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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주 Mar 08. 2020

몸, 몸, 몸

영화 <하녀>


그놈의 몸


 성인이 된 이후 솔직히 좀 놀랐다. 포르노그래피가 사회에서 이렇게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전에는 몰랐기 때문이다. 뭐 인간의 기본 욕구에 들어가네 마네 하는 것도 다 음흉한 작자들의 수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섹스는 우리의 인생에 너무 중요했고 세월이 지나도 절대 바래지 않는 화두였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니다. 고작 몸, 그놈의 몸 아닌가? 누구나 가지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 쭈굴쭈굴 해지고, 안 쓰면 기능이 퇴색되고, 함부로 보여선 안 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잘 드러내야 진심을 전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말이다. 영화 <하녀(2010)>가 개봉한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나는 이 영화를 그저 포르노그래피 정도로 생각했었다. 제대로 보기 전엔 그랬다. 제대로 보고 난 이후 지금은, 이 영화가 포르노그래피라고 생각한다. 몸에 대한 탐구를 담은, 꽤 미학적인 포르노그래피.


세 줄 요약


 식당에서 일을 하던 은이는 좋은 기회로 상류층 대저택의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 임신한 주인 해라와 딸 나미를 보살피는 한편, 해라의 남편 훈을 만나게 되는데. 어느 날 밤의 훈의 유혹으로 잠자리를 가지게 된 은이는 꽤나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영화를 봤다면 뭐 딱 눈에 보이기도 하고, 차라리 캐릭터 얘기를 하면 했지 이야기는 뭐... 사실 별 게 없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보고 또 보고, 파고 또 파는데 정작 더 나오지는 않는 거. 이 영화도 딱 그 정도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뭔가 자본주의와 계급 사회의 단면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걸로 되게 의미심장하게 끝나는데, 생각해보면 그게 다다. 사람이 미치는데 이유 있나, 미친 사람이랑 대화 해봤자다. 배우고 싶은 점은, 이야기보다는 장면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실제보다는 과장되되, 절대 실제를 어긋나지 않는 형태로 드러내는 감독의 미학 법칙은 영화의 분위기를 멋들어지게 표현하면서 제 역할을 한다. 상류가 흐르는 곳과 하류가 흐르는 곳, 햇빛이 드는 곳과 어두운 곳, 감춰둔 곳과 그럼에도 드러나는 곳이 공존하는 대저택의 공간성 역시 세련됐다. 감독은 대비를 보여주는데 뛰어난 감각을 보인다. 그 감각은 스토리텔링을 녹여내는데 적절히 활용되면서 영화 고유의 정서를 만들어낸다.


 특별히 눈여겨봤던 게 또 한 가지 있다면 단연 배우들의 캐릭터성이다. 은이를 만들어 낸 전도연은 특유의 자연스러움으로 영화 전반적인 작위적인 분위기를 한껏 누른다. 그가 지닌 순수성이라는, 어쩌면 현실에서 가장 작위적인 것을 다루기 위해서는 그 자체가 지극히 존재할법한 인물이어야 했을 터. 그런가 하면 해라, 병식, 훈, 나미, 그리고 해라의 어머니(박지영 분)까지. 모든 인물이 어딘가 비뚤어진 부분 하나를 굉장히 극대화해서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타인에 의해 부러진 것이기도 하고, 스스로 부러뜨린 것이기도 하다. 해라의 어머니는 해라의 귀에 자꾸만 속삭이고, 해라는 두 눈을 번뜩이며 그 말을 자신의 생각으로 치환해버린다. 훈의 자의식은 꺾일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고, 그것은 그의 대자로 뻗은 팔다리로서 드러난다. 나미의 모든 말과 행동은 더 이상 어린아이의 것이 아니다. 그는 모든 이치를 아는 사람처럼 구는데 아주 익숙해져 버렸다. 병식은 조금 특별한 캐릭터인데, 상류층에 살며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자의 여유와, 양심을 향한 인간적인 조바심이 동시에 드러난다. 그것은 그가 완벽하게 차려입고 행동하기도 하고,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던진 채 침대에 드러둡기도 하는 인간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의 캐릭터성은 은이와 상류층 사람들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며 진가를 발휘한다. 필자는 특별히 병식이 음식을 데코레이션 할 때 아주 진지하게 '가져가' 라고 말하는 대사를 아주 좋아한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단순한 일에의 몰두를 보여주는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 안 사람들은 확실히, 이것저것 생각도 많고, 욕구도 많고, 하여튼 복잡하다.


그까짓 몸


 그리고, 아무래도, 몸이다. 처음 잠자리 장면을 봤을 때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몸과 몸이 붙었다 떨어지는 모습이 대단히 관능적이면서도 절제되어 있다.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이 표현을 싫어하지만 더 멋진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은이와 훈이 처음 함께 와인을 마시는 장면은 어떠한가. 훈의 손가락이 은의 몸을 훑으며 유혹을 건넬 때, 그의 몸이 움츠러들고 펴지는 모양은 어떠한가. 그런가 하면 유혹과는 관련 없지만 몸을 드러내는 장면들도 있다. 병식이 집안사람들의 온갖 구설수에 휘둘리다가 제 방에 들어와 옷을 풀어 헤치고 침대에 쓰러진다. 차가운 공기가 살결에 닿는 느낌이 그에게 안정감을 줄 것이다. 또 은이는 본집에서 잠을 잘 때 절친한 친구를 꼭 껴안고 잔다. 그들의 살이 붙어있을 때, 햇볕이 그들을 향해 비출 때 그들은 얼마나 평온한가. 은이는 아무런 의도 없이 병식이 하는 것처럼 하녀 전용 화장실에서 목욕을 하는가 하면, 자기 몸을 이용하기 위해 상류층의 화장실에서 목욕을 하기도 한다. 처음 감상할 땐 단순히 벗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싶었는데, 두 번째 보다 보니 이건 꽤 주목할만한 점이다. 몸은 확실히 쓰임에 따라 그 용도가 달라지지만, 그렇지만 그건 결국 몸이다. 몸 때문에 일이 발생하고 몸이 변하니까 사람도 변하고, 몸을 지키기 위해 자기가 가진 가치관을 버려야만 하는 이야기. 그렇지만 그건 결국 몸이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포르노그래피와 논-포르노그래피를 섞어 그 안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 풍자라면 풍자고, 비판이라면 비판이지만, 하나로 똑 잘라 말하기엔 아쉽다.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는 재미는 이런 곳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애매한 결론


 사실 이 리뷰는 왓챠에서 타인들의 평을 보다가 쓰여졌다. 원작인 김기영의 <하녀>를 본 사람들의 맹비난이 몰아치기에... 나름대로의 즐거웠던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람을 사랑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망가져 있고, 비열하고, 비뚤어졌고, 못났다. 그 사람의 좋은 점 한 두개만 찾아도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영화도 그렇게 보여졌으면 좋겠다. 나는 이 영화의 이런 점을 좀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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