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매 순간 선택이 교차하는 연속된 나날들.
“저 남자들이
아가씨 노리고 있는 것 같아요!”
나는 그날의 선택을 두고,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만약 내가 그날, ‘그분’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고 말이다.
내가 그분을 만난 시점은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영동 대교조차도 모르던 때를 지나 철교를 포함한 서른한 개의 한강 다리 중에서 한강 대교, 서강 대교, 양화 대교 정도는 어렴풋이 분간할 수 있게 된 서울 생활 2년 차 무렵이었다. 지금이야 웬만하면 버스를 이용하지만 당시에 나는 무조건 ‘지하철 파’였다. 그런 내가 무려 세 개의 다리를 더 알게 됐다는 것은 그만큼 택시비로 길에 뿌린 돈이 적지 않았다는 말. 박봉에 시달리던 시절임에도 택시를 타야만 했던 이유의 대부분은 술을 곁들인 회식으로 인한 늦은 귀가 때문이었다. 고로 육체와 정신이 멀쩡할 때 택시를 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역세권이 아닌 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는 공인중개사의 말만 믿고 선택한 주택가 원룸. 처음 혼자 구한 집이라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는데, ‘걸어서 *분’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것도 그중 하나였다. 실제로는 평범하게 걸을 때는 10분, 바삐 걸을 때는 7-8분이었다. 절대 줄어들 것 같지 않던 물리적 거리감이 하루하루 낯섦을 이겨내고 바삐 걸어 다닌 결과, 어느 날부터 공인중개사의 말대로 5분처럼 느껴지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물론 심리적 거리감이 물리적 거리감을 극복해 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자잘한 불편 사항 중에서 가장 번거로웠던 것은 언덕 위에 계단식으로 줄지어 건축된 여러 원룸 사이, 작은 골목길에 위치한 우리 집은 오르기도 다소 번거로울 뿐 아니라 후진할 곳도 마땅찮아서 택시 기사들이 집 앞까지 가는 것을 꺼려했다는 점. 그들의 입장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2-3분 더 타고 가서 덜 걷겠다고 그들과 실랑이하기도 싫었다. 자연스레 집 앞을 포기하고 큰 도로에서 내려서 걷는 쪽을 택했다.
1N 년 전,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늦은 밤 나의 최종 목적지도 집 근처 대로변이었다. 그날은 다른 날보다 훨씬 더 많이 취해 있었다. 아무리 취해도 타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있다. 어랏? 카드 택시가 아니잖아.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불가능하지만 그때는 그 사실이 전혀 이상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오히려 현금 이용만 가능한 택시가 더 많던 때였으니까.
문제는 그렇게 잘 알면서 평소에 현금을 넉넉하게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는 거였다. 택시비를 내기에는 다소 모자랄 것 같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나름의 대응책이 있었다. 물론 상대방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 타자마자 곧바로 협상에 들어가야 했다.
“기사님 너무 죄송한데 현금이 좀 부족할 것 같아서요.
제가 내릴 곳이 **편의점인데, 잠깐만 기다려주시면
바로 현금 인출해서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
믿어도 되냐, 되묻는 사람도 아주 가끔은 있었지만 대부분은 별다른 의심 없이 협조해 줬다. 그도 후자에 속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현금을 인출해서 조수석 창문으로 택시비를 지불하려는데 그는 돈 받기를 미루고 다급히 다시 택시에 타라고 재촉했다.
“저 남자들이 아가씨 노리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추가 요금은 안 받을 테니까 집 앞까지 가요!”
승객인 내가 집 앞까지 가자고 사정해야 될 판에 오히려 기사인 그가 나에게 매달리는 꼴이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기 편의점 앞에 남자들 무리 보여요?”
사이드미러로 슬쩍 눈동자만 굴려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그의 말처럼 남자들 세 명이 수군대는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아가씨가 내리고부터 저 남자들이
쭉 쳐다보는 느낌이 좋지 않아요.
내가 이대로 가면 후회하는 일이 생길까 봐
안 되겠어요.
보니까 아직 술도 다 안 깬 거 같은데
그냥 집 앞까지 가요.”
아마도 내가 정말 돈을 찾아오는 게 맞나 싶어 나를 쫓던 눈이 그 남자들을 발견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만취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나는 그의 말 때문에 정신을 차렸다. 찰나의 순간 갈등이 찾아왔다. 택시 기사 ‘그놈’을 만나 낭패를 당한 전적이 있는 나로서는 무턱대고 택시 기사의 말만 듣고 신뢰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이대로 기사의 말을 믿어도 되는 것일까? 만약 나를 노리는 사람이 저 남자들이 아니라 이 기사라면? 어차피 택시 기사나 저 남자들이나 나에게는 다 모르는 남자들. 어느 쪽도 믿을 수 없다고 가정했을 때, 그러니까 둘 다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남자 3명보다는 남자 1명이 그나마 감당하기 나아 보였다. 나는 다시 그의 택시를 타는 쪽을 택했다.
어쩔 수 없이, 때를 놓치고 알게 되는 진심이 있다. 그는 나를 집 앞에 내려준 후 한사코 추가 요금을 받지 않고 유유히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그제야 내 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의심도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안하단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혼자 남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사과는 될 수 없었다. 멀어져 가는 택시를 바라보다 말했다. 기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만약 그날 내가 다시 택시를 타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니 가정이 잘못됐다. 오늘의 안녕에 그날의 일이 단 1%라도 영향을 미친 거라면 다시 택시를 타기로 한 나의 선택 때문이 아니다. 나는 마지막까지 그를 의심했고, 그는 처음부터 나를 걱정했다. 그날의 선택은 그의 진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선의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마음보다 ‘왜’, 아주 가끔은 ‘도대체 왜’라고 의심을 품고 살면서 얼마나 많은 호의를 내쳤을까 생각했다. 의심과 선의. 시작은 달랐지만 우리 두 사람이 최후에 나눠 가진 마음이 같은 ‘안도’라는 것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다.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택시 기사가 두 명 있다. 두 명의 호칭은 극과 극. 한 사람은 ‘놈’으로, 한 사람은 ‘분’으로 불린다. 이것이 그분에 대한 이야기다.