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없는 기간에 짜보는 다음 계획
프리랜서를 시작한 이래 거의 처음으로 2주 이상의 백수기간이 주어졌다. 주말도 없이 바쁘게 지낼 때는 간절히 바라던 휴식기였지만, 어쩌면 다시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문득문득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불안함을 동력 삼아 프리랜서 제2막을 위해 사업자등록도 했고, 외주 말고 다른 수익 파이프라인을 위한 여러 가지 궁리들을 해보기로 했다. 이참에 엉망이었던 생활습관도 재정비하고. 미뤄뒀던 책들도 읽으며 미니은퇴를 해보기로 한다.
프리랜서에서 1인기업으로
사업자등록을 여부는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다. 언제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굳이 위험을 감당하면서 사업자를 내야 할까?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정말로 사업자가 필요한 순간이 생기거나 내 브랜드를 내고 싶은 아이템이 생기면 그때 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2년을 미뤄왔다. 프리랜서 2년 차에 사업자를 내게 된 이유는 이렇다.
1. 더 많은, 큰 규모의 기업·기관과 일하기 위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주는 기업과 거래하는 것을 선호한다. 여태껏 세금계산서 문의가 들어오면 3.3% 처리로 진행하긴 했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높은 단가의 일을 받으려면 규모가 있는 기업과 거래가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서 더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은 마음에 사업자등록을 했다. 2년간 느낀 바로는 지금처럼 소규모 브랜드하고만 일하는 것은 먹고사는 데에 큰 한계가 있다. 한 달 내내 힘들게 일해야 그 다음 한 달 먹고사는 정도. 디자인업계에 형성된 낮은 시장가의 한계도 있지만, 이 굴레를 어느 정도 벗어나려면 조금 더 안정적인 재정의 집단과 일하면서, 내가 일하고 싶은 브랜드를 찾아 스스로 선택하는 지경에 이르러야 한다. 물론 다른 수익창구도 만들어야 하고.
일반과세자vs간이과세자.
간이과세자는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수 없다. 내 생각에 디자이너는 굳이 간이과세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나는 온라인 판매를 위해 사업자등록을 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일반으로 할지 간이로 할지 고민이 컸다. 하지만 어차피 일반과세자 등록 후 1년 뒤 연수익 8천만 원이 넘지 않으면 간이과세자로 전환된다고 한다.(그러면 그때 '간이과세자포기신고'라는 것을 통해 일반과세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3년간 다시 간이과세로 전환되지 못한다.) 1년의 기간 동안 나의 역량을 다시금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일반과세자로 등록했다. 디자인 외주만으로는 연수익 8천만 원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사업자등록이 안되어있다는 이유로 일을 받지 못하는 불상사는 없었으면 했다.
2. 뭐든 팔아보려고
디자인 외주 말고 다른 수익 파이프라인 중에 해보고 싶은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온라인 판매다. 요즘 많이들 하는 스마트스토어 위탁판매. 이를 위해서는 사업자등록 후 통신판매업 등록이 필수다. 나 같은 초보는 간이과세자로 시작하는 게 이득이라 하지만 위에 설명했던 이유로 일반과세자로 등록했다. 스마트스토어를 선택한 이유는 별거 없다. 유튜브에 정보가 많아서, 초보자가 하기에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아서, 그냥 해보고 싶어서. 한 달에 10만 원이라도 벌어보면 좋을 것 같다.(10만 원도 물론 적은 돈은 아니지만)
넥스트 레벨을 위해 할 것들
언제가 됐든 해야 할 것들, 개선이 필요해 보이는 것들을 다 적어보니 크게 5가지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었다.
적고 보니 새로울 건 없다. 2년간 항상 고민하던 것들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것뿐...
디자인업을 위해서 해야 할 것
1. 포트폴리오 업데이트: 웹, PDF 둘 다.
2. 견적정리: 견적은 낼 때마다 고민인 것. 어떻게 하면 견적을 잘 낼까 고민스러워서 최근 프리낫프리 강연을 들었는데, 그건 따로 정리를 해야겠다.
3. 홍보, 제안: 최대한 일이 들어올 수 있는 경로를 많이 만들어 놓는 것이 시급하다.
사업자가 없는 근 2년 동안은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가능성을 시험해 본 기간이라 할 수 있다. '일이 들어오긴 하는구나. 조금 더 나를 많은 브랜드에게 알린다면 더 많은 경험을 해볼 수 있겠다.' 이런 생각들의 반복이었다. 대다수의 디자이너들(나포함)은 사업가기질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냥 본인의 실력을 믿고 비범한 누군가에게 간택당하기를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왕 회사밖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했고 아직까지 회사로 돌아가지 않은 것만으로 나를 조금 더 믿어봐도 되지 않을까. 겁 많고 실행력도 부족하고 게으르지만 이왕 퇴사한 김에 조금 더 알을 깨 보자. 그것이 비록 비범한 누군가가 보기에는 정말 작은 꿈틀거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