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2) 100일의 기적

“늘 고마웠어. 넌 나의 세상이었단다.”

by 빨양c


"여러분!!!

제 얘기 들리세요? 헤헿. 이 안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건 처음이라 잘 들리실지 모르겠네요! 저 솜뭉치예요. 그리고 여긴 어디냐구요? 여긴 축뽁도령님 마음 속이구요. 그동안 도령님의 애say를 열심히 봐주신 분이라면 다 아시겠지만, 100일이 지나고 저는 더 이상 밖에서 활동할 수가 없게 되었죠. 하지만 사라진 건 아니에요. 이렇게 마음속에서는 계속 둥실둥실 떠다닐 수 있거든요. 도령님이 어른이 돼서, 죽을 때까지 말이죠. 도령님의 마지막 날이 오면 저는 다시 밖으로, 그렇게 저세상으로 돌아가게 되겠죠. 아! 그리고 도령님은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기억을 잃었지만 저는 온전히 기억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도령님이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에 부딪히게 되면 그때의 기억을 끄집어내서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거죠. 이게 바로 제가 수호령으로 불리는 이유기도 하구요. 헤헷. 이제부터 제 진면목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거란 말씀!!"


"어젯밤에 해준이 한 번도 안 깨고 통잠 잔 거 알아? 이게 말로만 듣던 100일의 기적인가 싶더라니까?"

앗! 가만가만. 엄마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네요. 무슨 이야기하는지 한번 같이 들어볼까요?


"아 정말? 와! 100일 딱 지나니까 통잠을 자다니. 맨날 그렇게만 자줘도 육아가 한결 수월할 텐데 말야."

너무 익숙한 아빠 사람의 목소리도 들리구요.


"그렇게 통잠 잘 자고도 해준이는 차에만 타면 잠이 드네. 그래도 이제 카시트 앉아도 잘 자는 거 같지? 처음에는 똥 싸고 막 그냥 난리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아하! 축뽁도령님은 지금 카시트 위, 그러니까 자동차 안에 타있나봅니다!


"그러게.. 그때 수타팰드였나. 거기서 얼마나 당황했던지. 그나저나 이름 진짜 잘 지은 거 같아. 해준!"

축뽁도령님의 이름이 지어졌나 보네요! 해준? 해준!


"맞아. 입에도 착착 붙고 말야. 예뻐해준, 응원해준, 기뻐해준, 사랑해준! 그리고 축뽁이란 태명처럼 언제나 축복받고 또 축복해주는 사람으로 자라길..

그나저나 시간이 참 빠르네. 벌써 100일 지나고 이렇게 장모님 댁을 떠나게 되니 말야."


"그동안 여보가 고생 많았지. 집에 강아지 두 마리에 고양이까지 혼자 돌보느라 왔다 갔다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밤에라도 같이 있어주니까 그렇게 외로워하진 않았지?"


"음.. 글쎄. 빌리는 많이 외로웠는지 벽에다 목을 비비면서 갸르릉하더라고. 불쌍하기도 하고. 그래도 축뽁이 아직 너무 어려 면역이 약해서 100일 전에 만나게 하면 좀 그럴 거 같았으니까 어쩔 수 없었지 뭐.."


"아 벽에다..?? 고양이는 외로움 많이 탄다더니.. 에고.. 미안하네.. 그래도 이제 돌아가면 여보랑 해준이, 사복이, 캔디, 빌리 모두 예쁘게 살자! 해준이가 잘 적응해야 할 텐데.."


"잘할 거야. 우리 해준이는."


"아하! 이 세 식구가 이제 장모님 집을 떠나나 보군요! 엇? 갑자기 축뽁도령님이 불편한지 칭얼거리려고 하네요. 이런이런. 어디가 불편한지 좀 살펴보고 올게요 여러분! 또 만나요 슝!"


"응? 해준이 왜 갑자기 칭얼대지? 더운가? 으음.."


"그래? 에어컨 켰는데.. 음..

