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을 위한 고결한 희생으로 잘도 포장한 채로 말야."
온도 25.9'C
습도 52%
전자 온습도계 상태 표시 창이 쾌적한 상태를 표시하는 웃음 표시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숫자가 23:59, 자정 1분 전임을 가리킨다.
이제 1분 뒤면 축뽁이의 100일도 끝이 나고 모든 기억이 사라져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아기"가 된다.
그리고 대천문이 닫히고 인중은 더욱 선명해져 더 이상 삼신과 염라를 비롯한 저세상에 대한 기억도 완벽히 잊게 된다.
고개를 돌리고, 솜뭉치를 따라 눈과 고개를 계속 움직이고, 그리고 어깨를 움켜쥐느라 땀이 가득했던 손가락에 어느새 힘이 빠진 축뽁이는 그렇게 아빠의 어깨에 아직 걸쳐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축뽁의 옆 둥실둥실 떠있던 하얀 솜뭉치의 색이 한번 번쩍이더니 돌연 검게 변한다.
모두가 잠든 시간. 아무도 보지 못했다.
검게 물든 솜뭉치가 축뽁이의 뒷 머리카락으로 다가서더니 배냇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린다.
"허억!"
잠들었던 축뽁이 갑자기 큰 호흡을 내뱉더니 눈동자가 번쩍 뜨이고 몸이 튕겨지듯 활처럼 크게 뒤로 젖힌다.
축뽁을 어깨에 안고 있던 아빠는 갑작스러운 휘청임에 놀라 축뽁이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서둘러 오른손으로 축뽁의 등을 꼭 감싼다.
"... 우웅? 솜뭉치 까매..? 왜 탔어?"
눈은 떴지만 아직 무의식을 헤매고 있는 축뽁이 말한다.
"여~ 정신 좀 차려보지? 오랜만인데!"
검은 솜뭉치에 깃들인 염라가 말한다.
"엥? 염라!!!! 안 올 것 같더니 그래도 왔네 헤헿. 반가웡!!"
"흐흐. 반갑지 그럼. 그나저나 100일 현생은 어땠나? 저세상보다 낫던?"
"에잉~ 거기나 여기나. 그래도 여기는 컬러풀해서 좋은 거 같긴 해 헤헿. 엄마 아빠도 있고 말야. 근데 삼신은 그때 바쁘다더니 같이 안 왔나 봐?"
"삼신이야 늘 바쁘지. 높으신 어르신 님들께서 삼신한테 출생률 높이라고 그렇게 난리니 뭐. 그리고 해주신 님도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겠고.. 아 이렇게 말하면 넌 모르려나? 아무튼, 저세상이 요즘 좀 어수선해."
"그래? 거기야 뭐 항상 그랬던 거 같긴 하다. 근데 삼신 없이 염라만 이렇게 현생 올 수도 있는 거였구나. 난 둘이 꼭 붙어 다니길래 같이 있어야 올 수 있는 건 줄 알았지 뭐야."
"뭐. 나도 이 정도 능력은 되지. 그래도 나름 저세상 한 구역을 책임지고 있는 몸인걸? 단지 나 사고 칠까 봐 삼신이 굳이 따라다녔을 뿐."
"그 말은 지금 너 혼자 내 앞에 나타난 것도 사고를 치겠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흥미롭다는 듯 축뽁이 말했다.
"음. 뭐. 사고라면 사고지. 널 현생에 보낸 처음부터 사고라면 사고랄까. 너도 잘 알겠지만 그때 삼신이랑 했던 현생 계약에 의거 이제 넌 1분 뒤 지금까지 경험한 저세상에서의 모든 기억이 지워진다. 알지? 그전에 내가 선물 하나 주려고 이렇게 친히 왔지. 물론 삼신의 망각으로 곧 잊을진 모르겠지만."
말하던 염라가 잠시 숨을 고르는 게 느껴진다. 큰일을 저지르기 전 눈치라도 보는 듯이.
