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구름 May 24. 2024

#11. 어린 손님

    내가 일하던 마트에서는 어린이날을 맞아 중학생 미만 아이들에게 간식거리를 무료로 나눠줬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아이들의 반응은 참 다양했다. 얼떨떨하게 받아가거나 "고맙습니다."하고 수줍게 인사하거나 "와!" 탄성을 내지르며 폴짝폴짝 뛰었다. 어떤 아이든지 제손에 들린 간식 꾸러미를 믿기지 않는다는 듯 들여다보는 건 비슷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린이는 참 좋은 시기라는 생긱이 들었다. 과자만 있어도 저렇게 한가득 행복해질 수 있다니.


    원래 아이를 좋아하는 성향이라 혼자 마트에 온 아이들을 보면 반가워서 더 친절하게 대했다. 나이가 어린 것에서 생긴 미숙함과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투명함이 내 눈에는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이 가장 잘 나타나는 순간이 있으니 바로 나에게 존댓말을 들었을 때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어른에게 반말을 듣기 마련이다. 실제로 같이 일하는 분들 대개가 나보다 20살 이상 많은 이모들이라 아이를 보면 자연스럽게 "심부름 왔어?", "뭐 찾아줄까?" 하고 살갑게 말을 건넨다. 하지만 나는 자식이 없는 미혼이라 그런지 어린이를 보면 선뜻 반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이가 좀 어릴 뿐이지 처음 보는 타인으로 인식한달까? 그래서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낯설어하면서 살짝 긴장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동생이나 친구끼리 와서 왁자지껄 떠들다가도 내가 "영수증 드릴까요?", "포인트 번호 있으세요?" 물어보면 세상 얌전한 태도로 대답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볼을 꼬집어주고 싶은 걸 꾹 참고 부드러운 미소만 지었다.


    어른에게 장보기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나만 해도 어릴 때 심부름으로 혼자 마트에 가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찾는 물건이 없을 때의 당혹감, 계산대 직원에게 물어보기 쑥스러워 수없이 망설이던 발걸음, 계산을 무사히 마치고 나오던 개운함, 집에 와서 칭찬을 듣고 간질거리던 기분까지 삼십 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장보는 게 뭐라고 그렇게 떨었나 싶다. 어쨌든 지금 익숙하게 해내는 일이 사실은 어린 나의 용기가 한 줌씩 모여 만들어낸 결과라는 걸 때때로 되새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 번은 내성적인 남자아이가 계산대 앞에 와서 쭈뼛거렸다. 뭐가 필요한지 물었더니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돈까스 우동 어딨어요?"하고 물었다.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확인하려고 되물었더니 이번엔 아이가 거의 입을 벌리지 않고 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쩔 수 없이 일단 따라오라고 하고 라면 진열대로 가서 우동 제품을 하나씩 보여줬다. "이거 맞아요?"라고 물어보니 아이는 조용히 고개만 내저었다.

'돈까스 우동은 없는데……. 뭘 찾는 걸까?'


    나는 혼자서 '돈까스'를 중얼거리다가 '가쓰오 우동'을 떠올렸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냉장식품이 진열된 개방형 냉장고로 향했다. 내가 가쓰오 우동을 가리키며 "혹시 이거예요?"하고 묻자 아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끝내 못 찾고 아이가 빈손으로 가면 어쩌나 걱정했던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똘똘하고 야무진 아이보다 어른과 눈도 제대로 못 맞추는 아이가 심부름을 제대로 해가는 모습이 더 대견해 보이는 건 지나친 마음일까? 어쨌든 아이들이 목적을 달성하고 매장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 집에 가서 부모님께 칭찬받는 모습까지 떠올라 덩달아 행복해진다.


    어린이는 노력하지 않아도 어른에게 행복을 준다. 그것도 우리가 다 아는 방법으로. 어쩌면 알면서 모른 척 하고 있는 방법으로. 예를 들면 내가 과자를 재진열하다가 잘못 건드려 서너 개가 바닥에 떨어졌는데 옆에 지나가던 대여섯 살 아이가 얼른 와서 주워주는 게 아닌가. 어른이라면 '저러면 과자가 다 부서지는 거 아니야?' 라거나 '어차피 직원이 해야 할 일인데.'라고 생각하고 지나쳤을 텐데 아이는 이런저런 계산 없이 행동부터 튀어나온 것이다. 내가 "고마워요."라고 인사하자 아이는 쑥쓰러운 듯 얼른 아빠 옆으로 달려갔다. 아이 아버지는 기특한 미소를 머금고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이런 걸 보면 나이 어린 사람은 부족한 어른이 아니라 완성된 어린이라고 생각한다.


    미취학 아동은 초등학생과 또 다르게 사랑스럽다. 영유아들은 부모가 안고 오거나 손을 잡고 들어오는데 내가 손을 흔들어 인사하면 대부분 입을 살짝 벌린 채 빤히 눈을 맞춘다. 상대가 누군지 파악하려는 그 순수한 응시가 얼마나 귀여운지 그 반응을 보려고 내성적인 내가 자꾸 말을 걸게 된다. 세 살 정도로 보이던 어떤 아이는 엄마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내가 손을 흔드는 걸 보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천천히 주저앉아 휴대전화를 바닥에 놓았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서 날 향해 손바닥을 쫙 펴고 가로흔들었다. 그 어린 손에는 휴대전화를 잡고 손목을 움직이는 게 너무 버거웠던 모양이다. 아이는 인사를 마치고 다시 쭈그려 앉아 휴대전화를 집었다. 정말 귀여웠던 건 그 이후로도 내가 인사할 때마다 잠시 멈춰서서 휴대전화를 꼭 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흔들었단 사실이다.


    초고령화 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걸 꼭 통계 수치로 확인할 필요가 없는 점이, 마트 계산대에 서 있으면 주름살 넉넉한 나이 드신 분들이 손님 중 거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렇다 보니 그 속에서 가끔씩 보이는 어린 손님들이 더욱 반갑다. 자신들이 얼마나 빛나는 존재인지 모르고 초코맛을 먹을지 딸기맛을 먹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아이들의 눈빛만 봐도, 퇴근 시간만 손꼽아 기다리던 마음이 사라지고 새로운 활력이 생긴다. 어린 손님들의 눈에 내가 편하게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는 친근한 계산원으로 비치기 위해 오늘도 힘을 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10. 쿵짝 손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