아! 라디오 한번 켜볼게. 가끔 칭얼댈 때 음악 들으면 얌전해지더라고."



민아정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함께 해주고 계신데요.

음.. 소방대원 분들께선 언제나 안타까운 죽음 앞에 서계시죠..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순간들 중 편지가 하나 발견됐었는데, 발견 당시 다 젖어서 내용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날 비도 많이 오고, 또 호숫가 주변이어서 그랬는지 다 젖어있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당연히 편지의 주인인 보호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어 보관하던 편지라고 하는데요.
그런데 최근 우연히 책상 위에 나와 있어 봉투를 열어보니 이상하게도 내용이 온전히 쓰여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누구에게 보내는지 보호자의 신원은 여전히 확인이 안돼 이도 저도 못하다가,
이렇게 평소 즐겨 듣던 라디오를 통해서나마 그 보호자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번 보내보셨다고 합니다. 음.. 정말 뭉클한 사연인데요..
그 편지를 지금 읽어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신청곡으로 요새 핫한 곡이죠. <눈을 감으면>을 신청해주셨네요. 바로 이어서 음악 들려드리며 민아정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오늘 순서는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흠흠. 그럼 읽어드릴게요. 방송 전 사연을 살짝 봤는데 눈물이 차올라서 잘 읽을 수 있을까 무척 걱정되는데요.. 최대한 끝까지 차분히 읽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 편지를 받아 든 너는 아빠를 향해 화를 내고 있을까? 욕을 하고 있을까?
걱정부터 되는구나. 아기 때부터 그렇게 눈물 많던 너였는데, 과연 괜찮을는지..
이런 선택을 한 아빠를 너무 원망하지 않기를.

나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지도 못하는 병을 치료하느라 계속해서 돈을 쓰고 있는 널 너무 잘 알고, 또 이 아비도 병마와 싸울 기력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많이 지쳤단다.
그리고 너는 쉬쉬했지만, 아빠는 얼마 전 너의 퇴사 소식을 이미 들었단다. 그런 와중에 아빠의 치료비까지 감당하며 괜찮다 하며 옅은 미소를 짓는 너를 보며, 아빠는 혹시나 너에게 짐이 될까 미안했단다.
결국 아빠가 편해지기 위해 한 선택이고 결정이니, 날 원망할지언정 혹시나 절대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다른 누군가를 비난하지 말렴. 어차피 언젠가는 사그라들 삶. 조금 그 시기가 이르게 찾아왔다 정도로 받아들여주길.
부디 아비의 죽음 후 슬픔은 잠깐으로 지나고, 어린 시절 아빠 어깨를 작은 손가락으로 꼭 움켜쥐며 활짝 웃어주던 밝은 웃음으로 힘차게 살아가길.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어서 너에게 늘 서툴렀고 그래서 늘 미안했단다.
아빠는 늘 너에게 좋은 아빠, 친구 같은 아빠이고 싶었어.
너도 알다시피 나의 아버지는 시골 분답게 무척 엄하신 편이셨어. 나이차도 별로 나지 않았기에 더 그러셨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는 항상 내 아들이 태어나면 친구 같은 아빠로 지내고 싶었단다.
같이 축구도 하고, 낚시도 하고, 목욕탕 가서 때도 밀어주고.
그렇게 세월을 살아내다 보니 어느새 큰 넌 부쩍 자라 학교를 졸업하고, 아빠가 그렇게 원하던 서울 안 대학도 들어가고. 아빠가 오죽 좋았으면, 당시 귀찮다며 안 가겠다는 너 몰래 신입생 OT도 갔겠니.
그리고 군대 입대할 때 죽상인 표정으로 훈련소 앞에서 먹던 눈물의 황태해장국은 어찌나 쓰던지. 널 그리 보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늘이 떠나가라 울던 네 엄마를 위로하느라 애먹었단다.
또 외국 유학을 가겠다고 하는 너에게 보태줄 돈이 없어서 미안했던 그때와 잘 마치고 돌아왔으나 부족한 뒷받침 때문이었는지 무려 20 킬로그램이 빠져서 뼈만 남은 너를 보고 아빠는 마음이 찢어지는 줄 알았단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취업을 하고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고, 결혼도 해서 세상 예쁘고 착한 며느리를 볼 때마다 내 맘이 다 좋았단다.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너는 내게 훌륭한 아들이었고, 나도 너에게 좋은 아빠이고 싶었단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부모는 그런 거란다.
비록 내가 스러져 없어질지언정 사랑하는 자식에겐 부족함 없이, 아픔 없이 사랑만 전해주고 싶은 마음.
그런 너에게 마지막을 상처로 남긴 채 떠나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무겁지만, 이 아비의 선택을 언젠가 이해해줄 때가 오리라 믿는다.
이쯤 되니 한 가지 아쉬운 건 너의 아이가 태어나면 꼭 내 택시에 태워 바닷가 여행을 시켜주고 싶었는데. 그걸 하지 못하고 이리 가는 게 아쉽긴 하구나.
그래도 내가 아니어도 너는 너의 아이에게 최고의 아빠가 될 수 있을 거야.
넌 늘 내 말을 못 믿겠다 했지만, 세상에서 널 제일 잘 아는 내 말이니 이번엔 이 아빠를 믿어보렴. 걱정하지 말고 아이에겐 그저 한 가지만 잘해주면 돼.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주렴.
아이가 크면 징그럽다며 피하겠지만 그래도 계속 하렴. 그 말만큼 아이에 대한 너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을 테니.

