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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Y Jun 16. 2021

[드라마]멀리서 보면 푸른 봄

그래, 지상파용은 아니지. 애매할 수밖에.

[드라마]

20. 멀리서 보면 푸른 봄

-그래, 지상파용아니지. 애매할 수밖에.


올해 초, MBC에서 드라마 모니터링단을 뽑은 적 있다. 이력서 항목에는 '웹툰 중 드라마화 하기 좋은 작품은?'이 있었다. 콕 집어서 웹툰이라니. 양영순, 조석의 웹툰을 봐왔던 나에게는 신선한 항목이었다. 웹툰의 시장과 영향력, 작품성이 모두 커졌음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렇지만 의문이 생겼다. 웹툰, 웹소설의 장점은 '마이너'다. 메이저에서는 다루기 힘든 소재나 심리를 다루는 것. 소수의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하고 하고, 소수의 공감을 사기도 하면서 인기를 끈다. 대중의 인기를 얻어야 하는 TV 드라마와는 다르다.


웹툰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은 다음에서 연재되며 시즌3까지 이어갈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왜 이제야 드라마로 제작 되는지 이상할 정도다. 그리고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이 지난 15일 첫 화를 방영했다. 배우 라인업도 좋았다. 인기 아이돌 출신 박지훈, 라이징스타 배인혁이 주연이다. (여자 주인공 강민아는 인지도가 높은 편이 아니었으나 이 작품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냥 넘어갔다. 드라마를 본 후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인기 많은 웹툰이 드라마화 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 사실이 이상했다.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의 인기 요인을 지상파, 그것도 공영방송인 KBS에서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은 화제도, 시청률도 잡지 못했다. 드라마를 본 후에 왜 그랬는지 명확하게 와닿았다.


웹툰 '멀리서 보면 푸른 봄' 인기 요인: 아슬아슬한 감정선과 BL 코드

다음 웹툰 '멀리서 보면 푸른 봄'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은 주인공 여준이 가족들에게 학대 당하며 생긴 마음의 병을 숨기고 아등바등 살아가다 남수현을 만나며 조금씩 치유해가는 내용이다. 여준은 완벽한 형 여준완과 비교 당하며 살아왔고, 여준 부모는 그런 여준을 쓰레기 취급한다. 설상가상 여준완은 사이코패스로, 여준을 보듬어주지도 못한다.


설명만 보면 힐링물 같지만 힐링물은 아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것을 과도하게 베풀고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 그러나 가면은 본체가 될 수 없다. 여준은 때때로 자신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억압된 자신의 삶에 괴로워한다. 그런 여준의 감정선은 보는 이들의 긴장을 유발한다.


여준과 남수현의 BL코드도 명확하다. 작가가 대놓고 'BL 작품이다'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노렸다. 포스터에도 여자주인공은 없지 않은가. (BL에 흥미가 없고 노린 게 싫어서 나는 하차했지만 많은 이들의 흥미를 끈 건 분명하다) 어리고 작고 예쁘고 능글맞은 여준과 크고 잘생기고 냉정한 남수현의 케미는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남녀로 바꿔서 생각해봐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설정이다.


작품 전체적으로 따뜻하다, 설렌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BL코드도 로맨틱코미디 보다는 격정멜로에 가까우니.



드라마 '멀리서 보면 푸른 봄' 의도: 남녀 로맨스

드라마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은 남녀 로맨스에 초점을 맞췄다. 원작의 아슬아슬한 감정선과 BL코드가 간간히 등장하지만 너무 미미해서 웹툰을 본 사람이 아니라면 인지하지 못할 정도다.


KBS 2TV '멀리서 보면 푸른 봄' 2화

2화는 시작부터 여준(박지훈 분)과 김소빈(강민아 분)의 관계를 부각한다. 김소빈이 여준에게 "왜 아르바이트 자리를 준다고 해놓고 주지 않냐"라고 따지자 여준은 "보채지 말고 기다려요"라고 능글맞게 답한다. 여준은 김소빈과 함께 우산을 쓰고 가며 김소빈에게 우산을 기울여준다. 김소빈이 "어깨 다 젖겠다"라고 하자 여준은 "영화 '봄날은 간다'에 나오는 거예요"라며 또 끼를 부린다.


이후 여준은 김소빈에게 "저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라고 하자 김소빈은 "인기 많고 알다가도 모르겠고 가끔 다른 사람 같기도 하고"라고 한다. 다음 장면은 김소빈이 여준이 했던 행동들을 떠올리는 장면이다. 여준에 대해 너무 진지하게 생각한 자신이 민망해진 김소빈은 "다양한 매력이 있다고"라고 얼버무린다. 여준은 "선배도요"라고 능글맞게 웃는다. 김소빈이 "아니야. 나는 한 가지 밖에 없어"라고 둘러대자 여준은 "그 치명적인 한 가지가 뭔데요"라며 웃는다.


KBS 2TV '멀리서 보면 푸른 봄' 2화

클라이막스는 역시 마지막이다. 여준은 가족들에게 학대당한 후 남수현에게 술을 마셔주지 않으면 죽겠다고 협박한다. 여준이 찾은 곳은 호숫가. 가로등과 빛을 반사하는 호수, 꽃나무가 아름다운 곳이다. 여준의 심리 상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다.


그때 김소빈이 등장한다. 김소빈은 떨어지는 여준을 받아주다 안게 된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그리고 여준이 말한다. "나 좀 좋아해 줄래요?"라고.


KBS 2TV '멀리서 보면 푸른 봄' 2화

여준의 심리 상태는 이해할 수 있다. 애착관계 형성이 되지 않은 여준에겐 자신을 좋아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가족들에게 학대 당하고 왔으니 얼마나 더 절박할까. 문제는 연출법이다. 드라마는 여준과 김소빈 투샷을 마치 연인처럼 내보낸다. 여준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 김소빈에게 접근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마지막 장면도 그렇다. 여준의 심리적 한계 상황이 아닌 달달한 로맨스를 부각한다. 원작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애매하다, 애매해

그렇다면 원작과 드라마가 같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아니다. 당연히 달라질 수 있다. 남녀 로맨스를 다루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녀 로맨스를 다루고 싶었다면 여준-남수현의 관계는 빼야 하지 않을까.


20대 청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 모두가 이십대를 ‘푸른 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지금 청춘인 그들도 과연 그렇게 느낄까?


드라마 '멀리서 보면 푸른 봄' 기획의도는 위와 같다. 기획의도처럼 다른 인물들의 아픔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도 마찬가지로 딱히 부각되지 않는다. 장면은 있지만 강조는 안 하는 느낌이다.


원작 흐름과 다르게 연출하고 싶었다면 원작이 심어 놓은 장치들도 바꿨어야 한다. 심지어 여준과 김소빈의 로맨스를 강하게 강조한 것 같지도 않다. 흔히 어디에나 있는 로맨스다. 누구나 좋아하는 치트키, 로맨스를 써먹으려다가 실패한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이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수순이다. 지상파에서, 그것도 KBS에서 BL을 어떻게 다루겠는가. 대중성은커녕 국민청원이나 올라오지 않으면 다행이다. BL을 모두 표현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를 다루지 못했다면 여준의 심리에 더 집중했다면 어떨까. 좋은 웹툰이라 더 아쉬웠던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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