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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Y Jan 31. 2020

[영화]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나는 모르는 사랑이야기

[영화]

2.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나는 모르는 사랑이야기


셰이프 오브 워터 포스터

 어릴적 나는 사랑이 하고 싶었다. 남자아이들과 싸움이 일상이던, 가족오락관을 보면 당연히 여성팀을 응원하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싹트기도 전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많이 듣고 보았기 때문에. 노래를 들어도 사랑노래, 드라마를 봐도 사랑 이야기였다. 사랑이 주제가 아닌 이야기에도 러브라인은 빠지지 않았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렇게 자주 나올까 싶어 사랑을 해보고 싶었다.


 사춘기도 겪기 전의 아이가 사랑을 꿈꾸게 할 만큼 사랑은 흔하다. 그래서 사랑 영화는 진부할 수밖에 없다. 이때까지 너무 많은 설정이 나왔고 너무 많은 스토리가 나왔다. 클리셰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르도 로맨스다. 그래서 사랑 영화는 몰입도가 중요하다. 참신함으로 즐거움을 주기는 어려우니 주인공에 빙의해 간접경험하며 주인공이 하는 사랑을 즐기는 것이다. 로맨스 영화의 경우 시청층과 너무 동떨어진 주인공을 설정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물의 형태>는 낯설었다. 그들의 사랑이 이해가지 않았다. 나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은 여주인공과 이상형과는 동떨어진 남주인공. 감독은 이같은 심리를 예측한 것처럼 영화 내내 관람자를 설득했다. 먼저 그 둘에게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정했다. 혼자임에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여주인공 엘라이자, 한술 더 떠 같은 종족도 없던 남주인공 괴생명체는 사랑에 빠지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심지어 엘라이자는 "그와 있으면 나는 보통 사람 같아. 다른 사람들과 같은 보통 사람. 그도 말을 못하고 나도 못하니 다른 사람 같지 않았어"라는 대사로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직접 말하기도 했다. 사랑한 이유까지 대사로 설명하며 왜 사랑했는지, 개연성을 못느낀 사람에게 해설해주며 합리적인 근거를 만들었다.



 감독은 둘의 사랑을 이해하는 데에 장애물이 될 것은 모두 없앴다. 선한 인물은 더욱 선하게, 악한 인물은 더욱 악하게 묘사했다.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형적인 '착하지만 힘든 약자'였다. 직장동료 젤다는 일반적인 미의 기준에서 동떨어진 흑인 여성이고 가족 처럼 지내는 친구 자일스는 나이 많은 동성애자인 남성이다. 그는 심지어 사진이라는 매체가 등장하며 일거리를 잃으며 빈곤이라는 특징까지 더해졌다. 반면 악역 리차드는 풍채가 좋고 직업이 좋으며 청소부와 여성비하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백인 남성이었다. 약자와 소수를 주인공으로 둔 이 영화는 선과 악을 명확하게 묘사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사랑에 빠진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문득 납득되지 않아서 이 사랑이야기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할 땐 논리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일을 하곤 한다. 10분 동안 만나기 위해 2시간을 들여 가기도 하고 월급이 훌쩍 넘는 선물을 하기도 한다. 효율로 따지자면 마이너스인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한다. 사랑은 100% 감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성으로 해석되지 않는 사건이 너무 많다.


 사랑이야기에는 구체적인 묘사와 극적인 사건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돈을 이용한 재벌 주인공, 인간의 본능인 시각적인 특징을 이용한 외모가 남다른 주인공, 그 외에도 역경에 빠진 상대를 구해주는 주인공, 목숨을 던져 상대를 구해주는 주인공 등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래야 당사자가 아니어도 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으니.


 생각해보면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고 사랑을 몇 번 경험해본 후에도 사랑은 새로웠다. 다른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늘 낯설고 공감이 가지 않았다. 친구의 애인자랑이 듣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미 없는 이야기를 하며 "너무 재미있지?"라고 묻는, 의도가 파악조차 되지 않는 행동을 두고 "멋있지?'라고 묻는, 친구 사이에도 할 수 있는 정성을 두고 "대단하지?"라고 묻는 친구에게 뭐라고 해야할지 늘 난감했다.


 이해가 어려운 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영화의 제목은 물의 형태다. 물은 어디에 담느냐에 따라 형태가 변한다. 사랑도 하나로 정의할 수 없고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 제목의 뜻이 아닐까. 주인공들의 사랑이 뭔지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으며 그냥 이해해야하는 것, 어떻게 보면 억지스러운 상황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바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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