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버린 모습 적응단계
“오리의 물갈퀴는 헤엄을 잘 치기 위해 진화한 것입니다.
사람도 진화해서 꼬리가 없어졌죠.”
누구나 환경에 적응해야 살아남는다. 외면해봐야 나만 손해..
이제부터는 민머리에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 추운 겨울을 나고,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올 때까지..
그런데, 가발이 영 불편하고 어색하다.
가발의 쪼이는 부분이 불편하고, 한 번 쓰려면 어색함을 감추려고 이리저리 단장하고..
참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이다.
나의 항암 사실을 모르는 곳을 갈 때는 어쩔 수 없이 가발을 쓰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거의 모자를 쓴다.
가발에 비해 모자는 쓰기만 하면 되니 그리 간편할 수 없다.
하지만 스타일은 영 안 난다. 평소 입던 옷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잘 차려 입고는 털모자나 비니를 쓰면 말짱 꽝!!
아무리 꽃 장식이 돼 있고, 화려한 모자라고 해도 목까지 덮어야 하는 비니로는 항암의 흔적을 감출 수 없고,
별로다.
꾸며도, 꾸며도 어색하다면 차라리 꾸미지 않는 것이 답일 수도...
츄리닝을 입었다.
마침 걸그룹의 패션 츄리닝이 유행이다. 이거다..
츄리닝에 비니를 쓰니 그나마 어울린다. 이제는 모자를 쓸 때는 언제나 츄리닝이다.
동네를 갈 때는 물론이고, 병원을 갈 때, 심지어 버스를 타고 멀리서 친구를 만날 때도..
츄리닝은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겨울엔 패딩까지 입으면 패션 완성!!
편하게 입을 수 있고, 간편하게 입을 수 있고, 스타일리시까지 한 츄리닝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항암이 끝나고 머리카락이 다 난 뒤에도 츄리닝은 나의 최애 옷이 되었고, 나는 츄리닝 예찬자가 되었다.
역시 환경에 적응하면 마음이 편하다. 이 쪽이 아니면 다른 쪽을 가면 된다.
이 쪽의 막다른 골목이 진짜 끝은 아닌 걸 알게 된다. 그곳에서 살짝 눈을 돌려보면 또 다른 길이 나있다.
나는 항암 환경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 아니.. 더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