"뭔 소리래.. 이제 1분 뒤면 100일 끝나. 그럼 내 기억은 어차피 다 잊힌다고."
이해 못 하겠다는 얼굴로 축뽁이 중얼거린다.
"때로는 1분이란 시간이 어쩌면 많은 걸 바꿀 수 있는 긴 시간이 되기도 하지.
이 말 기억해? 천사였던 네가 현생 하러 삼신 만나기 직전 나한테 했던 말인데. 그때 그러고 사라져서 뭘 해놨나 했더니만.. 잘도 내가 지금 이렇게 하게 일을 꾸며났어. 엉? 크크."
염라가 재밌다는 듯 말한다.
"무슨 말 하는.."
축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은 솜뭉치가 축뽁에게 다가오더니 축뽁의 눈동자를 어루만진다.
"허억!"
염라의 손길이 축뽁의 눈에 닿는 순간 축뽁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기의 응애 응아 으앙 이런 울음이 아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걱정하며 흘린 아빠의 눈물 같은,
아무 소리 없는 그 따뜻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시간은 여전히 23:59를 가리키고 있다.
마치 그 시간에 멈추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이.
세상엔 닦아도 닦아도 멈추지 않는 눈물이 있다.
"염라!!!! 네 이놈!! 천사의 기억을 되살리는 짓거리는 분명 금지란 걸 알 텐데. 감히 이런 짓을 해?!"
갑자기 하늘이 번쩍하고, 뒤이어 벼락이 치더니 삼신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이런 소리 아닐까.
염라는 예상했다는 듯 재밌어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사라진다.
검은 솜뭉치가 다시 하얗게 변한다. 그러더니 다시 밝은 빛을 한번 번쩍이더니 보라색의 은빛 솜뭉치로 변한다.
시간은 아직 23:59,
그리고 이어지는 찰나의 적막.
"삼신. 그래서였군.."
염라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한 축뽁이 어느샌가 삼신의 형상을 한 은빛 솜뭉치를 향해 말한다.
"그때 아빠 삶 영상에서 아빠의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던 게, 내가 천국에서 만났던 그 영혼이었기 때문이었어.."
축뽁의 물음이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삼신은 침통하다는 듯 작은 한숨을 뱉는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축뽁을 초보 아빠는 어찌할 바 몰라 계속 '괜찮아 괜찮아 우리 아기 괜찮아'하며 토닥인다.
"... 원래 천국에서의 기억은 현생에 갖고 태어날 수 없지. 그래서 천사였던 너를 현생으로 보내기 전 굳이 염라와 지옥불을 지나게 해 천사의 기억을 없앴던 거고.."
삼신이 깃든 은색 솜뭉치가 나지막이 속삭인다.
"염라가 현생에서 기억을 돌려놓는 돼먹지 못한 사고를 칠지는 전혀 몰랐지만.."
축뽁을 향해 삼신이 말을 잇는다.
"그래. 어차피 1분 뒤 100일이 끝나면, 네가 천사였던 이 기억 또한 잊게 될 테니 다 알려주지. 지금 알았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는 말이야."
삼신이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잇는다.
오래된, 그리고 아픈 기억이라도 되돌리겠다는 듯이.
"망할 염라가 보여준 대로 널 지금 안고 있는 네 아빠란 사람의 아버지가 바로 천사였던 네가 염라랑 쿵짝해서 천국에서 그렇게 보호하려 애썼던 그 영혼이 맞아."
삼신은 자못 진지한 얼굴을 하고 그때를 회상한다.
그리고 삼신이 옛 이야기를 시작한다.
"염라! 저 영혼 수집해. 자살이니까 지옥불에 쳐넣어."
지금보다 더 짧은 은색 단발의 삼신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염라에게 소리친다.
"삼신, 이건 좀 따져봐야 하지 않아? 저 사람 사연도 높으신 어르신 해주신님들께 보고드릴 필요가..."
