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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주 주사 이야기 3>

살고 싶어서 킹무원이 되었습니다 Vs. 죽기 싫어서 좋무원을 때려칩니다

by 한태현 Mar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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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간판이 달린 분식집, 팀장, 고 주사, 박 주사, 그리고 주 주사가 들어와 구석 한편에 자리 잡고 앉았다.


"다 김치볶음밥 드실 거죠?"

고 주사의 물음에 이견이 없다는 듯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모님~ 여기 김치볶음밥 넷... 아, 주 주사님 혹시 다른 거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여기는 김치볶음밥이 제일 맛있어요. 오징어 볶음밥도 괜찮고요."

주방을 향해 소리치던 고 주사가 깜빡 잊었다는 듯 주 주사를 향해 물었다.


“아, 저도 김치볶음밥 좋습니다.”

김치볶음밥 넷을 우렁차게 소리친 고 주사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휴대전화를 눈앞에 꺼내 든다. 뭘 보는지 열심이다. 그 옆에 앉은 박 주사도 고 주사와 비슷한 자세로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다. 여전히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콜록콜록! 콜록콜록!”

그때 주 주사의 옆에 앉은 팀장이 감기라도 걸렸는지 연신 기침을 해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던 주 주사는 물이라도 좀 떠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다들 휴대전화만 들여다볼 뿐, 아무도 물을 떠 온다거나 숟가락, 젓가락을 테이블에 세팅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전 회사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막내가 했던 것들이라 주 주사도 깜빡하고 있었다.

주 주사는 좋소기업에서 근무한 7년 중 5년을 막내로 지내야 했다. 회사는 상황이 안 좋다며 신입 공개 모집 채용을 중단했다. 뭐, 말이 좋아 신입 공채지, 가'족'같은 회사 분위기를 강조하는 좋소기업 특성상 공채는 그냥 회장 아는 사람 꽂아 넣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막내 생활을 하는 동안 식사 전 물 떠 오기, 숟가락과 젓가락 세팅하기, 커피 주문하기, 커피 받아다 자리 앞에 놓기 등의 잡무를 해야 했다. 그렇게 하는 게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회사에서 잘리지 않는 게 가장 중요했고, 그러기 위해선 그냥 선임이 자신에게 하라고 알려줬던 걸 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것이 5개월이든 5년이든, 그건 중요치 않았다. 아니, 자신에게는 중요했을지라도, 막내인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두에겐 전혀 중요치 않아 보였다.


공무원이 되어 그때처럼 다시 막내가 되었다는 생각에 울적해질 법도 하건만, 주 주사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회사에서 쫓겨나듯이 나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늘 집 주방에 서서 혼자 점심을 대충 때웠다. 아내는 공부할 때 체력이 중요하다며 아침마다 밥과 반찬을 챙겨줬지만, 왜인지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기가 죄스러웠고, 잘 차려서 앉아 먹는 시간조차 아까워, 서서 5분 만에 후다닥 때우기 일쑤였다. 그때의 생각 때문인지, 이렇게 다시 조직에서 동료들과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 주사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팀장의 기침 소리를 뒤로하고 주 주사가 정수기 앞으로 걸어가 은빛 스테인리스 컵을 꺼내 물을 받는다. 네 개의 물컵을 한 번에 들 수 없어서 일단 세 개만 떠서 손으로 겹쳐 들고 테이블로 돌아갔다. 테이블 위에 낑낑대며 물컵을 내려놓는데, 주 주사의 눈에 발을 꼬고 흔들며 여전히 휴대전화만 쳐다보고 있는 고 주사와 박 주사가 보인다. 요즘 MZ니, 맑눈광이니 하며 어린 직장인들이 개념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었는데, 이런 모습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을 떠다 줘도 고맙다는 인사조차 없는 그들의 모습이 불편하지만, 괜히 의식하면 꼰대 취급당할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 앉는다. 그러고는 테이블 구석에 놓여있는 통에서 숟가락, 젓가락을 꺼내 테이블에 하나씩 세팅하기 시작한다. 티슈 한 장씩을 뽑아 아래 펼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역시 아무도 그런 주 주사를 도와주지 않는다.