누누이 말하지만 너는 내게 최고의 아들이었단다.
먼 훗날 언젠가 너도 너의 생을 다 살아내고,
저세상 어딘가에서 기적처럼 서로를 알아보고 눈앞에서 내가 널 사랑했던 것처럼 행복했던 그때 그 순간 그대로 서로를 꼭 안아줄 수 있길 기다리며 이만 글을 마칠까 한다.

아! 마지막으로 홀로 남을 네 엄마를 잘 부탁한다.
그리고 취업 꼭 하고.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아빠는 항상 그리 믿어왔어. 넌 최고의 아들이니까.
나 자신보다 사랑할 수 있는 존재를 알려준 내 소중한 아들.

늘 고마웠어. 넌 나의 세상이었단다.
진심으로 사랑한다 아빠가.


아마도 우린 특별할 것 없는
뻔한 이별이라고 주제넘게 널 달래다
재미없고 뻔한 말로 한참을 둘러대다
"그동안 고마웠어"
모질게 너와 헤어지던 날
한심하고 철없고 실망스러운 내 모습에
어쩌면 더 빨리 날 잊을 테니까
날 더 미워하게 더 모질게
끝내 널 밀어내 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
나 이렇게 잘살고 있어
눈을 감으면 네가 또 생각나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널 부르고 널 외우고
잊힐까 걱정을 하고
어쩌면 나는 나보다 너를 사랑한 걸까?
몇 번이고 내게 되묻고는 했어
너와 같이 있을 때도
딴생각을 하곤 했어
따로 먹고 따로 자던 게 익숙했던 날
오랜 친구처럼 편하다며
그래서 우린 만났고
그래서 우린 서로 아무것도 못 참았던 거야
다시 우리 예전처럼 평범한 저녁 안부를 묻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바보처럼 다하지 못했던 말을 남겨둔 채
내가 많이 미안해
끝내 하지 못한 말 널 사랑해

참 고마웠어

넌 나의 세상이었어

이제 우리 헤어지면
다시는 볼 수 없을 텐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네게 말할 수 있을까?
돌려 말하는 거 못 하잖아
그래도 기억해줄래?
우리만 따뜻했던 그 봄날을.

ⓢ눈을 감으면 Sung by WSG.




<유중진담 완결. ⓒ빨양c>

그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궁서체임)

시즌2에서 다시 만나요! 언제일지 모른다는 건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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