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
어느 순간부터 브런치에 올리는 글이 자기 성찰과 철학에 관한 침 냄새나는 독백이라는 걸 알아챘다. 영화 비평을 핑계로 하고 싶은 말을 뱉어내는 것이다. 비록 하찮은 말이라도 어쨌든 누군가는 읽는다. 돌아오는 조회수, 댓글 등은 원동력이 되어 나 자신을 "예술가로 살고 있다"는 의식에 갇히게 한다. 그러나 내가 예술가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조금 부끄러워진다. 겉으로 볼 때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자기 학대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예술가다. 그러나 학대를 통한 숭고함의 창출을 논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윤동주에게 쉽게 쓰인 시가 그랬듯이, 예술가는 일평생 부끄러움과 싸워야 한다. 부끄러운 예술가가 되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이것은 단지 예술가의 인생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얼마만큼 부끄러웠는가, 우리는 얼마큼 생생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또 다른 중얼거림이 될 이 글을 통해 이 주제는 예술과 관련 없는 사람일지라도 포괄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할 것이다. 변화의 과정을 함께 지켜보자.
'전시 중 전 애인과의 재회' 장면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이 영화는 자신의 몸을 도구로 사용하는 이 행위 예술가의 새로운 전시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아티스트가 여기 있다(Artist is Present)'라는 제목으로 그는 또다시 위험하고 대담한 도전을 감행한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마리나의 앞에 그의 오래전 연인 울라이가 앉아 있다. 그들은 12년 동안 청춘을 바쳐 사랑한 연인이자 예술가 동료였다. 눈으로 대화를 나눈 끝에 마리나는 눈물을 흘리며 울라이의 손을 잡는다. 실로 감동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억하는 장면 뒤에는 사실 3개월의 대장정이 남아있었다. 이때 마리나는 주 6일, 총 3개월간 같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앉아 관람객들과 눈을 맞추는 특별전시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화장실도 가지 못하기 때문에 의자에는 따로 마련된 변소가 있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도전이다. 마리나는 이전에도 충격적인 도전들을 감행해왔다. 자신의 배를 칼로 그어 채찍으로 때리는 퍼포먼스, 울라이와 연속해서 서로의 뺨을 때리는 퍼포먼스, 몸 주위에 불을 피워 이산화탄소 부족 현상을 만드는 퍼포먼스 등등.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그야말로 기행들이다. 때때로 그를 향한 비난이 몰아치기도 하지만, 그의 의지만큼 위상 역시 대단하다. 이번 전시 '아티스트가 여기 있다(Artist is Present)'는 말하자면, '예술가는 현재이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예술가는 존재한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마리나는 공연 내내 그곳에 존재하고, 관람객들은 오고 가며, 서로 만나 눈을 맞추고 이별한다. 마리나의 목표는 눈 맞춤을 통해 상대방과 같은 의식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술가가 여기 있는 게 아니라, 그의 눈에 비친 당신이 여기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이 진지하다고 해서 영화나 예술가마저 재미없다고 치부해버리면 곤란하다. 마리나는 그가 가진 카리스마와는 별개로 재밌는 사람이다. 평소엔 말이 많은 편이고, 농담도 곧잘 하며, 동료 예술가들을 북돋을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다. 공연 전 준비 과정에서 마리나의 소식을 들은 한 마술사가 사무실로 찾아온다. 마술사는 이미 명성이 대단한 마리나와 합동 공연을 벌이고 싶다며 입을 턴다. 예술가로서 격분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마리나는 아이디어를 덥석 받아 물고 프로듀서에게 이게 가능한지 물으러 간다. (당연히 거하게 퇴짜 맞는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삶이 대부분 육체적이거나 행정적인 일을 맡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위대한 예술가라는 사실을 빼면 그의 인생은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예술가로 만드는 걸까. 왜 똑같이 사는데 그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발상을 하고, 실행하며, 점점 숭고해지는 것일까? 다시 그의 공연 장면이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상대가 나타나자 눈을 뜬다. 마치 무엇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가만히 존재하기 시작한다. 기다리는 것, 발견될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 이것이 마리나가 추구하는 예술 형태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최근에 본 책 <눈표범>을 떠올렸다. <눈표범>은 사진가, 작가, 철학가 등으로 구성된 일행이 눈표범을 관찰하려고 산에 올랐던 여정을 담고 있는 책이다. 눈표범은 아주 조심스러운 동물이라, 아무리 기다린들 쉽게 제 모습을 내어주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작가인 화자는 기다리는 동안 동료에게 사도신경을 요약해준다.