그런 삼신이 안쓰러운 건지, 불편한 건지 불만 섞인 표정의 염라가 삼신의 뒤를 따르며 말한다.
"염라! 바빠 죽겠는데 답답한 소리 좀 하지 마. 뭐 또 그 잘난 위원회라도 열어서 지옥불 가는 게 타당한지 따져보잔 거야?
저 차에서 저렇게 저 모양 저 꼴로 자살. 따져볼 게 뭐가 있지?
또 무슨 개폼인지, 어디서 본 건 있어서 호수 앞에 차 떠억하니 대놓고 혼자 잘났다고 스스로 생을 마감 지으셨네. 참나.
이유야 어찌 됐든, 사연이 어쨌든 자살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지옥행이야.
그 법칙을 만든 게 바로 너, 염라고.
사연? 그 잘난 사연 하나 없는 인생이 어디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명까지 죽어라 버티며 살아내야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야.
그리고 우리의 숙명은 그들이 살아낸 삶의 결과를 놓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거고!! 잘 알잖아!!?"
답답하다는 듯 분노 섞인 목소리의 삼신이 말한다.
그때의 삼신은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본인 손으로 현생으로 내보내 준 인간, 한때는 아기였던, 그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에 신물이 날 데로 나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지치고 실망하고 분노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본인의 능력인 망각을 극대화시켜 치매라는 인간 최악의 질병을 일으켜 생명에 경솔한 자들을 옭아메버리고 싶은 생각만 가득 들던 그런 날들을 켜켜이 보내고 있는 삼신이었다.
오히려 죽음을 관장하는 염라가 그런 삼신을 말려야 할 정도로.
"음.. 하지만 염라는 그때도 내 말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 영혼을 나 몰래 천국에 보내버렸지.
그리고 천국에서 그 영혼을 숨겨주고 보호했던 건 너였고.
염라랑 천사였던 너, 미카엘. 니것들이 잘도 자살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빼고,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궁핍을 막기 위한, 가족들을 위한 고결한 희생으로 잘도 포장한 채로 말야."
삼신은 지금도 분하다는 듯 축뽁을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그것도 출생률 때문에 하루하루 정신없는 나 몰래 말야.
물론, 인간의 죽음 이후의 처리는 염라가 책임자이긴 하지만 천사였던 너도 누구보다 잘 알겠지만 천국의 그 높으신 어르신 해주신 님들이 그렇게 서툰 분들이 아니시거든.
그 사실을 알게 된 직후 난 불려 가 된통 깨졌지.
그리고 네가 잘도 천국에 숨겨줬던 그 영혼도 당연히 엄벌을 피할 수 없었지.
하나. 천국에서의 추방
둘. 인간으로의 환생 불가
셋. 영혼이 사그라질 때까지 지옥불에 감금.
세 번째 항목처럼 천사와 염라가 짜고 영혼을 숨기려 했던 분노에 높으신 어르신님은 그를 지옥으로 떨어뜨리려 했지. 사연이야 어찌 됐든 자살은 지옥행이니까.
하지만 천사였던 너는 끝까지 그 영혼을 보호하고 옹호하고, 심지어 어르신들께 조목조목 잘도 지옥불 행의 불합리함을 대변하더군. 그 잘난 가족에 대한 희생을 소리치며 말야.
뭐.. 그럼에도 높으신 어르신님들은 거부했지만, 왜인지 해주신 님은 너의 제안을 받아들이시고는, 결과적으로 그렇게 그 영혼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저세상에서 계속 떠돌게 되었지. 물론 그 영혼은 지금도 나름 저세상 어딘 가에서 만족한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넌 그 조건으로, 천사의 직위를 포기하고 다시 네 번의 인간으로 환생해야 하는 제약을 당했지.
뭐.. 사실 나도 그 천사에 대한 소문은 들었지만, 현생 전날 내 눈앞에 나타난 네가 그 천사일 줄은 몰랐어.
