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봤던 영상물과 오늘 설교의 교차점_25.5.18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두 교황>
<귀궁>
<더 보이프렌드>
1.
요즘 빠져서 보았던 영상물들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짧게 얘기하자면,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한 아이가 그곳에서 후계자가 될 수도 있는 기로에 선다. 그런데 본인은 정작 본인의 세계를 택한다. 문제는 본인의 세계가 만족스러울까. 아니. 이 주인공은 죽은 엄마를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그 정도로 상실의 아픔이 있는 인물이다. 환상의 세계에는 새엄마, 자신을 지키는 할머니가 함께 들어왔는데, 신기하게 후계의 자리를 기꺼이 거부하고 새엄마와 그 할머니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다.
나는 이 지점이 놀라웠다.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는 게. 내가 원한다면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그 제의를 쉽게 거부할 수 있는 게 놀랍다. 특히 그 아이는 사실세계가 굉장히 무거울 수도 있는데 말이다.
2.
내가 신앙심을 가지고 있기에 궁금해서 보았던 영화이다. 내가 가톨릭은 아니지만 형식을 중요시 여기시는 종교인 것은 알고 있다. 종교개혁을 통해 개신교가 나왔으니 나도 그만큼이나 신앙은 우리의 삶과 연결되지 않으면 고인 물과 같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두 교황> 볼만하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명대사들이 줄줄 나온다. 우리 모두는 정신적 자만심에 시달린다. 그러니 용서가 필요하다. 나 자신부터.(이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결이 다른 두 교황은 자신의 삶과 자신의 신앙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 나눈다. 심지어 각자의 위치에서의 치명적인 실수마저도 나눈다. 한 가지 이 영화를 보며 확실히 안 건 <내 생각이 맞았다>는 사실이다. <신앙은 실패를 통해 깊어지고, 배움도 마찬가지다.> 나는 실패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실패로 뻔뻔해질 건 아니지만, 당시에 보이지 않던 그 막막함과 나의 무지함, 들리지 않는 주변의 말들이 지나고 보면... 나의 과오가 보이고 들린다. 이건 확실하다. 두 교황의 삶의 스토리와 그들의 대화, 같은 신앙인이지만, 하나님을 접근하고 대하고 신앙을 삶과 연결하는 방식을 눈 여겨볼 만하다. 우리는 사실 겉모습만 같을 뿐, 모두가 다를 수 있다. 사건을 대하는 면면들이 얼마나 사람인가. 신이 아니어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 같았다.
3.
요즘 신나게 보고 있는 드라마. 귀신도 사람이다. 얼마나 재밌는지 모른다. (내가 이런 거 본다고 하면 교회에서 난리 날까) 저승에 가서도 한이 서린다. 이 땅의 삶도 고되고 그 이후에도 억울함이 풀리지 않는다. 난 귀신이 이해가 되는데. 어쩌지. 그게 문제가 될까. 그런 것보다 나는 이 드라마가 귀신드라마가 아니라 어쩐지 사람에 관해 쓴 드라마 같았다. 인물 표현을 정말 잘해놓았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지만, 인물들의 삶이 납득이 된다. 이무기도 나오고, 무당도 나오고, 왕도 나오고, 귀신도 나오고, 팔척귀도 나오고.. 온갖 것들이 다 나오는데.. 요즘 트렌드인가 싶으면서도 드는 생각은 결국 다 사람이구나 싶다. 납득이 되는 인물들의 삶은 나를 또 끌어당겼다.
4.
마지막이 결정타. 일본에서 리얼리티 연애프로그램으로 <더 보이프렌드>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내가 알기로는 일본이라는 나라는 굉장히 보수적이다. 그렇지만 내가 가본 도쿄는 세계 3대 도시라고 할 만큼 대단한 도시이긴 했다. 없는 게 없는 도시. 모든 게 가능한 도시인 일본의 수도이다. 그런데 그런 나라인 일본은 정통성도 강해서 얼마나 보수적인가. 음지의 문화가 싹트기 좋은 환경이기도 하다. 그냥 내 느낌이 그랬다. 일본이 기독교가 소수인 이유, 기독교를 싫어하는 이유도 아마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너무 궁금하다. 바로 봤고, 내 생각은 잘 봤다. 결국 게이도 사람이다. 오히려 힐링된다.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그냥 우리네 사는 모습이랑 별반 다름없는 사람 얘기이다. <두 교황>에 나오는 마지막 교황이 이 게이들을 만났다면, 아마 즐겁게 대화하고 먹고 마시며 원하는 게이들에게 세례를 주었을 것이다.
5.
오늘 설교. 오바댜 이야기였다. 아합(겁나 나쁜 왕_ 성경적 관점)의 궁의 모든 걸 책임지며 아합의 시키는 모든 것들을 해야 했던 오바댜. 그런데 당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몰래 살려주었던 사람도 오바댜이다. 오바댜는 아합의 궁의 살림도 하면서, 하나님의 선지자들도 살려가며 쉽지 않은 긴장의 날들을 살아내야 했다. 목사님 설교의 요점은 이것이다. 성도의 삶이란 이런 긴장 속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어둠과 결탁하지 않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모든 딜레마 속에서 그 부르심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교황,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귀궁, 더 보이프렌드, 목사님 설교.
일련의 보고 들은 것들이 요즘 내가 고민하는 것들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딜레마에 빠질 때마다 괴로웠다. 우리는 성숙하고 싶지만 실패하고, 한걸음도 나아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너무 많다. 괜찮은 날보다 괜찮지 않은 날이 수없이 많았고, 안타깝게도 괜찮지 않은 그 모습을 또 반복해서 나 자신에게 실망할 때가 너무 많다.
아마 내가 가장 두려운 건 <지금과 똑같은 모습으로 내일의 내가 될까 봐>일 것이다. 이 말은 한편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이겠지. 결국 나 자신을 수용하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얼마나 괴로운가. 나는 나일수밖에 없는데.. 두 교황,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귀궁, 더 보이프렌드는 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 같다. 우리의 괴로움은 사실 자기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과 한계에 갇혀서>
오바댜의 삶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왜 사무칠까? 기독교는 생각보다 환영받지 못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생각보다 정신적으로 시달린다. 우울증, 공황이 괜히 오겠나. 한국에서 기독교인으로 살기는 과거 대대로 힘들다. 지금은 더 힘들다. 그런데 나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은 <나라는 사람의 한계에 말 그대로 갇힌다>
그런데 나는 위의 모든 것들을 보고 들으며 느낀 건 한 가지 <악연도 인연이고, 나는 한계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한계가 없다>이다. 생각의 결론은, <더 보이프렌드>의 출연진을 오바댜 시대의 하나님이 그들을 만났다면 기꺼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게이도 분명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리고 귀신을 내쫓는 하나님이시지만, 귀신을 만나면 이름을 물으셨다. 그런 하나님을 나는 믿는다. 게다가 종교지도자들의 고뇌는 오바댜 때나 지금이나 같았구나를 보았다.
우리는 너무 빠르고 많은 것을 소유하고 소비하는 시대를 살고, 너무 많은 것을 아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사람은 배제되고 외면당하고 배척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으로 느끼는 요즘이다.
악하던 선하던 사람이다. 결국 사람일 뿐이다. 두려움이나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다. 그런데 나는 날마다 이 사실을 망각해서 두려워하고 떨었다. 이 영상물들과 오바댜는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위로를 안겨준 것이다. 결국 사람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고. 우리가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무지로 인해 불안한 관계로 시작하지만 그것이 삶이라고.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관계를 통해 우리는 배운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실패를 통해 배운다>라는 걸 어찌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