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화) 46*. 다 괜찮다는 듯, 어깨를 토닥.

"잘 봐 이 솜뭉치야. 이게 바로 0세 힙한 신생아의 엄청난 위로다!"

by 빨양c


나는 감았던 눈을 뜬다.


어느새 영상은 사라지고,

붉은 솜뭉치도 사라지고,

원래 내 하얀 솜뭉치만이 어느샌가 내 옆에 돌아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둥실둥실 떠있다.


한 가지 이상한 건, 분명 내가 현생 하기 전 삼신이 보여줬던 아빠 삶의 영상에서는 저 아빠의 아빠에 대한 부분은 없었다는 거다.

아무리 100일이 다되어 기억이 거의 사라졌다곤 해도, 그 부분만 이렇게 완벽하게 기억이 없을 수 있나? 이상하다. 어떻게 된 건지 삼신에게 이 부분은 꼭 물어봐야지. 정말 삼신 부르는 소원권이라도 써야 하는 건가 흠.. 찝찝해라.


어쨌든 영상을 다 보고 난 아직까짇ㅎ 내 옆에서 훌쩍 거리는 내 아빠를 먹먹히 바라본다.

가련한 사람.

하얀 솜뭉치가 보여준 영상을 보고 나니 아빠의 저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그리고 자꾸만 나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아빠는 계속 걱정하고 있었다.

아버지란 그 남자.

그러니까 저 아빠의 아빠인 사람의 마지막 그 적막 속 슬픔이,

본인이 아버지께 좋은 아들이 되지 못했다고 자책해왔다.


그리고 그런 자책을 갖고 있던 사람에게 자기와 같은 아들이 생겼으니.

아빠는 좋은 아들이 되지 못했으니 아들인 나에게 본인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한가득 들었나 보다.


'아!'

이렇게 놓고 보니 다 이해가 된다. 아빠가 날 돌볼 때 했던 이상한 행동들.

장모님 눈치를 보면서 굳이 요리를 애써 배우고,

틈만 나면 저 망할 네모난 핸드폰 부여잡고 너튜브에서 온갖 육아 영상을 찾아 날 실험체(?)로 쓰고,

거의 당근농장 사장처럼 당근당근 거리면서 나를 위한 물건들을 집어오고.

자기도 힘들어 눈도 못 뜨면서 잠든 나를 어깨에 들쳐 메고 트림을 시키고,

온습도계 숫자가 40% 아래로 내려가면 수도 없이 가습기 물을 갈고.

아빠는 본인이 좋은 아들이 못됐다는 자책감에 나에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내 아빠는 계속 노력하고 있었다.

난 내가 현생 오기 전 봤던 영상에서도 그랬지만,

현생에 오고도 단 한 번도 내 아빠가 좋은 아빠가 아니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온갖 서툰 초보 아빠의 실험(?) 덕분에 내 몸이 고생한 건 사실이지만, 그런 행동 너머에 자리 잡은 그의 따뜻함을 온전히 잘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부모는 항상 좋은 부모가 되어주지 못한 것에 미안해 할지 모르겠지만, 신생아 입장에서는 좋다는 기준도 없기에 그저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주는 부모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부모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다 그 노래 <그때 그순간 그대로>라는 노래가 그런 아빠의 눈물샘을 폭격한 거지.'

난 신생아다.

그리구 아빠가 지금 옆에서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흐느끼고 있다.

내 손이 좀 더 길었다면 엄마가 그랬듯 따뜻한 내 똥배로 아빠의 머리를 끌어안아 토닥토닥해주었을 테고,

내 입술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아빠가 내가 울 때마다 해주듯, 아빠에게 괜찮아 괜찮아 말해줬을 테고,

내가 표정을 맘대로 질 수 있었다면 울먹이는 아빠를 향해 활짝 눈웃음을 가득 보여줬을 텐데.

이제 막 100일을 마친 0세의 마지막 밤에 있는 신생아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아! 하나 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일단..