지옥이 무섭긴 하더군. 삼신인 나조차도 알아볼 수 없게 천국에서의 기억은 물론 외형까지 활활 태워 싹 바꿔놓다니 말야. 본인 스스로도 자신을 기억 못 하게 하는 제약이라니. 끔찍하지.
널 현생으로 보내고 나서야 염라에게 그 말을 들은 나는, 천사였던 네가 대체 왜 그 영혼을 그렇게 보살피려 애썼던 건지 궁금하더군. 염라 덕에 기억이 좀 돌아왔을 테니 그 이유라도 좀 알려주지 그래? 어차피 이제 곧 모든 기억이 다시 사라질 텐데 말이야."
"..."
축뽁은 삼신의 긴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염라가 기억을 되살리긴 했지만, 마치 유리조각이 산산이 깨진 것처럼 머릿속의 기억들이 뒤죽박죽 엉켜있었다. 시간 앞뒤 순서 배열 없이 천사일 때의 기억과 삼신과의 현생 전날의 기억, 그리고 현생 후 100일 동안의 기억, 그리고 왜인지 각기 다른 네 명의 얼굴의 인간일 때의 기억이 뒤죽박죽이었다.
그중엔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염라가 몰래 끌고 온 그 영혼을 천국에서 만났던 기억과 사연을 듣고 나니 왜인지 천사였던 자신의 혼이 깨질 것 같았던 기억. 그리고 그의 지옥불 행을 막기 위해 천사 최초로 높으신 어르신 해주신께 대항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다만, 왜 본인이 그 영혼을 그렇게까지 감싸려 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모호했다.
단지 가련해서? 불쌍해서였을까?
이미 천사가 되기 전 네 번의 인생을 경험하며 온갖 경험을 다 겪은 본인이 단지 한 인간의 사연에 그렇게까지 신경 쓴 이유가 뭐였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 네 번의 삶 중 언젠가와 그 영혼이 관련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마저도 분명하진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던 삼신이 말을 이었다.
"기억이 돌아온 너도 잘 알겠지만 사실 이게 흔한 경우는 아냐. 감히 한낱 천사가 천국의 높으신 어르신 해주신의 결정에 대항을 한다는 게.
하지만 넌 마지막까지 잘도 주장했지. 그리고 해주신 님께서 던진 천사를 포기하고 다시 인간으로의 환생 제약을 넌 참 당돌하게도 받겠다고 했어. 거기다 뭐 잘했다고 요구사항까지 당당히 덧붙이고 말야.
네가 그 영혼에게서 어떤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너는 지금 널 안고 있는 그 아빠, 즉 그 영혼의 아들의 아이로 현생 하겠다고 했어. 글쎄.. 왜였을까?
어쩌면 그 영혼이 그의 아들인 저 아빠란 존재를 너에게 지켜달라고 부탁했는지도 모르지."
삼신은 본인의 추측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슬며시 축뽁의 눈짓을 살폈다.
축뽁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잠자코 삼신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아 한 가지 더.
네게 왜 그 영혼에 대한 기억만 없었을까?
천국에서 현생으로 자기 발로 추방당한 최초의 천사. 지옥불을 지나 기억과 외형이 모두 사라진 너에게 당연히 저 아빠의 아빠, 그 영혼과 관련된 기억은 허락될 수 없었지. 암, 없고 말고.
아까도 말했듯 널 현생으로 보내고 나서야 나도 네가 그 대단히 유명하신 천사였다는 걸 염라에게 전해 들어 알게 되었는 걸. 염라 이 얄미운 게 현생으로 이미 나가면 내가 손쓰기 어렵다는 걸 알고 꾸민 짓이었지.
그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된 나는 '삶을 주관하는 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너에게 다른 이들보다 훨씬 진한 인중을 남겼어. 다시 한번 내가 너의 기억을 지웠다는 징표 같은 거지. 모든 인간의 저세상에서의 계약 기억은 내가 태어나는 아이의 인중을 누르는 순간 모두 사라지게 되거든.