"콜록콜록! 어이구, 고마워, 주 주사! 이런 거 안 해도 되는데~"

그런 주 주사의 행동을 지켜보던 팀장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그 눈빛이 꽤나 놀란 눈치다. 조직의 막내니까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놀라는지 주 주사는 의아했다.


‘아, 내가 나이가 많은 막내라서 그런가? 중고 막내라?’

주 주사는 나이, 그런 게 뭐 대수인가 싶었다. 전 직장에서 잘리듯 쫓겨날 때의 그 비참함과 집에서 혼자 서서 밥 먹을 때에 비하면 지금이 훨씬 나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김치볶음밥 네 개 맞으시죠? 나왔습니다."

분식집 사장님이 김치볶음밥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오므라이스처럼 얇은 계란말이로 둘러싸인 김치볶음밥이다. 잘그락거리는 숟가락 소리와 함께 고요한 식사가 시작된다. 여전히 아무런 말 없이 다들 본인들의 휴대전화만 뚫어져라 보며 식사를 이어간다. 슬쩍 보니 고 주사의 식사 속도가 좀 늦는 것 같아 주 주사가 일부러 밥 먹는 속도를 늦춘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 주사는 순식간에 밥을 흡입하듯 다 먹어버렸다. 그러고는 무언가 물어보려는 듯 주 주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아무 말 없이 다시 본인의 휴대전화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가끔 팀장님의 기침 소리가 이어지고, 주 주사는 팀장의 물컵이 비지 않게 작은 물통에 물을 받아와 컵에 따라 드렸다. 팀장은 연신 괜찮다며 주 주사에게 편히 식사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아, 근데, 주 주사님은 취미가 뭐예요?”

식사하던 고 주사가 갑자기 주 주사를 향해 물었다.


“네? 취미요? 음…. 글쎄요…. 사기업 다닐 때는 토익 준비하는 게 취미라고 말하고 다니긴 했는데. 하하! 음…. 독서 정도로 해둘까요? 요즘 읽고 싶은 책이 많아져서요.”

주 주사가 특유의 친근한 웃음으로 답했다.


“독서요? 호호. 아! 그러고 보니, 박 주사. 무슨 문학 공모전 같은 거 준비한다고 하지 않았나? 결과 나왔어?”


고 주사가 박 주사를 향해 대뜸 말을 건넸다. 그녀의 말이 불편하다는 듯 박 주사는 휴대전화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고 주사가 민망해하며 말을 잇는다.


“아~ 박 주사가 지난번에 컴퓨터로 공모전 찾아보다 저한테 딱 걸렸거든요. 뭐였더라? 공무원들만 참가할 수 있는 문학 공모전이랬나? 글 쓰는 게 뭐 대수라고, 꼭 물어보면 저렇게 입을 꼭 다물더라고요. 참~ 뭐 대단한 작가라도 된다고~”


“신경 끄고 식사나 마저 하시죠. 얼른 가서 3팀 식사 교대 해줘야 하는데.”

박 주사가 이번에는 참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답한다. 그의 말을 끝으로 테이블엔 다시 정적만이 남는다. 이후 분위기를 바꿔보려는지 팀장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지만, 고 주사와 박 주사 모두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그 모습에 주 주사는 새삼 깜짝 놀랐다. 사기업 다닐 때는 아무리 싫어도 팀장이 이야기를 꺼내면 무슨 말이라도 하는 게 당연했는데, 이렇게 대놓고 팀장을 무시하는 듯한 그들의 태도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전 좋소기업에서 자신이 잘못 배운 건지, 아니면 요즘 트렌드는 이런 건지 헷갈린다. 이제는 다시 팀의 막내가 된 주 주사는 그런 무거운 분위기에 눈치만 보며 밥만 꾸역꾸역 먹을 뿐이었다.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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