여주는 거야?
관심 없어 솜뭉치야. 아빠 생각 보여달래니까 자꾸 첨 보는 사람만 보여줘 왜?'
근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을 볼수록 가슴 통증이 심해지고, 내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것 같다.
'저세상에서 수도 없이 떨어지던 파란 살덩어리들 실컷 봤는데 여기서도 봐야 해?'
나는 솜뭉치에게 결말을 재촉한다.
"아빠 제발 저랑 병원으로 다시 가시자고요!!"
침통한 아빠가 누워있는 그 남자에게 말한다.
'아빠..?'
내 아빠가 저 남자에게 분명 아빠라고 했다.
"아!! 그럼 저 남자.. 내 아빠가 아버지라 부르던 사람이.. 그 아빠의 아빠인 거구나!!! 그래서 솜뭉치가 이 영상을 계속 보여주고 있는 거였구만? 아 어쩐지 그래서 낯이 익었던 건가.."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었어서 그닥 관심이 안 가던 나였지만, 그가 아빠의 아빠란 존재인 걸 알고 보니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어 진다.
"아버님 그러세요. 병원에서 신약으로 다시 도전해보자고 하잖아요. 이번엔 분명 효과 있으실 거예요.."
나를 낳고 아파하던 엄마와는 완전히 달라 내가 알던 엄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건강한 엄마가 아빠의 아빠란 사람을 향해 말한다.
'근데.. 아버님..? 아. 엄마의 엄마를 장모님이라고 하듯이, 아빠의 아빠는 아버님이라고 하나? 하- 뭐 이리 어려워 정말. 아버님.. 아버지? 아!!! 아까 저녁에 아빠가 노래 들으면서 아버지 생각났다고 하는 게 저 누워있는 아빠의 아빠를 생각했던 건가 봐!!'
내 작은 뇌가 팽팽 돌아가며 솜뭉치가 처음 보여줬던 토요일 저녁에 있었던 일과 지금 재생되는 영상의 퍼즐을 맞춰낸다. 새삼 100일 동안 열심히 키워온 내 작은 뇌가 대견하다. 칭차내!!
'휴...... 다행이다. 두 집 살림 때문에 운 게 아니었군! 다행 다행!! 헿'
그리고 이어지는 안심. 에헿. 괜히 오해했잖아. 헤헿.
그렇게 아빠의 아빠, 아빠, 엄마 셋 사이에 이어지는 대화를 들어보니,
음. 저 아버님이란 사람이 죽을병에 걸렸다고 한다.
치료는 늦었고 새로 개발된 신약을 매주 한방씩 맞아야 하는데, 한 방당 2,000만 원이란다.
그리고 그 신약이 저 아버지한테 효과가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황. 나의 아빠는 헐? 대박. 무직이란다.
왜 저 때는 돈을 못 벌고 있었던 거지? 엄마 등골 브레이커였던거야??
아냐 아니지. 그때 삼신이 보여준 아빠의 삶 영상에서 저 때쯤 직장을 그만뒀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다.
'음 그 영상에선 분명 곧바로 직장 다시 잡았는데? 저때가 하필 무직자였을 때인가 보구나..'
대화를 계속 들어보니, 저 아버님이란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미 상당한 빚을 지게 된 상황이고, 더는 못하겠다며 저 아버님이란 사람은 병원 치료를 중단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아빠 엄마는 계속해서 저 아버님이란 사람에게 치료를 권유하는 상황.
영상 속 붉은 솜뭉치가 갑자기 나를 째려본다.
'왜 나한테 그래?' 이해 불가다.
엄마 아빠가 슬퍼하는 모습을 봐서 그런가. 자꾸 내 심장 있는 왼쪽 가슴에 물이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미어지는 기분? 이게 가슴에 차고 차올라 터져서 눈으로 올라오면 그게 바로 눈물로 흐르는 것 같다.
배고파서 응애 하는 눈물과는 다른 느낌.
"오케이. 이해됐어. 아빠가 그래서 그 노래 들으면서 저 아버님이 생각나서 잘 자는 내 옆에서 훌쩍댄 거네. 내가 가끔 일 나간 엄마 생각하면서 훌쩍이듯이, 저 덩치만 큰 아빠도 아빠의 아빠를 생각하며 훌쩍였던 거야. 맞지? 됐다! 궁금증 해결! 헤이 솜뭉치! 아빠 생각 다 알았으니까 이제 영상 꺼! 빨리!"
글쎄.. 더 봤다간 왠지 마음속 물이 넘쳐 나올 것만 같았던 것 같다.
더 못 보겠는 내가 간신히 영상 속 솜뭉치를 향해 다급히 소리쳐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솜뭉치를 잡아먹은 저 붉은 솜뭉치는 내 말을 깨끗이 읽씹 하고, 다른 영상을 하나 더 내 눈앞에 펼친다. 너무 바짝 내 눈앞에 들이대니 눈 안으로 화면이 가득 차는 느낌이다.
그토록 영상이 그만 꺼지길 원했지만, 나는 그 화면을 피할 수가 없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