물론 대천문을 통해 간간히 저세상의 기억이 떠오른 순 있지만, 단순히 꿈꾼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있지.
나는 그렇게 굳이 천사였던 네 기억을 다시 한번 확실히 지웠어. 그리고 내 계획대로였다면 네가 이번 축뽁의 생을 끝마치는 그 순간까지 절대 알아선 안 되는 것이었고.
근데 망했네? 저 염라가 이딴 사고를 쳤으니."
삼신은 씁쓸한 말투로 말을 마쳤다.
시간은 자정까지 10초 정도 남았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서였네.."
여전히 축뽁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아빠의 어깨를 움켜쥔 손가락은 삼신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더욱 힘이 들어가 땀이 흥건했다.
"계속 흐릿하게만 마음속에 남아있던 찝찝함이 이거였어.. 현생 하고 중간중간 꿨던 이상한 꿈도 다 내 기억에 있었던 것들이었고.. 글쎄.. 삼신 네가 궁금해하는 걸 나도 속 시원히 알려주면 좋은데 지금 내 머릿속 기억이 워낙 뒤죽박죽이라 어떤 게 내 기억이고, 어떤 게 영상 속 이야기인지, 이게 사실인지, 저게 거짓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어 답해주기가 좀 어렵네. 근데 이건 확실히 알겠어."
축뽁의 혼란으로 가득 찼던 눈동자에 한순간 형광의 빛이 감돌았다. 미카엘의 그것처럼.
"확실히 지금 해야 하는 건 알겠어. 좋아. 삼신. 그때 말한 현생 계약 7번 조항 소원권 나 지금 쓸래. 괜찮지? 아직 10초 남았어. 나 백일 아직 안 끝났다고! 헤헿."
말을 마친 삼신을 향해 어느새 0세 특유의 힙한 미소를 머금고 축뽁이 삼신에게 말했다.
"...?"
축뽁의 갑작스러운 계약 조항 요구에 삼신은 당황했다.
하지만 축뽁의 소원을 들은 삼신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게 100일 전 니 마지막 소원이라 이거지. 그 정도는 해주지. 계약은 계약이니까.
자, 이제 곧 자정이 될 거야. 그리고 100일을 마친 넌 현생 계약서대로 넌 이제 저세상에서의 기억은 모두 잊게 된다. 당연히 염라가 방금 사고 쳐 알게 된 천사로서의 기억도, 내가 말해준 모든 기억도 사라지지. 혹시 모르니 너의 인중은 다시 한번 내가 누를 거고.
이제 정말 네가 날 다시 기억하는 건 이번 생을 마감하는 시점이 될 거야. 그때까지 제발, 얌전히 좀 살아.
똑같은 잘못 또 저지르면 네가 그 옛날 아무리 네 번의 환생을 마쳐 천사가 된 존재였다 해도 소멸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고. 제발 이 삼신할매 속 좀 썩이지 마 이 녀석들아. 밤낮 정성으로 하나하나 성심을 다해 보살펴 현생으로 보내준 이 삼신의 은혜에 감사 좀 하며 잘 살란 말야 제발!"
할매임을 숨길 수는 없는지 할매 특유의 따뜻한 잔소리를 한마디 덧붙이는 삼신이었다.
00:00
삼신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자정이 됐음을 알린다.
은빛 솜뭉치는 어느새 원래의 하얀 솜뭉치로 변했고, 솜뭉치는 잠시 멍하다 뭔가 잊었다 갑자기 기억난 것처럼 후다닥 서둘러 축뽁의 눈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축뽁의 가슴속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어느샌가 축뽁은 여느 100일 아이가 그렇듯 아빠의 어깨에 안겨 행복한 표정으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고, 아빠는 그런 축뽁을 더욱 꼬옥 따뜻한 품에 안아주었다.
<에필로그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