"우리 앞에 있는 것을 숭배하라. 아무것도 기다리지 마라. 많이 기억하라. 소망을 경계하라. 그것은 폐허 위에 피어오르는 연기 같은 것이다. 주어진 것들을 누려라. 상징들을 찾고, 신앙보다 훨씬 견고한 시를 믿어라. 세상에 만족하라. 세상이 존속할 수 있도록 투쟁하라."
그들은 눈표범을 발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것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 소망은 좌절되기 쉬움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마리나가 수많은 사람들과 눈 맞춤을 감행하는 이 행위가 어떤 진리의 발견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마음 한 켠에 그런 욕망이 내재되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는 한 명 한 명에게 완벽히 집중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수행자의 태도를 보인다. 주어진 일을 하기 위해 물리적 고통을 감내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번 좌절되었을 소망을 우리는 인식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기다리기 위해,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상태가 되어간다.
그를 사랑했던 전 연인들은 말한다. 마리나와 사랑을 하려면, 그와 둘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그는 세계와 사랑에 빠졌고, 관객들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얼마 못 가 눈치채게 될 거라고 말이다. 마리나 역시 말한다. 관객의 존재가 자신을 계속 예술가로 남게 하는 원동력이고 유일한 이유라고. 그러니 그가 이런 퍼포먼스를 진행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여기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리고 타인 역시 그곳에 존재하게끔 한다. 이 단순한 진리를 표현하는 수행자의 행위는 곧 그가 말하는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곧 그의 삶이 된다. 그러니 그는 그러한 방식을 통해 분명하게 세상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여전히 탐구하는 진정한 예술가이자,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 인간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숭고함을 느낀다. 세상을 향한 이러한 탐구적 태도와 맞서 싸움을 비단 예술가만의 이야기로 점철하고 싶지 않다. 왜 사랑에 항상 실패하는지, 왜 불쌍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지, 왜 책은 쓰이고 읽혀야만 하는지, 왜 인간은 존재해야 하는지, 왜 시대는 변하지 않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발견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중요한 것은 그것을 찾아 기꺼이 헤매는 태도이다. 그 대상은 꼭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눈표범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마리나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교감을 대상으로 할 수도 있다. 혹은 빗방울이 창문에 맺힐 때 하강할 뿐만 아니라 상승하기도 한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발견하는 것도 좋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철학과 예술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 된다. 다시 공연 장면으로 돌아간다. 당신은 마리나와 눈을 맞출 수 있다. 그가 당신을 들여다보자 당신 역시 당신을 들여다본다. 당신은 기다리지 않는 마음으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공식적으로 글을 올리기 전에는, 글로 내 생각을 쓰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연구자이자 철학자이지만, 그건 혼자만의 생각 속에서일뿐 공식적이거나 전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철학이 필요하다. 당신이 예술가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사유하고 연구하는 것은 보편적 인간의 조건에 더 가깝다. 당신이 발견을 위해 수행하고 철학하는 모든 과정만이 당신을 부끄럽지 않은 생생한 인간으로 존재하게 할 것이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아티스트가 여기 있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 마리나가 선언했던 예술가의 조건들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가 내건 조건이, 과연 예술가에게만 해당하는지 주의 깊게 봐주시길 바란다.
- 예술가는 자신이나 남들에게 거짓을 말해선 안 됩니다.
- 예술가는 다른 예술가의 발상을 훔쳐서는 안 됩니다.
- 예술가는 자신을 위해서든 예술 시장과 관련해서든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 예술가는 타인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 예술가는 자신을 우상화해서는 안 됩니다.
- 예술가는 애정 생활에 있어서 다른 예술가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일상의 일과 예술가로서의 수상한 꿍꿍이'를 주제로 팟캐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매주 수요일 18시에 업로드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팟캐스트 혹은 네이버 오디오클립으로 '수상한 수다'를 청취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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