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 없는 짧은 소설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이었다. 나는 제대로 움직이기조차 힘들어 파닥거릴 뿐인 다리들을 부여잡고, 떨어져나갈 듯이 욱신거리는 눈알 속 초점을 당겨 낯선 풍경들과 직면한다. 군데군데 불규칙한 균열들이 아지랑이처럼 울렁거리는 새하얀 벽, 내 키의 수백 배는 될 듯이 높다란 천장, 본디 살아있었을 낯선 짐승들의 냄새들을 풍겨대는 가죽의 형체들, 바닥 여기저기 널려있는, 표정 없이 굳어 있는 짐승의 형태들. 숨소리를 죽이고 우스꽝스러운 색깔로 몸을 감춘 채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형태로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들, 쇠들, 내가 알 리 없는 어떤 물질들. 채 닦아내지 못한 먼지 아래서 윙윙대는 정체 모를 소음들, 내 눈을 멀게 할 듯 번쩍이는 빨갛고, 파란 불빛들.
불확실한 공포만이 지배하는 이 상황에서 이것만은 확신한다. 내가 이곳으로 향한 것이 아니다. 이곳이, 나를 끌어당긴 것이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이곳에서, 나는 급기야 마비되려는 몸과 머리를 부여잡고 이곳에 도달하기까지의 행적을 되짚어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굶주림이다. 그것만이 내 숙명인 것처럼, 나는 사고란 것을 할 수 있을 때부터 단 하나의 관념만을 떠올렸다. 배고프다. 목이 마르다. 뭐라도 입에 욱여놓고 씹어 삼키고 싶다. 팔들을 크게 뻗어 내 몸을 꽉 감싸 안고 제자리를 빙빙 돌며 나를 먹여줄 누군가를 기다리다, 정말 죽겠다 싶을 때쯤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나는 먹을 것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모른다. 다만 눈에 보이는 것들에 닥치는 대로 혀를 가져다 댔다.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밀 조각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뱃속에 넣은 음식이었다. 흙먼지로 잔뜩 젖어있던 그 비루한 곡류의 맛이, 내게 유일한 생명줄이며 삶의 목적이 되기까지는 많은 사고가 필요치 않았다. 맛이라는 것을 인지한 내 신체기관은 폭발하듯 더욱 많은 맛을 갈구해댔다. 나는 목적지조차 알지 못한 채 내 몸이 닿는 대로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음식이란 것이 보이는 족족 입을 댔다. 주인이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음식의 주인이 내게 달려들면 입을 떼고 줄행랑쳤다. 나는 음식을 정당하게 구하는 데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다행이도 뒤꽁무니 빼는 데에는 재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늘에서 물방울들이 세차게 떨어지던 광경들을 떠올린다. 나와 함께 음식을 탈취하던 녀석을 단번에 산산조각 내 버리던 거대한 물 덩어리들. 나는 바짝 얼어버린 채, 파들대며 생명의 숨 끝자락이나마 붙잡고자 안간힘 쓰던 그 가련한 모습을 지켜보다, 어느 쇳덩어리 아래 몸을 숨기고 온 몸을 떨어대며 누군지도 모를 이에게 간절히 빌어댔다. 빌고 또 빌다가 의식이 희미해져갈 때쯤 마치 은총처럼 비추어오는 햇살에 고개를 들고, 그제야 고개를 조아리며 힘이 빠져버린 몸을 바닥에 뉘였다.
한바탕의 위협을 겪은 후 다시 나를 엄습한 관념은 단 하나, 배가 몹시도 고프다는 것이었다. 또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어떤 것, 이른바, 안락함을 향한 그리움. 나는 다시 정처 없이 헤매다가, 잘다란 물기가 느껴지는 공기들 사이로 풍기는 안온한 냄새에 이끌려 허겁지겁 이곳에 다다른 것이다.
나는 거대한 가죽 뒤에 잠시 몸을 숨기고 숨을 고른다. 몸을 최대한 바닥에 딱 붙이고, 눈은 할 수 있는 한 위로 치켜뜨며 주변을 살핀다. 진정하자. 아직까지는 나를 위협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대로 조용히, 다리들을 움직여 빠져 나가자. 나는 숨을 죽이고, 그 어떤 존재도 나를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공기를 유영하는 물기를 찾아, 다시 싱그러운 미지의 세상 속으로 나가리라고.
내 생애 단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던 달콤한 냄새가 내 후각을 자극한다. 나는 뇌 속 모든 감각들이 오직 단 하나, 그 냄새만을 좇는 것을 느낀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자 했던 내 의지와 달리, 내 몸은 저절로 그 냄새를 쫓아 움직인다. 그러다가-.
무언가가 내 몸을 강하게 후려쳤다. 나는 가까스로 피했다. 공기가 거센 파열을 일으키며 내 몸을 갈라댄다. 몸이 흔들리고 머리는 빙빙 돌아댄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거대하고 묵직한 무언가가 나를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나는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숨을 곳도 없다. 정신없이 피하다가 나는 겨우 커다란 쇳덩이 뒤로 몸을 숨긴다. 숨이 너무 가쁘다. 이빨 아래까지 차오른 숨들을 모조리 토해내고 싶다. 그러나 숨 하나 내쉬기도 너무 무섭다.
나는 뒷걸음질 치다 무언가와 부딪히고 만다. 물컹하고, 차갑다. 나와 비슷한 크기의 무언가. 뒤를 돌아보기 두렵다. 그러나 돌아보지 않을 방도도 없다. 나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퍽퍽 때리며 움직였다. 나와 너무도 닮은 존재가 있다. 다리가 뽑히고, 으깨진 배 사이로 드러난 장기들이 아무렇게나 헤집어진 채. 눈조차 감지 못한 모습으로.
나는 절로 새어나온 비명을 삼킨다. 알지 못하는 이의 부패된 얼굴 위로 내 얼굴이 덮인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들을 일으켜 세운다. 누군가를 간절히 부르고 싶다. 나도 알지 못하는 새 나를 끌어당겨버린 이 지옥으로부터 누군가가 나를 구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엄마, 엄마….
나는 길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얼굴도 모르는 그 이름을 애타게 중얼거린다. 그런 존재가 내게도 있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이 순간, 원래 그랬듯이 내 앞에 나타나 나를 이끌고 함께 나가주기를 바랄 뿐이다.
무언가 내 몸을 짓눌렀다. 바스락거리는 거친 질감의 무언가가 나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더욱 세게 억죄어온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빠져나갈 수 없음을 안다. 온 다리들이, 몸통이 으깨어지는 고통을 생생히 느끼며 마지막 남은 의식에 매달린다.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긴지, 짧은지조차 알 수 없을 이 생애 동안 나는 왜 굶주림으로 고통 받으며 단 한 번의 안식이나 휴식조차 누리지 못하다가 이처럼 비참하게 죽어가야 하는가.
내 온몸이 찌부러지고 시야가 암전될 때까지도 결국,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나의 숨을 앗아간 무언가의 소리만을 귀에 담은 채, 나는 그렇게….
아, 겨우 잡았네.
내가 벌레 들어온다고 문 열지 말라고 했잖아.
이게 웬 난리……….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