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게 재미있는 건가, 그리고 재밌으면 단가
너무 곱게 자라왔나. 나는 모든 감각의 역치가 낮다. 짠 걸 먹으면 배가 아프고 느끼한 걸 먹으면 체한다. 심지어 단 걸 먹으면 목이 아프다. 주스에도 물을 타 먹을 정도니. 청각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큰 소리가 나면 놀라서 어깨를 움츠린다. 시각은 오죽할까. 누군가 맞는 장면이 나오면 실눈을 뜬다. 가끔은 음소거를 해놓고 휴대폰을 보며 지나가길 기다리기도 한다.
그래서 '자극적'이라는 표현할 때 한 번 더 생각한다. 이런 나라서, 내가 너무 민감해서 자극적인 걸로 느껴지는 게 아닐까. '이 정도면 보통 사람한텐 적당히 재미있는, 흥미로운 감각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펜트하우스'는 보통 사람의 기준도 넘었다. 심지어 흥미로워할 기준도 넘었다. 수위가 높은 것뿐 아니라 설정의 정도도 선을 넘었다. 그런데도 '펜트하우스' 시청률은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선 넘는 사건과 연출이 있어도 그를 뛰어넘는 몰입도가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사건과 서사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 그들 사이의 연결은 '역시 김순옥'이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한다.
하지만 재밌으면 다인가, 아니 이게 정말 재밌는 건가. 자극적인 스킨십과 폭력, 현실적이지 않은 설정은 오히려 몰입감을 떨어트린다. 문제는 이런 자극과 비현실적 설정이 너무 자주 나온다는 것.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둘째치고 흥미 자체를 떨어트리지 않는가.
자극적인 연출은 조미료다. 재미와 영향력, 두 가지 측면에서 자극적인 것들을 조심해야 한다. 극 흐름상, 연출상 꼭 필요할 때 최소한으로 넣어야 한다. 꼭 필요할 때 조금씩 넣어야 전체 극을 더 흥미진진하게 이끌 수 있다. 만약 과도하게 쓴다면 극 본연의 맛은 사라지고 조미료의 뻔한 맛만 남는다. 맛있는 맛이지만 어디서 먹어본 것 같은, 그리고 속이 더부룩한. 즉, 자극적인 장면의 무분별한 연출은 일차적인 본능만 자극하는 뭉툭한 연출이다.
'펜트하우스'를 보며 음소거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도 흐름을 파악해야 해서 "저건 아니지" "뭐야" 등의 혼잣말을 하면서도 극은 보는데 견딜 수조차 없는 장면이 늘어났다.
첫 번째는 수도 없이 나오는 키스. 드라마를 보며 '이상우 울겠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천서진(김소연 분)과 주단태(엄기준 분)의 키스신은 끊이지 않고 나온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평소에는 상류층으로서 본능을 억누르고 살다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본능만 남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불륜하는 사람들 특유의 촌스러운 감성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불륜하는 사람들이 촌스럽다고 생각하는데, 사회 규칙을 따르는 걸 사회성이며, 사회성은 시대 흐름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자기 본능만 따르는 사람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함께하지 못한다. 몰라서 못 하기도 하고 알면서도 부정하느라 안 하기도하고.
어쨌든, 그렇다고 하더라도 키스를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무슨 키스 못 해서 죽은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해도 너무 많이 한다. 본능밖에 남지 않는 이들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스킨십을 택한 건 자극적인 연출을 위해서였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너무 잦아서 행위의 특별함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두 번째는 수위 높은 폭력이다. 이 드라마에는 납치와 감금이 빈번하게 나온다. 가장 먼저 나온 건 주단태의 민설아(조수민 분) 감금. 주단와 천서진은 민설아를 헤라팰리스 지하에 감금한다. 불륜 사실을 아는 민설아를 의자에 묶어 놓은 것. 거기서 그치지 않고 폭력까지 행사한다. 민설아는 피투성이가 되어 주단태에 맞서지만 주단태는 그런 민설아에게 또다시 폭력을 가한다.
미성년자인, 그리고 여성인 민설아에게 성인 남성인 주단태가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꼭 필요했을까. 필요했다고 쳐도 그렇게까지 강하게 연출할 필요가 있었을까. 감독을 붙들고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따지고 싶은 장면이다.