울자!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게 바로 100일을 마무리 짓는 다 큰(?) 신생아의 울음소리다 어흥!!

엄마 양수 터치고 나오던 그때 갓난아기 때와는 소리와 크기 자체가 다른 클라스의 울음이지 후후.

꽤나 만족스럽다!!

갑작스러운 울음에 당황해서 눈물도 제대로 못 닦은 아빠가 허둥지둥 나를 들춰 안는다.

트림시키는 익숙한 자세인 본인의 왼쪽 어깨에 나를 둘러매고 서둘러 등을 토닥인다.


'그럼 그렇지. 어쩜 이 아빠는 내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질 못하네. 좋아. 그럼 이제 해볼까?'

난 아빠 어깨 위 얹힌 내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기 시작한다.

너무 힘들다. 하지만 힘을 낸다. 엄마 쮸쮸 먹던 힘까지 모아서 끙차끙차!

힘을 너무 줬더니 응아가 나올 것만 같다.

그동안 터미 타임을 통해 단련해온 내 목과 어깨 근육을 드디어 쓸 때가 왔다!

으랏차차차 성공!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빠의 왼쪽 뺨과 내 왼쪽 볼이 닿는다. 됐다! 그럼 이제..


"솜뭉치 나 좀 도와줘. 내 코 앞까지 와서 위아래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왔다 갔다 좀 해봐."

솜뭉치가 야밤에 왜 쌩쑈하는 나를 비웃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좀 츤데레 해진 게 저러면서도 내가 해달라는 건 다하려고 하는 게 느껴진다.

난 위아래로 움직이는 솜뭉치를 따라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여본다.

정말 열심히 해서 뒤통수와 등,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게 느껴진다. 으 힘들어!!


'이렇게 하면 아빠 뺨을 내 볼이 쓰다듬는 느낌이 들겠지?'

무려 100일의 작은 뇌로 내가 생각해낸 아빠를 위로하는 방법이다. 볼로 볼 쓰다듬어 주기!

그러다 슬쩍 내 입술이 아빠 볼에 닿아 뽀뽀해주는 것처럼 느끼게 하기는 덤!

내 뽀뽀가 흔하진 않지만, 뭐 오늘은 큰 인심 썼다요! 헤헿!


고개를 열심히 부비적 거리며 아빠의 얼굴을 슬쩍 올려다보니 여전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이다.


'아니 눈물을 저리 흘리면서 왜 저 망할 <그때 그순간 그대로> 노래는 계속 재생시키는 거람?'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된다. 관종인가 정말. 후. 여러모로 가련한 사람 같으니.

'이걸로 부족하다 이거지? 흥.!! 그렇담..!!'

자. 이제 회심의 카드가 남았다.

정말 이건 내 지난 100일 동안의 엄청난 운동량이 담겨있는 몸짓이다.

그리고 제발 아빠가 눈치채길. 그래서 내 위로가 아빠에게 전달되길 간절히 빌어본다.


잘 봐 이 솜뭉치야. 이 0세 힙한 신생아의 엄청난 위로를.

”어? 와~ 우리 축뽁이가 아빠 어깨를 움켜쥐네?

작은 손으로 이제 아빠 어깨도 움켜쥘 줄 알고. 다 컸네 우리 축뽁이~?"

내 작은 손짓에 어느새 눈물이 멈춘 아빠의 옅은 웃음이 보인다.


너무 열심히 해서였을까?

움켜쥔 축뽁이의 손에는 땀이 가득했고, 그 땀의 따뜻함이 아빠의 어깨에 전달된 것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그 작은 옥수수 알갱이 같은 아기 손가락은 아빠의 어깨를 움켜쥐고 있었다.

다 괜찮다는 듯, 어깨를 토닥이듯이.


<유중진담 마지막화 끝.ⓒ빨양c>


이전 15화45*. 그리고 눈물 흘리는 하늘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