내 눈을 의심한 적 있다. 주단태가 구호동과 피치 대결을 할 때, 야구선수가 던진 공이 용이 되어 구호동(박은석 분)에게 날아온 장면. 심지어 구호동은 그 공을 쳐냈고, 전광판까지 날아가 주단태 얼굴 위에 꽂혔다. 도대체 이 장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주성치식 유머 같기도 하고 발리우드 영화 같기도 한 장면이었다. 이것까진 그래, 그래도 감독의 취향이라고 치자. 그리고 누군가는 좋아한다고 치자. 문제는 자극적인 사건과 비현실적인 연출이 만날 때다.
배로나의 왕따도 마찬가지다. 반 아이들이 배로나를 왕따시키는 걸 보면 우리나라 같지 않다. 그 언젠가 일본 만화책에서 봤던 장면과 유사하다. 드라마는 극대화하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방식이 너무 낯설다. 심지어 배로나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아이들을 피하다가 둘러싸이고 대걸레를 휘두르기까지 한다. 도대체 뭘 나타내고 싶은 장면이었을까.
심지어 배로나(김현수 분) 고문 장면은 어이가 없었다. 하은별(최예빈 분)은 주석경(한지현 분), 주석훈(김영대 분), 유제니(진지희 분), 이민혁에(이태빈 분)게 배로나가 죽은 민설아 흉내를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민설아인 척 메시지가 왔었고, 민설아를 괴롭혀온 이들이 불안해하기 시작한 것. 주석경은 주석훈의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 배로나를 불러냈고, 이들은 배로나를 붙잡았다.
잠시 후 나온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배로나는 의자에 묶여있었고 눈을 자극하는 조명, 큰 기계음이 가득했다. 먼저 고문을 연상케 하는 장면에 충격 받았다. 아니, 괴롭히는 걸 넘어 고문을? 너무 비현실적인 괴롭힘이다.
나중에는 웃음이 나왔다. 저걸 고문이라고 하는 건가? 헐거운 밧줄과 어색한 조명은 뭔가. 눈 감으면 끝 아닌가. 이상한 기계음은 또 뭐고. 괴롭힌다고 괴롭히는 건가 싶어서 웃겼다. (이래야 한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차라리 신체적인 폭력이 더 설득력 있는 고문 방법 아닌가. 엘리트들의 머리 좋고 잔혹한 폭력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머리가 좋아 보이지도, 딱히 잔혹해 보이지도 않았다.
주석경 무리가 민설아를 괴롭히는 장면 역시 당황스러웠다. 이들은 민설아를 수영장에 빠트린 뒤 돈을 던졌다. 아들과 헤어지라는 악역 시어머니가 할 법한 행동을 중학생들에게 하게 했다.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주말에 스트레스 안 받을 때 봐야겠어" '펜트하우스'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말하자 선배가 한 말이다. 처음에는 평일에는 에너지 소모가 많아 볼 힘이 없다고 해석했다. 몰입도가 높아 보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에너지'가 아니라 '스트레스'라고 했다. 드라마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물론 스트레스를 '압박'으로 해석하면 몰입감이랑 연결할 수 있지만 그만큼 카타르시스가 온다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평일에 더 적절하지 않을까.
결국은 드라마가 주는 감정에 평균을 냈을 때 '재미'가 나오지 않는다는 건데, 그건 자극적인 연출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김순옥 작가는 "드라마 작가로서 대단한 가치를 전달하고 싶다거나 온 국민을 눈물바다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요. 그냥 오늘 죽고 싶을 만큼 아무 희망이 없는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거예요. 제 드라마를 기다리는 것 그 자체가 삶의 낙이 된다면 더없는 보람이죠. 위대하고 훌륭한 좋은 작품을 쓰는 분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드라마 집필 철학을 전했다.
이게 재미있는 건가. 그래, 시청률이 보여주듯 재미있다고 치자. 재미있으면 다인가? 드라마는 대중예술이다. 누구나 채널을 돌리다 볼 수 있다. 심지어 지상파다. 보는 이들의 마음을 힘들게 하며, 심지어 수많은 폭력 장면은 트라우마까지 건드린다. 과연 재미라는 명목 아래 이 모든 것들은 허용될 수 있는가.
앞서 말했듯 김순옥 작가의 사건 흐름과 캐릭터 구성 만으로도 충분히 몰입감을 높일 수 있다. 굳이 +a가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몰입감 자체만으로 위대하고 좋은 작품이다. 굳이 자극적인 장면과 비현실적 연출이 없더라도 충분히 김순옥 작가의 철학을 지켜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